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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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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앞 성명'을 통해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에 들어간 양 전 대법원장은 "기억이 안 난다", "실무진에서 한 일이라 알지 못한다" 등의 말로 혐의를 부인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은 얼핏 이율배반으로 보이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말한 '책임'에 '법적 책임'이 포함돼 있지 않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검찰이 '법관 블랙리스트'에 직접 서명한 문건을 제시했을 때, 양 전 대법원장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세운 전략을 추정해볼 수 있는 답변이다. 이를 전제로 양 전 대법원장이 강행했던 대법원 앞 성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속내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후배 법관)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만약 후배 법관들의 범법이 밝혀지면 자신은 그 수장으로서 도덕적 책임만 지겠다는 말이다. 성명에서 "부덕의 소치(덕이 부족해 생긴 일)"를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러 고위공직자의 사례를 떠올려보면 도덕적 책임은 공허한 경우가 많다.

양 전 대법원장 입장에선 믿는 구석이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주요하게 적용될 혐의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인데, 법원에서 이를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검찰 출석 전 굳이 대법원을 들러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법원 압박 전략'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구속영장 청구에 무게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공개 재소환에 대비해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다.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공개 재소환에 대비해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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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 입증을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수첩, 법관 블랙리스트 보고서, 김앤장 문건 등은 그의 혐의를 입증하는 주된 증거다.

이규진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양형위원으로 일했는데, 이때 재판거래 및 법관 사찰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수첩엔 '大' 자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검찰은 이를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사항으로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관 블랙리스트 보고서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법원행정처 작성)에 V 표시를 한 것도 혐의 입증을 위한 중요한 자료다. 또 김앤장(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서 일본 기업 측을 대리) 압수수색을 통해 나온 문건에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수차례 독대한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사팀은 14일 오전 9시 30분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재차 소환했다. 첫 소환 후 사흘 만이다. 두 번째 소환은 안전관리 등의 이유로 앞서 첫 소환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됐다.

지난 11일 처음 소환된 양 전 대법원장은 오전 9시부터 약 11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자정 직전까지 약 3시간 동안 조서를 검토한 후 귀가했다. 그는 토요일인 다음 날(12일) 오후에도 검찰에 출석해 조서 검토를 마무리했다.

첫 소환조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소송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추궁했던 검찰은 이날 옛 통합진보당 재판 개입, 법조비리 은폐,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관련기사 : 알기 쉽게 정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혐의).

혐의가 방대해 추가 소환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가급적 이번 주 내로 양 전 대법원장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정할 계획이다. 앞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기각) 등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태그:#양승태, #사법농단, #대법원장,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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