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순천만동물영화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순천에 온 이후 처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동물영화제 상영작 중에 꼭 봐야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관에는 개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영화 <뽀삐> 포스터.

영화 <뽀삐> 포스터. ⓒ 엔젤 언더그라운드

 
보고 싶었던 영화는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 영화 시작 전에 <뽀삐>(2002)라는 영화도 보았는데 예상치 못한 보물 영화였다. 구름이 호두(호구)와 같이 산지 6개월(영화제 갔던 당시). 15년 전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 생활 엿본 기분이었고, 새내기 견주들에겐 교육용 역사 영화라고 할 수 있었다.

<뽀삐>는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못 볼 뻔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10년간 키웠던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낸 김지현 감독은 다른 견주들과 반려견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취지와는 다르게? 영화 진행은 굉장히 웃기다. 약간 B급 코미디물 같이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장면과 대사 때문에 웃음이 크게 터져 나와 주변 눈치를 보며 봐야 했다. 영화 속에서 감독이 고민했던 반려견 중성화, 반려견의 버스 승차거부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고민점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 산책할 때 가끔 우리 호구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떠올랐다. 한때는 나처럼 반려견들과 산책을 했던 분들이었다. 화장을 하고나서 유골함을 1년 내내 보조석에 싣고다녔다는 분, 장난감을 몇 달씩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우리 호구들에게 선물로 한 보따리 주신 분, 간식을 사다주신 분 등 영화를 보고서야 그 분들의 눈물의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었다. 

웃느라 다른 관객의 눈치를 봐야했던 영화 <뽀삐>와 다르게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눈물 콧물 때문에 옆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다. 돼지 교배를 억지로 시킬때는 그 소리와 모습에 눈과 귀를 다 열어둘 수가 없었다. 돈까스를 무척 좋아하는 감독은 어느 날 의구심이 들었다.

'살아있는 돼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네?' 영화는 우리 밥상위에 올라오는 돼지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돼지 영화였지만 다른 가축 동물들과 인간의 다른 용도에 쓰이느라 고통받는 다른 동물들이 떠올랐다.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마취도 없이 수컷 새끼 돼지들을 거세할 때는 아직 중성화를 하지 않은 호구들이 떠올랐다.

GV가 끝난 후 감독님과 택시를 잡기 전까지 대화를 나누며 호구들에게 가끔씩 줬던 돼지 뒷다리를 이제 그만주고, 사료도 최대한 고기 성분이 없는 것으로 고르자는 결심했다는 얘길 하자 채식 사료를 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순천역 근처 동천에 자주 산책하며 백로도 봤다는 말에 '두루미'일 것이라고 정정해준 감독. 알고 보니 순천에서 야생동물 촬영을 하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치타, 표범도 구별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동물에게 관심을 두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군다나 야생동물은 더더욱. 그렇다고 동물원을 갈 수도 없고.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사파리를 직접가서 볼 수밖에. 

부산 본가로 떠나기 전 또 두루미가 있는 동천에서 마지막으로 산책을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서울에서보다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탈 수는 있었지만 오줌 안 누냐며 걱정하는 기사님. "개들도 자기들이 쉬는 공간은 더럽히려고 하지 않아요"라고 말씀 드렸지만 마음이 좀 불편하여 차를 세우고, 영화 상영도 했었던 '청춘창고'와 사람이네와 자주 갔던 브루웍스 카페를 들렀다.

다양한 음식점들이 들어서있는 복합문화공간 '청춘창고'는 일제때 쓰던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저렴한 임대료로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창고형 까페 브루웍스 또한 시에서 공고를 내서 운영을 하도록 했다는데 인테리어가 굉장히 세련되어 명소로 자리잡았다. 두 군데 다 호구들과 실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청춘창고 앞에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낯선 사람에게 이쁨 받는 구름이

▲ 청춘창고 앞에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낯선 사람에게 이쁨 받는 구름이 ⓒ 수피아

 
 브루웍스 실내

브루웍스 실내 ⓒ 수피아

 
바깥에서 갇힌 구름이와 호두 브루웍스 실내 사진 찍는 동안 기다려주는 엄마 바라기들

▲ 바깥에서 갇힌 구름이와 호두 브루웍스 실내 사진 찍는 동안 기다려주는 엄마 바라기들 ⓒ 수피아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소수의견> 원작자 손아람 작가는 "조금만 더 반려견과 함께 할 놀거리들이 있다면 순천만 동물영화제는 애견인 1000만 시대, 반려견과 맘껏 놀 수 없는 한국에서 1년에 한번은 반려견과 꼭 가고 싶은 영화제로 자리 잡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영화관에서 <뽀삐> 같은 영화를 호구들과 함께 보면서 화면 속 개들이 짖을 때 한번씩 같이 짖어주고, 개껌을 좀 뜯다가 지루한 장면에서는 무릎에서 잠도 좀 자는 상상.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갤러리가 참 잘 어울리는 구름이 영화제 축제에서 만난 관장의 배려로 구름이 호두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갤러리. 마침 신미식 사진작가의 아프리카에서 찍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 갤러리가 참 잘 어울리는 구름이 영화제 축제에서 만난 관장의 배려로 구름이 호두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갤러리. 마침 신미식 사진작가의 아프리카에서 찍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 수피아

