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 디 아일> 포스터.

영화 <인 디 아일> 포스터. ⓒ ?M&M 인터내셔널

 
난 '마트'와 인연이 깊다. 아빠와 엄마가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해 10대를 온전히 보냈고, 20대 중반에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에 가서 현지 대형 마트에서 야간 청소를 해봤다. 이후 한인 마트에서 반 년 이상 일했으며, 20대 후반에는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알바로 일 년을 일했다. 

누구보다 마트를 잘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마트의 앞뒤상하좌우를 웬만큼 안다고 할 순 있을 것 같다. 매장과 창고를 오갔고 돈이 오고 가는 것도 관리했고 마트의 시작과 끝을 지켰으며 닫고 열 때까지의 시간도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니 수많은 사건들이 생기고 수많은 사연이 있는 그곳 마트, 생각 외로 고객들간의 또는 직원과 고객간의 일보다 직원들간의 일과 사연이 많다. 그곳, 그들, 그 일을 들여다보는 건 하나의 공간,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를 둘러보는 것과 같다. 

'이동진의 2018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에 오르며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 독일 영화 <인 디 아일>은 대형마트에서 일하게 된 신입 남직원이 선배 여직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이 표면 위아래로 다채롭고 다층적인 이야기를 함유하고 있다. 

대형마트 신입직원의 사랑과 성장
 
 대형마트에 취작한 신입직원의 사랑과 성장이라는 외형을 띈다.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대형마트에 취작한 신입직원의 사랑과 성장이라는 외형을 띈다.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창고형 대형마트 음료 파트에 취직하게 된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 분)은 내성적이고 말이 없지만 일을 배우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상반신 전체를 아우르는 문신을 감춘 채 혼자 사는 집과 마트를 오갈 뿐인 그, 한편에선 사수의 가르침을 받고 한편에선 어느 여직원과 사랑에 빠진다. 

음료 파트 수장 브루노(피터 쿠스 분)는 자상하게 크리스티안을 지도한다. 과거 통일 전 동독의 트럭 기사였다던 그는 이젠 작은 지게차를 몰고 있을 뿐이지만, 푸념이나 불만 없이 그저 그때를 그리워할 뿐 크리스티안에게 지도함에 있어 그보다 더 정확하고 친절할 수가 없다. 그도 혼자 산다. 

크리스티안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여직원은 마리온(산드라 휠러 분)이다. 그녀는 마트 직원 모두에게 좋은 인상인데, 크리스티안에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안에게 또 다른, 아니 진정한 출근 이유가 된 그녀이지만 그녀에겐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비밀은 마리온뿐만 아니라 크리스티안에게도, 브루노에게도 있는 듯하다. 물론 크리스티안을 제외한 모든 마트 직원들이 알고 있는, 말할 수 있는 비밀이다. 크리스티안은 마리온과의 사랑을 잘 키워나갈까, 그는 이곳에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잔잔한 와중, 과거의 사건들
 
 지극히 잔잔하지만, 결코 잔잔하지 않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지극히 잔잔하지만, 결코 잔잔하지 않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이 영화, 참 잔잔하다. 잔잔함의 종류와 수위는 영화가 영화 같지 않게 한다.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시피 하다. 와중에 크리스티안과 마리온의 사랑이 가장 큰 일이고 크리스티안과 브루노의 지게차 연수와 크리스티안과 전(前) 친구들의 만남 등이 주요한 일이다. 

진짜 사건은 그들의 과거에 있다고, 있었다고 하겠다. 크리스티안의 문신과 예사롭지 않은 친구들, 브루노의 통일 전 동독 시절 트럭 운전 얘기, 크리스티안만 빼고는 모두 아는 마리온과 그녀의 남편 얘기. 

잔잔할 뿐더러 누구나 지녔음직한 비밀 또는 사연이어서 별 다를 게 없을 이들의 과거는, 지루할 듯한 영화에 은근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배경음악 한 점 없이 진행되는 와중, 예상치 못한 그러나 굉장히 좋은 적재적소 배경음악이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도 없는 퇴근 후 대형마트 통로를 지게차만 돌아다니는 첫 장면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야간작업 장면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고객들이 북적북적 돌아다니는 장면은 행진곡들로 채운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현대적인 음악들도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굉장한 어울림으로 함께 한다. 

독일 통일 이야기
 
 독일 통일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동독과 네오나치 등.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독일 통일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동독과 네오나치 등. 영화 <인 디 아일>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영화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는 독일 통일 이야기가 크게 작용한다. 독일 통일은 축복받아 마땅하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합쳐진, 아니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혼란과 희생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동독 노동자의 경우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브루노를 통해서, 또 크리스티안을 통해서 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안의 경우 네오 나치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이념을 떠나서 또는 이념적으로 동독은 경쟁 아닌 협력과 협동과 공동체를 지향했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대형마트는 그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데, 크리스티안이 마리온을 사랑하게 되자 모두들 너무 나서지 않으면서도 걱정해주고 모습과 크리스티안이 신입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뭔가 해보려 하자 응원해주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모습들이 이 잔잔하고 자칫 지루하며 어떨 때는 딱딱하고 차가울 수 있는 분위기를 일순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느덧 크리스티안을 응원하고, 마리온을 걱정하며, 브루노를 우러러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인 디 아일 대형마트 사랑과 성장 독일통일 동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