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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칼럼니스트이자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는 "참담하다"는 말부터 했다. 이미 2008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중고교 학생 1139명을 조사한 이 보고서에는 "전체 조사대상자의 63%가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이중에는 강제추행과 강간, 성관계 요구 사례도 있다"라면서 "학생선수들을 위한 인권종합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기록됐다.

그로부터 10년.

심석희, 신유용 두 선수의 피해 사례에서 보듯 체육계 현장에선 이 권고가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국가인권위 조사에 직접 참여해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가해자 영구제명, 여성 선수 위한 생활공간 개선' 등의 제안책을 내놓은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가 "참담하다"고 한 이유다.

"10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성폭력-폭력 근절대책 발표한 이기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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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1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에 만든 가이드라인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졌겠느냐"라면서 "우리는 그때와 단 한 뼘도 변하지 않은 사태를 다시 마주하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지난 8일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촉발된 체육계 미투는 이후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가 '2015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더욱 확산했다.  여기에 젊은빙상인연대 등이 나서 "심석희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추가폭로를 했다.

빙상계 뿐 아니라 전 종목에 걸쳐 선수들의 체육계 미투가 이어지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15일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낸 피해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용기에 위로 말씀드린다"면서 '체육계 쇄신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만약 심석희 선수가 아니라 무명의 선수였다면 대한체육회가 이 정도 반응을 보였겠느냐"라면서 "지난 10년 대한체육회는 늘 이런 식의 모습을 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교수가 지적한 것은 대한체육회가 직접 운영하는 '클린스포츠센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인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오마이뉴스>에 제공한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된 비위 현황' 전수조사 자료를 보면 2017년 1월 클린스포츠센터가 신설되고 나서 2018년 9월까지 성폭력 관련 신고는 4건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대한체육회 상급간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조사하거나 제도개선을 위한 제안을 처음부터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독립적이지 않으니 사건이 발생해도 진상조사 등 권한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 됐다"고 밝혔다. 

"메달 따자고 선수들 잡아 족치는 게 말이 되냐"
 
지난 2018년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중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재범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 선수 훈련 지켜보는 조재범 코치 지난 2018년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중인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재범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들을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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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대한체육회는 문제가 생기자 이번에도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았다"라면서 "핵심은 대한체육회와 관련이 없는 독립된 기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체육계라고 해서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것이 아니"라면서 "보편적 관점에서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현장 조사하고 이를 사법기관에 이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스포츠인권센터' 같은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이어 "훈련 문화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중·고교 때부터 사회와 완전히 차단된 채 진행하는 합숙, 전지훈련 등을 바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메달 따자고 선수들 잡아 족쳐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선수촌 등에서 훈련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 사용과 외출 등이 좀 더 자유로운, 민주적인 훈련 분위기를 우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선수촌에) 인권상담사와 생활개선 상담사가 상주하고,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하며 개인 활동을 더 보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언론, 가해자 찾기보다 피해자 찾기에만 혈안"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릴 대한체육회 이사회장 앞에서 체육계 성폭력 사태를 방관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를 촉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체육시민단체, 대한체육회 이사회장 앞에서 "침묵시위"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릴 대한체육회 이사회장 앞에서 체육계 성폭력 사태를 방관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를 촉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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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체육계 미투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그는 "끔찍한 일이 발생되는 와중에 여러 언론이 기사를 쓰는 것을 보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강조한다"라면서 "피해자들에게 피해상황을 복기하게 하고, 그런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들이 선정적인 내용만 찾고 다른 피해자 없는지 달려들고만 있다"면서 "가해자를 찾기보다 피해자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런 상황들이 지금의 우리를 더 참담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한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파면을 촉구하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등 비난여론이 거세지만 16일 현재 이 회장은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체육시민연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체육계에서 반복돼 온 성폭력 사건을 방관, 방조한 직접적인 책임이 대한체육회에 있다"라면서 "체육계 성폭력 방관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그:#미투, #체육계미투, #이기흥, #심석희, #대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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