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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목련 잎 비썩 말라버린 목련 이파리 하나, 그러나 이파리를 다 놓아버렸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 김민수
 
겨울이 깊습니다. 미세먼지가 회색빛으로 도시를 감싸 우리의 시야를 흐려 마치 불확실성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겨울이 추워서만 추운 것이 아니라, 그냥 멈춰서 봄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더 추운 듯한 요즘입니다.

답답합니다. 숨 쉬기도 힘들고 눈을 따끔거리고, 이 나라는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미세먼지로 희뿌여진 회색도시보다도 더 불투명합니다. '이건 아닌데' 그렇게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것만 같습니다.
 
알밤 지난 가을 주웠던 알밤이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 김민수
 
4년 전, 어머님이 저와 영영 이별하시던 날, 미세먼지는 없었습니다만, 날은 올해처럼 따스했습니다. 겨울 속에 들어있는 봄날 같은 날, 그리 많지 않은 그런 날이면 봄이 더욱 간절해지기 마련입니다.

미세먼지가 극심하던 14일, 어머니를 만나러 강원도 갑천 물골을 향했습니다. 탁한 공기로 목이 아프고 눈이 따끔거려 괴롭기는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미세먼지는 청정지역이라는 강원도에 다다랐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달팽이 달팽이의 빈 껍질, 동토의 땅 어딘가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김민수
 
한 농가의 비닐 하우스에는 싸리를 엮어 만든 자리에 알밤이 말라가고 있었고, 한 켠에는 달팽이의 빈 껍질이 놓여있었습니다.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우리의 삶의 상징이 아닌가 싶어 슬펐습니다.

비정규직 김용균은 빈 껍데기가 되어 세상을 등지고, 제 집을 지켜보고자 400일 이상 높은 굴뚝에서 생존권 투쟁을 하던 파인텍 노동자들은 죄인인 듯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짜뉴스에 편승한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마저 욕보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애국가'를 만든 이가 친일을 넘어 친나치일 수도 있다니, 나의 조국은 빈 껍데기만 남아 바스러질 날만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우울합니다.

껍데기를 보내지 못하고, 껍데기가 주인 행세하는 겨울 공화국으로 회귀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수리취 수리취의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싹을 낼 봄을 기다리고 있다. ⓒ 김민수
   
메밭쥐의 집 동글동글 억새의 이파리를 감아 만든 메밭쥐의 집 ⓒ 김민수
 
아직 씨앗을 다 떨구지 못한 수리취, 마른 억새의 이파리만으로 만든 엉성한 집에서 겨울을 나는 메밭쥐륵 보면서, 그래도도 충분히 자족하며 살아감을 봅니다.

그런데 마치 그런 이들에게 불을 붙여서 홀라당 태워버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놀이를 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서민들에게는 저 허름한, 그러나 나름 겨울을 날 수 있으며, 봄이면 새끼를 낳을 보금자리가 될 소박한 집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끼의 삭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난 이끼의 삭 ⓒ 김민수
 
겨울 들판을 서성이다 초록 생명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그렇게 쉽사리 겨울 일색일리는 없겠지요. 겨울 속에 있는 봄을 찾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겨울 속에 있는 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돌나물 바위틈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있는 돌나물 ⓒ 김민수
 
겨울 일색인 듯하지만, 그 어딘가 푸름의 봄이 여전히 숨쉬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역사도 그럴 것입니다. 작은 초록 생명들이 희망인 이유입니다. 겨울 속에서도 여전히 봄을 준비하는 그들이 있는 한, 우리에 역사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 무엇이든 좋습니다.
 
달맞이꽃 로제트형으로 흙에 바짝 붙어 겨울을 나는 달맞이꽃 ⓒ 김민수
 
대지에 로제트 형으로 온 몸을 붙이고 넉넉하게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달맞이꽃, 그렇게 겨울과 맞짱을 떴으면 이른 봄 꽃을 피울 듯도 한데 여름이 다 되어서 꽃을 피웁니다. 그것도 달이 환한 밤에 수줍게 말입니다.

변절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민주주의의 선봉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오히려 진실한 마음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켜왔던 이들은 삶의 일부이므로 그 일로 자기의 이익을 삼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이 나라를 심히 걱정하는 애국자인양 행세하는 부패한 정치인들은 맨몸으로 겨울을 나는 저 풀 한 포기만도 못한 이들입니다.
 
목련 목련 꽃망울, 지난 가을부터 꽃몽우리를내고 봄을 꿈꾸며 옷을 갈아입는다. ⓒ 김민수
 
솜털 옷을 몇 번을 벗어야 꽃을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가을부터 꽃눈이 있었고, 겨울이 깊어지면 목련 나무 아래엔 벗어버린 솜털깍지가 수북합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온전히 보내고 나서야 피어나는 하얀 목련, 그 며칠의 개화를 위해서 그토록 진지하게 겨울을 맞이하고 보내고 있는 목련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버들강아지 버들강아지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김민수
 
그리고 마침내 보았습니다. 그 추운 강원도의 계곡 한켠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버들강아지. 계곡은 꽁꽁 얼어있는데, 그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을 의지하여 부드러운 솜털을 내놓았습니다.

아직 봄은 멀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이며, 아니 이미 왔다고 봄의 전령사로 자처하며 나선 것입니다. 그 봄의 전령사가 남도의 동백이나 수선화처럼 예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한 겨울에 봄을 보았습니다. 겨울은 갈 것이고 봄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봅니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더욱 향기롭고 화사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1월 14일, 강원도 갑천 근처의 야산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목련, #버들강아지, #수리취, #달팽이, #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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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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