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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생가가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 수도가 끊겼는지 길가의 소화전을 열어 마실 물을 구하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 생가가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 수도가 끊겼는지 길가의 소화전을 열어 마실 물을 구하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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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티플라노를 건너 칠레 도착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알티플라노 고원으로 이어지는 2박 3일 여행의 종착지는 칠레와의 국경 히토 카혼이었다. 5920미터 리칸카부르 화산이 높이 솟아 있어, 거대한 고원이 끝나고 마침내 아타카마 사막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칠레 입국시 농축산물 검사가 까다롭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모든 여행자의 가방을 하나 하나 꼼꼼이 검사했고, 몇몇 여행자가 코카잎도 아닌 코카캔디까지 압수당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고산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던 코카와의 이별, 잉카의 땅 고산지대와의 작별이었다.

칠레는 남미 이웃 나라들에 비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높고 안정된 사회라고 한다. 그걸 증명하듯 갈아탄 칠레 승합차에는 볼리비아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에어컨이 나왔고, 도로는 덜컹거리는 비포장에서 매끈하고 검은 아스팔트로 바뀌었다. 마치 비행기마냥 한 시간만에, 4620미터 알티플라노에서 2420미터 아타카마 사막으로, 이천 미터 고도가 갑자기 낮아지니 귀가 먹먹했다.
 
볼리비아-칠레 국경 히토 카혼 Hito Cajon. 볼리비아 알티플라노 여행을 마치고 칠레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는 여행자들.
 볼리비아-칠레 국경 히토 카혼 Hito Cajon. 볼리비아 알티플라노 여행을 마치고 칠레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는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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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카마 사막의 관광지, 산페드로에 들어서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보였다. 현지인 대다수가 백인이라 유럽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와 함께 순식간에 기온도 변했다. 긴옷들을 얼른 벗어 배낭에 넣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을 때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는데, 볼리비아와 칠레는 많이 달랐다. 마트 앞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물 한 병에 이천 원.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게 고도와 기온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물가였다.

나는 여행에서 되도록 육로로 이동하며 버스에서라도 그 지역의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서 중부 수도 산티아고,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게다가 버스의 가격이 저가 비행기 가격보다 비싸서 산티아고까지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칠레는 남북 길이가 4270킬로미터로 4395킬로미터 길이의 브라질 다음으로 긴 땅의 나라다. 길이에 비해 동서 폭은 약 175킬로미터밖에 되지 않고 그래서 유난히 더 길쭉해 보인다. 워낙 길어서 기후는 매우 다양하다. 아타카마 사막은 400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이고, 중부는 온난한 해양성 기후이며, 파타고니아는 눈이 많고 빙하가 덮힌 추운 지역이다.

하루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밤중에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남미의 교통 요지답게, 붐비는 공항에는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든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도 정든 깔개를 펴고 공항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1973년, 사회주의 정책을 펴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미국이 개입하고 피노체트가 주도한 쿠데타에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 죽은 대통령궁 옆 중심가 숙소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죽기 직전 아옌데는 국영 라디오를 통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중략)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민중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칠레 식당들은 비싸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나마 흔한 거리음식인 핫도그와 곡물음료 '우예실요' 를 사먹고, 매일 숙소에서 요리를 하게 됐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저렴하고 영양많은 정식이 그리웠다.

잘 살고 안정된 사회여서일까, 산티아고에는 유난히 이민자와 노숙인이 많았다. 칠레 현지인들로부터, 외국에서 온 소매치기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다. 어떤 사회든 낯선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있겠지만, 경제적 격차가 클수록 그 차별은 심해지는 것 같다. '하나의 아메리카'를 얘기하는 또다른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불안정한 고국을 떠나 잘 사는 이웃 나라에 왔지만 거리의 이민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는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산티아고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곡물음료 우에실요를 파는 상인. 유난히 친절하고 맛있는 복숭아를 많이 담아 주셨다. 삶은 밀과 복숭아, 한국의 수정과와 비슷한 계피 음료로 만드는 음식이다.
 산티아고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곡물음료 우에실요를 파는 상인. 유난히 친절하고 맛있는 복숭아를 많이 담아 주셨다. 삶은 밀과 복숭아, 한국의 수정과와 비슷한 계피 음료로 만드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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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많이 들은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에는 노숙인이 많았다.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많이 들은 산티아고 아르마스 광장에는 노숙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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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계곡 발파라이소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1536년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건설한 항구도시 발파라이소로 이동했다. 여행기 <50년간의 세계일주>에서 앨버트 포델은 '아스팔트의 법칙'을 소개한다. 아스팔트 도로로 상징되는 도시와 문명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사람들의 생활에 여유가 있고 이방인들에게도 친절하다는 이야기였다.

발파라이소가 시골은 아니지만 대도시 산티아고티아고에 비해 훨씬 여유로웠고, 여행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현지인들이 많아 정겨웠다. '발파라이소'라는 이름은 '계곡'을 뜻하는 스페인어 '바예 valle'와 '천국'을 뜻하는 '파라이소 paraiso'의 합성어이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놓고 곧바로 바다로 향했다. 태평양. 저 큰 바다를 건너 가면 고향 통영의 작은 바다에 가닿으리라.

