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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보도한 194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보도한 194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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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때였다. 1949년 1월 8일 열린 내외신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가 우리의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3일 뒤인 1948년 8월 18일에도 이 대통령은 '대마도를 속히 반환하라'는 대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9월에도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통해 일본을 압박했다.

이승만이 내세운 근거는, 대마도가 고려·조선에 조공을 바친 사실과 대마도를 경유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군을 상대로 대마도민들이 일본을 몰아내고자 항일 투쟁을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과의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항일투쟁을 했다는 것이었다. 194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승만은 대마도민들의 항일투쟁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그 역사적 증거로는, 도민(島民)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대마도의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뽑아다가 동경박물관에 둔 것으로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비석도 찾아볼 생각이다."
 
대마도민들의 항일투쟁 증거들을 일본이 지워버렸지만 그것마저 찾아내 대마도가 한국땅임을 밝히고 영유권을 회복하겠다는 게 이승만의 결의였다. 한국 대통령이 이 정도로 결의를 보였으니,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기가 죽은 일본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지유신 이듬해인 1869년 일본에 흡수되기 전까지, 대마도는 조선의 신하국인 동시에 일본의 신하국이었다. 조선은 대마도 지배자를 대마도주로 책봉하고 일본은 대마번주로 책봉했다. 또 조선과 일본은 대마도의 조공을 받는 대신 회사(回賜, 답례)를 했다. 조공보다 회사가 더 많은 게 대체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에, 대마도는 양쪽에 신하국을 자처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안보 이익을 지켜냈다.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한다고 해서 정치적 독립성이 상실되지는 않았다. 조선이 중국에 사대(책봉+조공)를 하면서도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듯이, 대마도 역시 상국(上國)인 조선과 일본 양 쪽에 사대하면서도 독립성을 지켰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상국의 입장에 있는 국가들은 사대관계라는 연고권을 활용해 신하국에 대한 제3국의 접근을 견제했다. 그런 연고를 기초로, 조선은 조선대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대마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일본은 일본대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동일한 권리를 주장했다. 
 
대마도 이즈하라 항구. 2008년 1월에 찍은 사진.
 대마도 이즈하라 항구. 2008년 1월에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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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대마도 반환을 주장한 것은 그런 연고권에 바탕을 뒀다. 1949년 당시의 대마도가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이 역사적 연고를 근거로 대마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역시 연고권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연고권과 충돌되므로 대한민국정부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승만의 반환 요구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더 큰 충돌로 비화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된 게 꼭 일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논문 '1945~1951년 미·소, 한·일의 대마도 인식과 정책'은 이렇게 말한다.
 
"미 국무부는 1951년 7월 한국 정부가 요청한 대마도 반환 요구를 기각했다. 1951년 7월 9일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대일 평화조약특사는 양유찬 주미한국대사에게 '대마도가 오랫동안 일본령이었다'며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 2011년에 <한국근현대사 연구> 제59집에 수록
 
미국은 1869년까지 대마도가 조·일 양국의 공동 신하국이었던 사실을 부정하고 일본의 신하국이었던 사실만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한국의 대마도 연고권 주장을 차단했다. 미국의 조치로 영토분쟁이 깔끔히 해결된 것이다. 이로써, 패망으로 보복을 두려워할 처지에 놓였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확보한 대마도를 미국 덕분에 지켜낼 수 있게 됐다.

한일간 문제에 미국이 개입해 처리 방향을 결정해주는 일은 그 후로도 계속 일어났다. 서로 화해할 생각이 별로 없는 두 나라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묶어진 데도 미국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

대마도 문제 때는 미국의 중재가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1973년 도쿄에서 벌인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되던 상황에서, 1974년에 재일동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를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일본 정부가 '문세광은 북한과 관계없이 박정희 독재를 무너트리고자 단독으로 일을 벌였다'고 발표해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박정희 정권은 국교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고,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하나의 코리아' 원칙을 부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지시 하에 한일 양국의 미국대사들이 중재에 나섰다. 미국은 '특사를 파견해 한국에 사과하라'고 일본에 압력을 가했다. 박 정권이 먼저 도발했는데도, 일본한테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훨씬 더 격앙된 박정희 쪽을 달랠 목적이었다. 누가 더 잘못했는가보다도 누구를 먼저 달래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사과할 쪽을 결정했던 것이다.