 
블랙 택시에(순천 택시도 제주도처럼 블랙이라도 모범이 아니다) 개 두 마리를 태우고 터미널로 간다니까 기사님이 놀라시며 태워주냐, 왜 ktx를 안타냐고 물으셨다. 나도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해서 표를 끊으려고 보니 ktx 부산행이 없었다. 부산 직행으로는 s-train 이라는 관광열차가 있지만 하루에 한 대 정도 있을까, 그것도 이용날짜가 계속 다르기 때문에 꼭 전화로 문의를 먼저 해야한다. 이날은 s-train도 없었다. 무궁화열차가 있기는 한데 삼랑진이나 오송역을 가서 ktx로 환승을 해야한다. 버스는 직행이 있었다. 운 좋게 버스 타기를 시도해보고 정 안되면 하루를 더 묵든지, 환승해서라도 열차를 타든지 해야했다. 

기사님은 부산으로 가는 ktx가 없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며 친히 전화를 거셨다. 역에 근무하는 친구 같았다. 통화하며 재차 없다는 것을 확인한 끝에 걱정해주며 터미널에 내려다주셨다. 우선 표를 끊고, 부산행 버스 앞에서 앉아있었고, 기사님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구름이와 호두가 얼마나 얌전한지 우선 기사에게 은근히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는데 다행히 주변 기사들이 내 옆에서 딱 앉아있는 애들을 보고 '고놈들 참 얌전하네'라고 한 마디씩 던져주시며 지나갔다. 
 
뉴욕 전철을 이용하는 대형견 견주들 뉴욕 교통국이 가방 크기는 제한하지 않지만 가방에 넣어서 타야한다는 법을 발표하자 다양한 방법으로 탑승하는 사람들. 독일은 목줄만 하면 가방 없이도 탈 수 있다. 우리 호구들 살아생전에 편하게 대중교통 이용할 날이 있을까?

▲ 뉴욕 전철을 이용하는 대형견 견주들 뉴욕 교통국이 가방 크기는 제한하지 않지만 가방에 넣어서 타야한다는 법을 발표하자 다양한 방법으로 탑승하는 사람들. 독일은 목줄만 하면 가방 없이도 탈 수 있다. 우리 호구들 살아생전에 편하게 대중교통 이용할 날이 있을까? ⓒ 트위터 캡처

 
부산행 기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곤란해하시면서 안된다고 하시며 고속버스 밑에 있는 짐칸에는 실을 수 있다고 하셨다. 마침 주변 기사님들도 한마디씩 거들어 주고, 부산으로 갈 방법이 없다고 애원하자 다른 승객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셨다. '아싸'라고 외치려던 찰나 좀 싫어하는 분이 있다고 안 되겠다고 하신다. 안을 살짝 보니 승객이 10명이 채 안되는 데다가 앞부분에만 타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뒤로가겠다고하자 다시 부탁드리자 우리가 가방이 없는줄 아셨는지 그럼 강아지 집같은 데 넣어야 한다고 하셨다. 짜짠, 우리 텐트를 딱 펼쳐서 보여드렸더니 마지못해 태워주신다. 다른 기사들도 엷은 미소를 보내주셨다. 역시 순천 인심이 좋구만 하며 승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넙죽하고 뒤 쪽으로 쑥 들어갔다. 얏호 드디어 집에간다.  
 
고속버스로 순천에서 부산가는 중 들른 휴게소 전경 버스로 부산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중간에 멋진 곳에서 잠깐 산책을 할 수 있다.

▲ 고속버스로 순천에서 부산가는 중 들른 휴게소 전경 버스로 부산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중간에 멋진 곳에서 잠깐 산책을 할 수 있다. ⓒ 수피아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석양 모래밭이 정말 넓은 다대포 해수욕장은 호구들의 천국

▲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석양 모래밭이 정말 넓은 다대포 해수욕장은 호구들의 천국 ⓒ 수피아

 
구름아 호두야. 너희를 만난건 너희만 만난 게 아니라 길에서, 보호센터에서, 애견샵에서, 번식공장에서, 동물원에서, 투견장에서, 주인없이 오랫동안 혼자 집에서, 짧은 줄에 평생 묶여있는 시골에서, 모란시장에서, 죽어서야 자유를 누리는 가축동물... 등등 고통받는 다른 동물들의 세계까지도 함께 온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혀주고 성장하게 해줘서 고마워. 우리 다른 동물 친구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뭐라도 해보자. 

이번 영화제 여행은 이렇게 끝이지만 이번 경험으로 인해 앞으로의 우리 여행은 좀더 확장될 수 있을거 같다. 너희들도, 나도 자신감이 더 생겼으니까. 앞으로도 우리 여행은 쭉 계속됩니다.
순천만동물영화제 뽀삐 잡식가족의 딜레마 유기견 사지마세요 입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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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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