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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바라보는 두 가지 목소리

"영업 압박이 너무나 커요…모든 게 촘촘하게 점수화돼 늘 성과 평가를 받아요. (회사가) 고자세로 대하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사실 은행 업무야 ATM을 이용해도 되고…노조가 대화로 해결을 안 하고 끝내 파업을 한 것이 괘씸하다"

9일 KB국민은행 파업 소식을 전한 한겨레와 동아일보의 첫 기사 첫 마디입니다. 한겨레는 파업에 나선 국민은행 노동자 김 아무개 씨의 목소리부터 들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는그 파업을 탐탁지 않아하는 시민 김 모씨의 목소리부터 담았습니다.

누구의 시각으로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됩니다. 노동자의 시각에서 보면 파업은 부당함을 바꾸는 정당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보면 이기적인 행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이 누구의 시각으로 기사를 쓰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노동자의 시각'에서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왜 노동자가 파업에 나섰는지, 그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이 당연한 의문과 그 해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시민'을 내세워 노조 혐오를 조장하거나 사용자 측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사는 쏟아냅니다.

시민 불편 없었지만 시대착오라고 파업 비판

8일 새벽까지 이어진 협상이 결렬되고 국민은행 노조가 경고성 '하루 파업'에 돌입하자, 언론은 시민 불편이 초래됐다며 비판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동아일보는 <국민은행 파업에 직원 32% 동참… 3110만 고객 불편 불가피>에서 "국민은행 파업에 따른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영업점을 정상 운영"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영업점 이용 시 혼잡 예상" 등 시민 불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썼습니다.

중앙일보 <KB국민은행, 19년 만에 총파업…고객불편 이어질 듯>, 한국경제 <19년만에 총파업 돌입한 KB국민은행 노조…고객 불편 빚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언론이 '고객 불편'부터 꺼내 들다 보니, 노동자들이 왜 파업에 나섰는지 자세히 짚어주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파업으로 인한 별다른 시민 불편이 초래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파업이 사전에 예상됐고 국민은행도 대책을 세웠으며 인터넷뱅킹이 정상적으로 운영된 까닭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9일 언론은 시민 불편은 없었지만 '과다 인력' 현실이 드러났다는 점에 집중하며 파업을 비판합니다.

이러다 보니 같은 언론사에서 상호 모순되는 기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동아일보는 8일 <3110만 고객 불편 불가피>라고 헤드라인을 뽑았지만, 9일 자 지면에서 "은행 파업으로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경제도 8일 <19년 만에 총파업 돌입한 KB한국은행 노조…고객 불편 빚어>라고 주장하더니 다음 날 <일선 지점 큰 혼란 없었다…과다인력 실상 드러나>라고 비판했습니다.

 
△ 기사 제목에서 국민은행 파업이 시민 불편은 없었지만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 사례. 하지만 일부 언론은 하루 전 ‘시민 불편’이 초래됐다며 비판했다(1/8~1/9, 인터넷판 포함) ⓒ민주언론시민연합
 △ 기사 제목에서 국민은행 파업이 시민 불편은 없었지만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 사례. 하지만 일부 언론은 하루 전 ‘시민 불편’이 초래됐다며 비판했다(1/8~1/9, 인터넷판 포함)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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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파업에 비판적인 시각에서 단면만 바라봤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노동자를 파업으로 내몬 사용자를 탓해야

매일노동뉴스 <KB국민은행 노동자 1만명은 왜 19년 만에 파업했나>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이번 국민은행 노사 협상의 핵심쟁점은 △ 임금 피크제 도입 시기 △호봉상한제(페이밴드) 일괄 폐지 △저임금직군 경력 추가 인정 △성과급 지급입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임금이 대폭 감소하다 보니 퇴직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금피크제 도입시기를 1년 늦추라는 산별합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측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가장 첨예한 쟁점사안인 '페이밴드'제는 연차가 높아져도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사실상의 '성과연봉제'입니다. 현재 국민은행은 2014년에 입사한 행원들에게만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측은 전직원 확대 적용을 희망하지만 노측은 "페이밴드가 선후배 간의 차별을 조장하고, 은행이 임금결정 권한을 행사해 노조를 무력화하는 제도"라며 일괄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7월 국민은행 직원이 실적압박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져 노측은 단기 실적을 부추기는 페이밴드제에 부정적입니다. 지나치게 성과주의를 강요하면 궁극적으로 공공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저임금직군 차별해소도 중요한 쟁점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2014년 은행 창구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4천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비정규직 근속기간의 25%만 경력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이에 지부는 경력인정 기간을 더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과금 지급의 경우 일부 언론의 주장과는 다르게 부차적 사안입니다. 국민은행 측이 막판 협상 과정에서 성과급 300% 지급을 제안했지만, 국민은행 지부 관계자는 "돈만 먹고 나가떨어지라는 식의 오만한 행태에 조합원들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억대 연봉? 평균의 함정…임원 연봉까지 다 합친 결과

언론이 강조한 내용 중 하나는 '국민은행 임직원 평균 연봉 9,100만원'입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연봉 1억 은행원들의 파업, 노조 천국 한국>에서 "평균 연봉 9100만원인 KB국민은행 노조가 어제 파업을 했다"고 말합니다. '억대 연봉' '평균 연봉 9,100만원'은 동아‧조선‧중앙‧매일경제‧한국경제에서 모두 한차례 이상 언급됐습니다. 전형적인 '귀족노조' 프레임입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기사 제목과 본문 어디에서도 연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 ‘억대연봉’ ‘평균 연봉 9,100만원을 언급한 기사 (1/9) ⓒ민주언론시민연합
 △ ‘억대연봉’ ‘평균 연봉 9,100만원을 언급한 기사 (1/9)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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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균의 함정이 있습니다. 국민은행 평균 연봉은 임원부터 일반행원, 계약직 등 직원까지 모두 합해 평균을 냅니다. 2016년 기준 국민은행 평균 연봉은 8,300만원이지만, 임원의 평균 연봉은 4억 3,100만원이었습니다. 평균 연봉 액수가 부풀려진 것입니다. 또한, 국민은행 사외이사들도 2016년에 5,011만원을 챙겨갔습니다. 허인 KB국민은행장의 2018년 상반기 연봉은 8억 7,500만원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귀족'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면, 실제 파업에 참여한 일반 직원들이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는데, '귀족노조'라고 매도당합니다. '진짜 귀족'은 따로 있는데 귀족이라 호명되지 않습니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국민은행 노조는 왜 파업에 나섰나?" 이 당연한 질문을 자세히 짚은 신문사는 한겨레뿐입니다. 한겨레는 <모든 업무 점수화 '성과 압박'하고 승진 못하면 '호봉 제한' 불신 쌓여>에서 "왜 파업했나"라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승진과 호봉 연계 '페이밴드' 전 직원 확대하려 하자 반발, 임금피크제 시기 싸고도 이견"이라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전해줍니다. 억대 연봉이라 하고 과잉 인력이라 비판하는 기사와는 다른 시각에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그:#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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