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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방문 3일째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백두산 천지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위해 향도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 "백두산 천지 보러 갑니다" 평양방문 3일째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백두산 천지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위해 향도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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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과연 변했을까?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는 꽃제비가 아닌 휴대전화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진짜일까? 북이 비핵화를 선언하며 대변환을 맞이하고 있는데 북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도 변하긴 한 걸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장한 후 북의 변화가 상당하다는 소식은 있지만, 어떤 변화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지난해 12월 통일연구원은 '김정은 시대 8대 변화'라는 보고서에 북한 주민의 삶을 담아냈다. 보고서는 북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경제, 노동, 금융, 젠더 등 각 분야를 조목조목 짚었다.

이 연구책임을 맡은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김정은 시대는 정치·군사 중심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경제 사회적인 변화가 많았다"라며 "사회적 변화, 주민의 변화가 무엇인지 연구했다"라고 밝혔다.

북을 찾아가서 하는 현지 조사나 전면 실태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구원들은 탈북민 인터뷰를 포함, 국내외를 망라하고 북의 사회경제적 지표를 훑었다.

박 연구위원은 "10년 이상 북을 연구한 학자들과 객관적 자료에 자신의 통찰을 담아 종합해냈다"라며 연구를 설명했다. 보고서에 나온 경제, 노동, 금융, 교육, 젠더 등 눈에 띄는 변화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기업과 노동] 출근 대신 돈으로. 8·3 노동자의 출현
 
평양의 거리
▲ 평양의 거리 평양의 거리
ⓒ 진천규, 타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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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노동의 형태를 바꿔놨다. 북의 공장·기업이 모두 생산시설을 제대로 가동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사회적 동원 과제를 하느라 공장·기업의 노동자에 몫을 제대로 챙겨주기 어렵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임금은 월 5000원 이하다. 북한 장마당에서 쌀 1kg 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공장의 일거리도 별로 없고 임금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적은 상황에서 등장한 게 8·3 노동자다.

이들은 자신이 출근해야 할 공장·기업에 매달 일정 금액을 낸다. 대신 출근이나 사회적 과제 동원을 면제받는다. 공장에서 일해 봐야 먹고 살기 충분하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 돈을 내고 출근하지 않는 건 당연히 위법행위다. 하지만 상당수의 공장·기업이 이를 묵인한다. 평소에는 출근하다 소득 기회가 생기면 일정 기간만 기업에 돈을 내는 8·3 노동자도 있다.

기업에서도 득과 실을 따졌을 때 8·3 노동자가 실은 아니다. 일부나마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시장에 팔아 생긴 수익과, 8·3 노동자에게 정기적으로 받는 돈, 돈주에게 공장시설이나 명의를 임하고 받는 임대수익 등을 활용해 국가에 내는 일도 있다.

돈주도 북의 경제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요소다. 돈주는 이른바 자본가 계층이다. 장사나 사채업, 중국과 무역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영기업을 활용하거나 사영기업을 운영해 돈을 번다.

[금융과 화폐] 북한 경제는 어려워졌을까?
 
김광진"북한 금융기구의 종류와 역할" 한국수출입은행 북한, 동북아연구센터 엮음 참고
▲ 북한 금융기구의 종류와 역할 김광진"북한 금융기구의 종류와 역할" 한국수출입은행 북한, 동북아연구센터 엮음 참고
ⓒ 김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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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나 세계은행의 기준에 따르면 북한은 최빈국이다. 2001년을 기점으로 경제성장률을 플러스로 전환했다고 하지만, 2% 전후의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2017년에는 –3.7%로 돌아서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북의 경제는 정말 하향 곡선인 걸까?

단정할 수 없지만 북의 경제가 호전됐다는 정반대의 주장과 지표도 있다. 아사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넘어 휴대전화 보급률, 수영장·헬스장, 택시·버스의 사용까지.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거래가 증가했다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북 당국은 '돈의 출처를 묻지 말라' '주민들 속에서 사장되어 있는 돈을 동원해 집을 지어준다'라는 문구를 법에 넣었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정은 시대의 금융개혁은 유휴 화폐를 공식경제로 흡수하려는 양상을 띤다. 은행을 신뢰하지 않아 주민들이 맡기지 않고 쥐고 있는 돈을 시장에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이후 카드결제가 가능한 단말기가 상점 곳곳에 놓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주민의 전자결제카드 사용 역시 늘어났다.

카드 사용을 늘리는데 택시 보급이 한몫했다. 2018년 기준으로 평양에는 6000여 대의 택시가 있다. 1km당 요금이 0.5달러인 이 택시를 타는 평양의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전에 북은 작은 액수의 달러인 이른바 '잔달러'가 부족해 물건을 사거나 팔 때 거스름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에 비해 전자결제는 몇 달러가 나오든 잔돈을 정확하게 돌려받을 수 있어 환영 받았다. 2015년도에는 조선중앙은행에서 내화전자결제카드인 '전성카드'를 출시하며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을 늘리고 있다.

