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많은 눈물과 부담감이 함께했던 피겨 경기장이었다. 그것은 한국 피겨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베이징 트로이카'부터 시작해 맏언니까지 모두에게 부담감과 치열함 속에 싸웠던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대회였다.
 
지난 13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막을 내린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9(제73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대회)'에서는 유영(15·과천중)이 2년 연속 대회 제패에 성공하면서 마무리 됐다.
 
베이징 트로이카로 꼽히는 유영, 임은수(16·한강중), 김예림(16·도장중)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이어 맏언니 박소연(22·단국대)의 부활과 또 다른 기대주 이해인(14·한강중)의 선전까지 더해졌다. 그러면서 '누가 실수를 덜하는지'를 두고 펼쳐지는 살벌한 경쟁은 이제 한국 피겨에서 흔하디 흔한 일상이 됐다.
 
 유영의 연기 모습

유영의 연기 모습 ⓒ 박영진

  
'부담감', 국내 경쟁에서 피할 수 없는 단어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선수들이 얘기한 단어는 '부담감'이었다. 유영에 간발의 차로 뒤져 2위에 올랐던 임은수는 "이번 대회가 세계선수권 출전이 결정되던 경기였는데 항상 함께 하던 코치님도 계시지 않았고 심적으로 부담이 많았던 대회였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올 시즌 시니어로 올라와 김연아 이후 9년만에 그랑프리 대회 메달까지 획득한 그였지만 역시 국내 대회는 혹독했다.
 
3위였던 이해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마지막 그룹에 마지막 순서로 출전했던 그는 기다리는 동안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고 표현했다. 이해인은 "앞에 기다리면서 언니들이 모두 클린연기를 펼쳤고, 마지막 순번이다보니 더 긴장됐다"고 말했다.
 
반면 유영은 오히려 부담을 내려놓았다며 웃었다. 그는 "올 시즌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오히려 부담을 갖고 하면 동작이 더 안 나오다 보니 부담은 내려놨다"며 웃었다.
 
이외에도 임은수, 유영 등과 함께 세계선수권 출전을 두고 경쟁했던 김예림을 비롯해, 이해인과 함께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위서영(14·과천중), 세계선수권 출전을 두고 경쟁한 김하늘(16·평촌중) 등에게도 이번 대회는 모두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의 기량이 나날이 향상되면서 이들의 실력 차는 '종이 한 장'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그렇기에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관건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유망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한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임은수의 연기 모습

임은수의 연기 모습 ⓒ 박영진

  
눈물과 환호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무대

그러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난 후에는 값진 성과를 얻은 것에 대한 눈물과 그리고 해냈다는 환호가 공존했다.
 
처음으로 시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된 임은수는 경기 직후 두 손을 불끈쥐며 환호했다. 그러더니 잠시 감격에 겨운 듯 감정에 북받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록 이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점프인 트리플-트리플 점프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올 시즌 애를 먹었던 트리플 살코와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점프 등 여러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매끄러운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1위에 오른 유영과 3위에 자리했던 이해인은 모두 마음껏 환호했다. 유영은 프리스케이팅 '캐리비안의 해적' 음악이 끝나면서 강렬한 엔딩동작으로 환하게 웃으며 마침표를 찍었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생애 첫 메달을 획득했지만, 이후 4차 대회에서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해 눈물을 흘렸다.

이후 탈린 트로피 대회 등을 거치면서 고난이도 점프에 집중했지만 점프에서 연달아 흔들리는 등 상승세가 좀처럼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유영도 이 기간이 '슬럼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챔피언을 가리는 종합선수권에서 결국 다시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고난이도 점프 보다 안정적인 전략을 택한 것이 주효했고, 이전보다 연결점프 흐름과 회전 수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3위였던 이해인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음악이 끝나자 두 손을 마구 흔들며 기뻐했다. 그는 언론에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은 선수이지만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유영-임은수-김예림 등의 뒤를 이어, 새로운 유망주가 또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기에 상당히 값진 결과였다. 마냥 어린 것만 같은 이해인은 링크장에만 서면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담대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선수였다.
 
 박소연의 연기 모습

박소연의 연기 모습 ⓒ 박영진

   
눈물과 환호는 시상대에 선 선수들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날 4위를 기록했던 박소연에게도 볼 수 있었다. 이날 박소연은 오랜만에 프리스케이팅 클린 연기를 펼쳤고 연기가 끝나자마자 잠시 손을 잡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눈가에는 약간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경기 내내 박소연이 점프를 성공할 때마다 관중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마지막 점프마저 해내자 그야말로 함성이 뒤덮혔다. 어쩌면 이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선수는 맏언니였던 그였을지도 모른다.
 
박소연은 어느덧 국내 피겨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유일한 90년대생 여자선수로 남았다. 지난 2010년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연아 키즈라고 불리던 97년생 유망주들 가운데 대표주자가 바로 그였다. 소치 올림픽을 경험했고, 김연아 이후로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톱10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4시즌 동안 자력으로 그랑프리 대회를 출전했다.
 
그러나 발목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결국 평창 올림픽에 나설 수 없었다. 선수 생활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끝내 다시 링크로 돌아와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피겨팬들은 감동했다. 이런 점은 많은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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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피겨 유영 임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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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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