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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물고기가 질식할까 두려워서 아이는 가족들이 집에 없을 때 어항에서 물고기를 모두 꺼내 바깥에 내놨다. 아이 딴에는 물고기를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된 그녀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조너선 밸컴이 쓴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주제는 이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 포유류를 도살하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없지만, 물고기를 도살하는 장면은 훨씬 쉽게 만난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삶에 찌든 표정으로 생선의 머리를 향해 큰 칼을 내리치는 장면은 삶의 고단함을 표현하는 클리셰가 돼버린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은 물고기가 냉혈동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 동물복지를 주장할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많지 않다. 물고기에게 헤모글로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가끔 한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붉은 피가 흐른다. 냉혈이 감정 유무를 가르는 선이라면, 큰 눈을 끔벅이는 거북이에게조차 우리는 공감하지 못한다.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 표지.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 표지.
ⓒ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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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삶은 다채롭다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물고기의 사생활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더 공감하고, 나아가 그들에 대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역설한다. 물고기는 물 밖이 아니라 물속에서 숨 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이는 물고기를 제대로 도왔을 것이다.
 
"비록 방향은 빗나갔지만, 어린 나이에 품었던 공감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닫게 한다. 제대로만 알면, 인간은 세상에서 훌륭한 공동선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324쪽)

우선,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바와는 달리 물고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 보겠다.

① 물고기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이 대단히 발달해 있다.
② 물고기는 뇌의 겉질(pallium)을 통해 자극을 인식하고, 공포, 쾌감, 호기심, 스트레스 등의 감정 반응을 보인다.
③ 물고기는 때로 유인원이나 세 살배기 아이를 능가하는 지능을 보인다. 물고기는 학습은 물론 도구 사용과 계획 수립도 가능하다.
④ 물고기의 뇌는 사회적 기능도 수행한다. 물고기는 다양한 목적에 따라 군집의 형태를 바꾸고, 다양한 계약 관계를 만든다. 협동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 싸움도 한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듯이, 우래 두고 봐야 그들이 정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된다. 개나 고양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물고기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도 그들과 반려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경험담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예컨대 많은 물고기는 주인이 먹이를 주는 시간을 기억한다. 그래서 만약 먹이 시간이 됐는데도 주인이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먹이를 줄 시간에 주인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먹이를 주지 않으면, 금붕어들은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낸다. 그래도 먹이를 주지 않으면 수족관 벽에 몸을 부딪치며 난동을 부리는데, 그 소리가 옆방에서도 들릴 정도다." (63쪽)

아쿠아리움이야말로 물고기의 사회생활을 관찰할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가령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군집을 이룰 때, 그 크기는 장단점을 따진 함수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큰 군집은 포식자에 대항하기 좋지만, 개체간 먹이 경쟁이 심해지고, 행동의 제약도 많다. 작은 군집은 그 반대의 장단점을 가진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니모의 사생활
 알면 알수록 신기한 니모의 사생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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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물고기들 역시 계약 관계를 형성한다. 소위 공생이라 불리는 관계가 대표적이다.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흰동가리는 말미잘과 공생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많은 공생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착취 관계라는 학설은 여기에서도 유력하다. 즉 흰동가리가 말미잘을 아지트 삼아 이용하는 것일 뿐, 말미잘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해결할 문제다.

좀 더 적극적인 공생관계는 청소부와 큰 물고기 사이에 발생한다. 다른 동물계와 마찬가지로 많은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들로부터 청소 서비스를 받는다. 큰 물고기는 청소를 받으니 좋고, 작은 물고기는 먹이를 얻는다. 문제는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 몸에 붙은 이물질보다 큰 물고기의 살점을 더 좋아할 때 발생한다.

