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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상황이 가진 적어도 하나의 본질적인 특징, 즉 적대적 행동 이전에 발생하는 희생자에 대한 강력한 평가절하는 이 실험에서 연구되지 않았다. 10년 넘게 계속된 극단적인 반유대인 선전광고는 유대인의 파멸을 독일인들이 수용하도록 체계적으로 준비시켰다. 유대인은 점차 시민과 국민의 범주에서 제외되었고, 마침내 인간으로서의 지위조차 부정되었다. 희생자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절하는 야만적인 행위 (...)" -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에코리브르, 2009, 정태연 역, p.35)

"10년 넘게 계속된 극단적인 반유대인 선전광고는 유대인의 파멸을 독일인들이 수용하도록 체계적으로 준비시켰다"는 스탠리 밀그램의 섬뜩한 경고는 최근 범람하는 가짜뉴스의 본질이 프레임 전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이미 10년 전에 예고되었고, 결과적으로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반유대주의라는 프레임이 10년 넘게 주입된 가시적 결과물인 셈이다. 그로 인해 유대인은 "점차 시민과 국민의 범주에서 제외되었고 마침내 인간으로서의 지위조차 부정"되었는데 이와 같은 "희생자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절하"는 야만의 시대에 대한 전조로 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프레임이 곧 10년 후의 프레임이고, 10년 후의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지금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10년 후의 프레임을 겨냥한 현재 진행형인 프레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 감시, 견제 등이 뒤따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예컨대 다문화 이주민, 난민, 페미니즘, 젠더 등에 대한 담론 등이 유력한 예비 후보들인 셈이다. 

극우기독세력과 보수정당의 정치적 동맹
 
지금의 프레임이 곧 10년 후의 프레임이고, 10년 후의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지금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프레임이 곧 10년 후의 프레임이고, 10년 후의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지금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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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변상욱 대기자는 2017년 언론 매체와의 대담에서 극우기독세력과 보수정당의 정치적 동맹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 부시와 기독교 우파의 동맹은 한국에서 이명박과 기독교 우파의 동맹으로 판박이처럼 재연되었다. 이들은 다문화 이주민, 난민, 페미니즘, 젠더 등에 대한 담론을 선점하고 정치적 이슈로 확대재생산하면서 프레임을 주도한다.

특히 이명박 정권 이후 우파에서 분화된 극우기독세력은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반낙태, 반이슬람 등 한층 정밀하고 구체화된 이슈들로 정치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해 변상욱 대기자는 반낙태 이슈는 국내에서 통할 가능성이 낮지만 반이슬람 이슈는 이미 다문화 이주민, 난민 등에 대한 경계, 혐오 등의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 현실 속에 들어와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는 미국, 유럽 등 남의 일로 여기던 반이슬람 이슈가 우리 현실 속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사례인지도 모른다. 미국, 유럽 등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한국 정치 지형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변상욱 대기자가 경고한 극우기독세력과 보수정당의 정치적 동맹, 반이슬람, 페미니즘, 젠더 이슈 등에 대해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 걸까?

다문화 이주민, 난민, 페미니즘, 젠더 등에 대한 담론의 공통점은 근본주의적 접근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만나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결국 근본주의가 아닌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우리 현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타협하고 조율해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다문화 이주민, 난민, 페미니즘, 젠더 등에 대한 담론이 파열음을 내며 갈등,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과정이 아닌 결과, 목표만을 강조하는 극단적 접근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잃어버린 10년이 안 되려면

프레임에 대해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이 바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이다. 그중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익적 도덕 가치의 위계에서 최상의 가치는 도덕 가치 자체의 보존과 방어다. 이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인프라를 건설한다. 다음으로 미디어를 접수한다. 그 다음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짠다."

"10년 넘게 계속된 극단적인 반유대인 선전광고는 유대인의 파멸을 독일인들이 수용하도록 체계적으로 준비시켰다"는 스탠리 밀그램의 발언에 대한 부연이나 각주처럼 느껴진다. 결국 10년 넘게 인프라를 건설하고 미디어를 접수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짜야 하나의 프레임이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프레임이 뭐길래 10년 넘게 인프라를 건설하고 미디어를 접수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인지과학이 발견한 근본적인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프레임과 은유의 견지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프레임은 우리 두뇌의 시냅스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경 회로의 형태로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만약 사실이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으면,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무시된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흔한 속설이다. 만약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들 모두를 대중의 눈앞에 보여준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헛된 희망이다.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141쪽

그렇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에 따르면 프레임은 우리 두뇌의 시냅스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 심지어 만약 사실이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으면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무시된다고 하니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최근 더욱 가열(加熱)되고 있는 가짜뉴스 논란을 프레임 전쟁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면 지금의 패배야말로 진정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르기에 손색없을 거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물론 모든 뉴스가 가짜뉴스라거나 모든 가짜뉴스가 10년 후의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는 식의 얘길 하는 것이 아니다. 가짜뉴스냐 진짜뉴스냐 또는 일회성 가짜뉴스냐 10년 후를 겨냥한 가짜뉴스냐 등을 구분하고 규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 있겠는가. 가짜뉴스가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프레임이 반이슬람이든 페미니즘, 젠더 이슈이든 결국 중요한 건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 접근 방식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남성 근본주의, 여성 근본주의 등의 근본주의적 접근 방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가짜뉴스는 진실을 알리고 일깨우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반이슬람, 페미니즘, 젠더 등의 거대 담론 프레임에 대해선 근본주의가 아닌 상대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우리 현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타협하고 조율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합리적 사고, 수준 높은 토론 문화의 정착 등 한국 사회의 성숙, 발전도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늘 그렇듯이 왕도는 없다. 가짜뉴스와의 싸움은 결국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뭐냐는 물음에는 한국 사회, 특히 시민 사회의 성숙, 발전이라는 예상 가능한 대답 외엔 딱히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바로 거기에 평범한 진리가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교보 특별판)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와이즈베리(2018)


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에코리브르(2009)


태그:#프레임,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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