도심 곳곳에 열린 벼룩시장과 중앙 광장을 지나 발파라이소의 랜드마크, 낡은 승강기 '아센소르'와 벽화, 알록달록한 집들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발파라이소 언덕 중에서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쓴, 칠레를 너머 남미를 대표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던 집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시인의 생가답게 집은 마을 교회만큼 크고 정원도 넓었다. 입장료가 꽤 비싸서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집 앞에 마련된 도서관에서 조용히 그의 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제 열둘을 세면 / 우리 모두 침묵하자. //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 (중략) 차가운 바다의 어부들도 / 더 이상 고래를 해치지 않으리라./ 소금을 모으는 인부는 / 더 이상 자신의 상처난 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리라. (중략)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침묵 속에서>

사회주의자 아옌데가 바라던 더 나은 사회는 이제 실현된 것일까. 칠레 공산당 의원이기도했던 네루다가 노래한 민중의 슬픔은 나아진 것일까. 국가 사회주의는 크게 실패했지만, 더 나은 세상, 이웃들과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리라. 아옌데를 추모하는 사람들, 네루다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이어질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생가에서 바라본 발파라이소와 태평양. 저 큰 바다를 건너 가면 고국 한반도의 바다에 가닿으리라.
 파블로 네루다 생가에서 바라본 발파라이소와 태평양. 저 큰 바다를 건너 가면 고국 한반도의 바다에 가닿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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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가장 큰 집, 네루다의 집 뒤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 바로 앞에서 한 모녀를 만났다. 그들의 집에는 수도가 끊겼는지, 두 사람은 길가의 소화전 밸브를 힘겹게 열어 마실 물을 받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았다.

'천국의 계곡' 발파라이소. 그 아름다운 언덕에도 그늘은 있었다. 언덕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차량은 줄어들었고, 길이 좁아지면서 집의 크기도 같이 줄어들었다. 화려한 색채도 집의 크기처럼 점점 옅어졌고 꼭대기에는 듬성듬성 쓰러질듯한 판잣집들만 있었다. 그럼에도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주민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은 것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새파란 바람의 영향일까.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집에는 수도가 끊겼는지, 두 사람은 길가의 소화전 밸브를 힘겹게 열어 마실 물을 받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았다.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집에는 수도가 끊겼는지, 두 사람은 길가의 소화전 밸브를 힘겹게 열어 마실 물을 받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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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라이소 풍경.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발파라이소 풍경.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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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몬트, 파타고니아의 시작

발파라이소 버스터미널의 안내원에게 남쪽의 발디비아와 오소르노가 아름답다는 추천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듣는 지명이었지만 어차피 파타고니아로 가는 길목이니 들르기로 했다. 여러 버스 회사 중에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밤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 도착한 발디비아는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안내원이 아름답다고 한 장소는 아마 터미널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인가 보다, 생각하며 무작정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관광객은커녕 현지인도 드물었다. 모험을 나선 기분이 들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강도, 호수도, 산도 다 만날 수 있으리라.

삼십 분, 한 시간, 몇 시간 걷지도 않았는데 십삼 킬로그램의 가방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어깨와 다리가 금방 아파왔다. 한적한 시골이라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오랜만에 히치하이킹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배낭을 매고 걷는 내 모습이 잘 보이고 차가 멈춰 설 자리가 있는 한적한 직선도로에 다다르면 다가오는 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포르 파보르 Por favor 저 좀 태워주세요.'

20킬로미터를 걷고 80킬로미터는 두 번 차를 얻어타고 오소르노에 도착했다. 한적한 길은 아름다웠지만 가방이 무겁고 히치하이킹도 쉽지 않아, 항구도시 푸에르토몬트까지는 버스를 탔다. 푸에르토몬트는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곳이고 공항이 있어서 여행객들이 많았다. 터미널 앞에는 행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술값을 구걸하는 취객 무리가 있었다. 파타고니아에는 히치하이킹과 야영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다고 들었기에 야영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들을 보니 터미널 주변 야영은 위험할 듯 했다. 앞바다에 떠있는 탱글로섬이 조용하고 안전해 보여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섬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 눈덮인 화산 아래 자리한 푸에르토몬트 경치를 마주보며 보시락 보시락 장 봐온 음식들로 저녁을 먹고, 바람이 덜 부는 수풀 속에 텐트를 쳤다. 아타카마 사막으로부터 남쪽으로 2500킬로미터, 해가 지면 추울 정도로 날씨가 달라졌다. 남극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세계의 끝 파타고니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발디비아에서 오소르노로 가는 길
 발디비아에서 오소르노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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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화산 아래 자리한 푸에르토몬트 전경.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 지점이다.
 눈 덮힌 화산 아래 자리한 푸에르토몬트 전경.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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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몬트 탱글로 섬에서 만난 마리아 나인쿨 씨 Maria Naincul
 푸에르토몬트 탱글로 섬에서 만난 마리아 나인쿨 씨 Maria Nainc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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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세계여행, #남미여행, #칠레, #발파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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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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