작은 물고기가 청소하는 척 접근했다가 고객의 살점을 물어뜯고 도망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큰 물고기로서는 작은 물고기를 그냥 삼켜버리는 행동으로 언제든지 보복을 가할 수 있지만,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공생 관계는 그날로 끝장이다. 그래서 큰 물고기는 자신의 살점을 물어뜯은 바로 그 물고기에게 보복을 가해야 한다. 진화과학에서 흔히 발생하는 게임 전략, 즉 맞대응(tit-for-tat)이 여기서도 가장 유효한 전략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매우 재미있는 말을 한다. 많은 학자들이 청소부와 고객 물고기 사이에 벌어지는 이 게임을 진화적응이라 설명하지만, 자신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청소하는 척 다가와서 살점을 물어뜯는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당연히 감정 반응이라는 것이다. 화가 나니, 꼬리를 휘두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감정이라는 것 역시 진화적응이다.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려 하면, 뇌는 과부하로 터져버릴 것이다. 그래서 뇌는 감정이라는 간편한 루틴을 마련했다.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90%는 맞는다. 이것이 패턴화된 뇌의 판단 기제, 즉 대니얼 카너먼이 시스템 1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살점을 물어뜯긴 물고기가 맞대응하는 것은 감정에 충실한 것인 동시에 진화적응인 것이다.

물고기의 군집 생활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 하나는 군집 내 남녀간 서열이다. 육지 동물의 세계에서 집단의 왕은 수컷이 차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자도, 원숭이도, 인간도 그렇다. 물고기 세계에서는 정반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흰동가리다. 흰동가리 군집은 우두머리 암컷이 수많은 수컷을 거느리는 형태다. 수컷 중 한 마리가 대표 수컷으로서, 말하자면 집단의 '넘버 투'로 활동한다.

그런데 우두머리 암컷이 죽거나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신기하게도 넘버 투 수컷이 암컷으로 성전환을 해서 우두머리 암컷이 된다. 나머지 수컷 무리 중 가장 상위 서열인 녀석이 이제 넘버 투 수컷의 자리를 차지한다. 물고기 세계에서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성전환도 불사한다는 말이다.

행동에 나설 때
 
저인망 개념도
 저인망 개념도
ⓒ Greenpeace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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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치회를 좋아한다. 중금속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없어서 못 먹을 따름이다. 그런데 종종, 우리 다음 세대는 참치라는 존재를 알지도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남획 때문이다.

남획의 대명사는 저인망이다. 저인망은 말 그대로, 낮게 끌어당기는 그물이다. 바다 밑바닥까지 닿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그물을 내려뜨린 뒤, 그야말로 바다 바닥을 쓸어 담는 어획 방법이다. 그물코를 넓히고, 거북이가 탈출할 수 있는 문을 만드는 등 손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경우는 그냥 싹쓸이 그물이다. 어민들이 가난한 개도국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저인망은 아직 어린 물고기들은 물론, 해초, 말미잘, 불가사리, 게까지도 모조리 잡아들이거나 파괴한다는 점이다. 물고기들의 먹이와 삶의 터전이 함께 파괴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해양사진작가인 실비아 얼은 저인망을 가리켜 "불도저로 벌새를 잡는 격"이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의 확장으로 공해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공해는 넓다. 공해는 공유지의 비극에 그대로 노출된다.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무리한 어획에 나서면 유한한 자원인 물고기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식량 고갈이라는 차원에서 물고기의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눈을 껌뻑이지도 못하고, 손에 닿았을 때 온기를 전하지 못하는 물고기라는 동물에게 우리는 냉담하다.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개와 고양이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을 물고기에게는 애당초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노예제도는 불과 200년 전까지도 존재했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오래 되어봐야 100여 년전의 일이다. 어떤 일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야 우리는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물고기에게도 동물복지를 주장할 정도로 성숙한 사회로 진입하려면, 우리는 물고기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이성이 도덕의 선결 조건인 것이다.

모르던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제시하기 때문에 이 책은 훌륭하다. 이성에 기반한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을 확인하는 저자의 명문장을 인용하면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맺으려 한다.
 
"과학적 지식은 막강한 힘을 발휘해 윤리 의식을 일깨우고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하여 식민주의와 제도화된 노예제를 종식했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민권을 확립했다.

이는 도덕적 혐오감에 자극받아 일어난 이성의 승리였다. 탐욕, 편협함, 편견은 불평등의 원동력이지만,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이성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315쪽)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조너선 밸컴, #물고기는 알고 있다, #니모, #남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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