일본이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며 한국을 자극하고 이에 맞서 한국민들이 성토하는 상황이 거의 연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일간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것 역시 미국의 중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려면 미국 주도 하의 한미일 삼각동맹이 제대로 가동돼야 하기에, 미국은 한일 분쟁이 위험 수위로 발전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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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전혀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두 나라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징후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광개토대왕함-일본 초계기 문제로 한일관계가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미국이 중재하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두 사안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식은, 1870년대부터 일본이 이웃나라들에 시비를 걸고 영토를 빼앗을 때 보여준 행동 패턴과 거의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이성을 상실하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도, 미국은 뚜렷한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양국 분쟁이 벌써 봉합됐을 텐데도, 사태가 점점 더 심화되고만 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황 전개다.

이는 경제적 이익이 생기지 않는 한 외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에 더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북한의 위협이 감소된 사실도 한몫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한일이 다투면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보다 대북 전략이 일차적으로 상처를 입기 쉬웠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미일 삼국의 일사분란한 대북 공조가 힘들었다.

하지만, 미국이 느끼는 북한의 체감 위협이 감소한 지금은, 한일이 다투더라도 미국의 대북 전략에 직접적 손실이 생길 가능성이 낮아졌다. 한미일 삼국의 대북공조보다는 미국의 대북 직접 접촉에 의해 북미관계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두 나라를 다독일 필요성을 과거보다 덜 느낄 수밖에 없다. 
 
광개토대왕함 주변에서 근접 비행하는 자위대 초계기. 국방부 동영상의 한 장면
 광개토대왕함 주변에서 근접 비행하는 자위대 초계기. 국방부 동영상의 한 장면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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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목할 것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제휴가 긴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돈'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좀 서먹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양국이 더 가까워지는 측면이 강하다.

이 점은, 미국이 과거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접고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신(新)구상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명확히 나타났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미국판 제갈공명인 헨리 키신저가 다져놓은 '미중의 적대적 공존관계'에 기초한 것이었다. 기존 전략은, 가급적이면 중국을 미국 편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인도·태평양 구상은 2017년 11월 미일 정상회담 때 아베 신조 총리가 공식 제안한 것이다. 육로와 해로를 잇는 현대판 실크로드(비단길)를 구축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세계전략에 맞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향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자는 전략이다.

미일동맹에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의 바닷길 진출을 양방향에서 견제하는 전략이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의 논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대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이어진 베트남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의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명 대신 인도-태평양이라는 지명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이 지역의 자유·안정·번영을 위해서는 형평과 상호주의에 입각한 경제관계 수립이 필요하며 동시에 법의 지배, 항행 및 비행의 자유에 관한 원칙 등을 언급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2017년 12월 발간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 명시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아태전략으로 공식화된다.

문서에서는 먼저 중국을 경제적 부상과 함께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야심을 가진 나라로 주목한다. 미국이 아태 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중국의 지역 장악을 견제하고 지역의 주권과 자주를 보호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제시한다." - 2018년에 한국군사학회가 발행한 <군사논단> 제95호에 수록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미일관계가 한층 긴밀해진 상황에서 미국이 한일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한국 정부가 한일 분쟁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여기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함을 의미한다.

예전처럼 분쟁 도중에 국무부와 미국 대사들의 개입으로 사태가 봉합될 가능성이 별로 없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결말을 낼 수밖에 없게 됐음을 뜻한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은 2017년 7월 6일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은 2017년 7월 6일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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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장에서는, 일본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일본의 입장을 한층 더 존중해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결정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일본이 한국한테 어떻게 하든, 미국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일 갈등이 보다 격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진행되는 강제징용 판결 문제나 레이더 갈등이 더 큰 위기의 전조(前兆)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양국 분쟁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에 악영향을 주거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부담을 끼치게 되면, 미국이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한일 대립이 격화된다 해도 미국은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북한이나 중국이 중재한다 해도 일본이 북·중의 말을 경청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의 대일 외교 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됐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의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태그:#레이더, #강제징용 판결, #한일관계, #대마도, #인도 태평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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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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