[과학기술과 정보화] 스마트폰, 종류만 20여 개
 
장을 보는 평양 시민
 장을 보는 평양 시민
ⓒ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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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사회주의체제의 특징이다. 경제와 군사발전에 과학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도 그랬다. 김일성 시대부터 과학기술은 중요했다. 다만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와 핵·미사일 발전에 자원을 집중했다. 김정은 집권 5년간인 2017년에도 이 흐름은 비슷했다. 다만, 김정일 시대는 군수산업 중심의 과학기술 발전이 은밀하게 추진됐다.

김정은 시대는 이를 드러냈다. 과학기술이 인민생활 전반을 향상시키는 전략적 과제로 등장했다. 과학자와 기술자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현대식 아파트를 이들에게 먼저 제공하고, 포상과 휴양시설 등 복지 정책을 늘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는 2011년부터 등장했다. 그때는 대부분 수입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류성'을 시작으로 2013년 '평양', '아리랑', '진달래'의 스마트폰 시리즈가 버전을 바꾸며 출시됐다. 요즘은 대략 20개 가량의 모델이 있다.

북 주민들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통화는 당연하고 문자와 사진 등을 주고받는다. 국제 인터넷망에는 접속하지 못하지만 북의 국내망에는 접속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북의 무선망(이동통신망)인 '고려링크'는 사용이 활발해졌다. 고려링크를 통해 북의 무선통신에 가입한 수는 2010년 50만 명에서 2012년에는 두 배인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3년 200만 명, 2017년에는 370만 명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 교육열은 어디든... 북의 사교육은?
 
조정아 '김정은시대 북한 교육정책 방향과 중등교육과정 개편' 
북 개정교과서 (초급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참고
▲ 북의 영어교과서 조정아 "김정은시대 북한 교육정책 방향과 중등교육과정 개편" 북 개정교과서 (초급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참고
ⓒ 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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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다드'. 김정은 시대의 교육은 세계를 향한다. 2012년 초중등 학제개편과 이후 교육과정을 개정하며 북은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4년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4~5년간 고등교육이던 것을 12년 의무교육으로 바꿨다. 교육의 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2013년에는 새 교과서를 내놨다. 문장을 반복해 외우고 문법 위주이던 영어는 듣기와 말하기 교육 위주로 바뀌었다. 다만 도·농 간의 격차를 비롯해 계층별 교육격차 등의 문제점도 생겼다. 경제난 시기에 등장했던 사교육은 확산 바람을 타고 있다. 법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사교육은 대도시 중상류계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형태는 과외와 공부방이 뒤섞여 있다. 학생 한두 명이 교사의 집에 가서 배우거나 학생들이 시간대별로 그룹을 형성, 특정한 공간에 모여 배운다. 아침, 오후, 저녁 조가 구성되거나 조별로 교사의 수업과 개인지도가 있는 식이다. 시세는 도시 중심지역인지 외곽인지에 따라 다르다. 과외교사의 명성과 과목에 따라 차이도 있다. 대체로 달러나 위안화로 시세가 매겨지는데, 한 달에 150~200위안 수준이다.

북에서 사교육이 보편화 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교육이 등장해 확산되고 있다는 건 북 주민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척도다. 국가가 교육을 전적으로 담당하다 지금은 부모가 국가를 대신해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젠더] 돈을 쥐고, 입을 열다
 
평양의 여성(2013년 8월 19일 촬영).
 평양의 여성(2013년 8월 19일 촬영).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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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여성은 자녀 양육과 가사를 전면 책임졌다. 아이를 업고 나가서 장사하고 집에 와서는 밥과 청소를 당연히 해야 했다. 위계적 사회문화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안보기관의 구성원으로 일했다. 가부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고 경제적 주도권을 가진 자의 힘이 드러나게 된 것.

북한 내의 빈부격차는 데이트 코스를 계층화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상류층인 이들의 데이트는 외화식당이나 노래방을 넘어 북한식 종합 유흥몰인 '개인투자 서비스센터'에서 수영, 당구, 볼링, 스케이트, 탁구 등을 즐긴다. 이른바 평양식 연애다. 중류층은 도시에 많이 생긴 수영장이나 목욕탕, 국제영화관 등을 다닌다. 하류층은 전통적으로 즐기던 강가나 공원 산책, 국립극장에서 연극이나 영화를 본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혼인신고를 피하는 비중은 늘어났다. 여성에게 생계 부양 책임이 가중되면서 당국에 결혼 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 생계를 아내나 엄마인 여성이 책임질수록 결혼을 피하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 참지 않고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도 늘고 있다. '더는 당하고 살지 않겠다'는 의식이 형성되고 있다. 이혼이 자유롭지 못한 재판이혼제도가 있지만, 이혼 판결도 과거와 비교하면 수월해졌다. 남편의 지속적 폭력, 외도가 있다면 재판부도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이혼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덧붙이는 글 | 참고: 통일연구원 <김정은 시대 8대 변화>(2018),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7 북한 사회변동과 주미의식 변화, '병진노선'의 두 얼굴>, 유엔인구기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14년 사회경제인구 및 건강조사>, 김광진 <북한 금융기구의 종류와 역할>, 조정아 <김정은시대 북한 교육정책 방향과 중등교육과정 개편> 등


태그:#북, #돈주,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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