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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빈소에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빈소에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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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신과 의사가 병원에서 환자의 칼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그의 죽음을 기리고 있다. 그는 용의자가 칼로 자신을 위협하며 달려드는 긴급한 상황에서도 간호사 등 다른 직원들을 먼저 대피시키기 위해 애썼고 그 과정에서 넘어져 칼에 찔렸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8년 전 내게 벌어진 한 사건이 떠올랐다.

어느 의사의 죽음이 남긴 것

2011년 7월, 나는 부산으로 향하는 단체버스에 올랐다. 한진중공업 대량해고 철회와 합의서 이행을 요구하며 7개월째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홀로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희망버스'. 전국 각지의 일반 시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자비로 버스를 대절해 부산으로 모이는 행사였다.

이미 몇 주 전 1·2차 희망버스가 성황리에 부산을 다녀왔고 내가 탄 건 3차 희망버스였다. 전국에서 1만 5000여 명의 참여가 예정된 규모가 큰 행사였다. 부산역 광장에서 벌어지는 문화제에 참여한 뒤 영도다리를 건너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고 공원에서 노숙을 한 뒤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차 안에서 인솔자에게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희망버스에 '참'자를 붙인 '참희망버스' 수백 대가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부산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거였다. 참희망버스에 탄 이들은 다름 아닌 어버이연합회 회원들. '빨갱이 불순세력'을 막아내겠다는 게 그들이 버스에 오른 이유였다. 인솔자는, 그들이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지 모르니 반드시 일행과 함께 움직여야 하고 대열에서 뒤처지거나 길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차안은 긴장이 감돌았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른 역 앞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의외로 평화로우면서도 활기차고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영도 서연이 아빠 트위터 친구들'이라는 팻발을 든 사람들이 자외선 차단제와 물비누를 나눠주었고 '희망약국'에서 왔다는 약사들은 물티슈와 부채를 건넸다. 광장에선 문화제가 진행 중이었다. 문화제가 끝나면 남포역을 거쳐 도보로 영도다리를 건널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영도다리를 폐쇄해 발이 묶였다.

새벽 한 시 남포역. 집회 참석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도로 들어가는 방법은 영도대교나 부산대교를 건너는 것. 우린 막힌 영도대교 대신 부산대교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 다리는 무난히 지날 수 있었다. 영도에 들어서서 주위를 보니 아뿔싸, 일행 중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그는 한 대학 동아리 후배들의 인솔자이기도 했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사라진 일행의 이름을 불렀고, 그러는 사이 대열 끄트머리로 뒤처지고 말았다.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어두운 거리. 어느 순간부터 술 취해 얼굴이 벌게진 노인들이 비틀거리며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의 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앞만 보고 걸었다.

그때 한 학생이 내 옆을 정신없이 뛰며 지나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억센 손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한 노인이 뭔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머리카락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옆에서 걷던 일행이 깜짝 놀라 도와달라고 외치자 앞서가던 이들이 순식간에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몇 사람이 달려들어 그의 손가락을 편 끝에 겨우 풀려났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사실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내 주위엔 사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노인에게서 나를 해치겠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쥔 손은 억셌으나 머리털이 뽑힐 만큼 강하지 않았고 나를 넘어뜨리거나 다른 곳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뭔가 퍼포먼스를 하려던 노인에게 제대로 이용당한 희생자일 뿐이었다.

그는 '조심하라'는 말도 없이 도망쳤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과 영도 주민들이 30일 오후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한진중공업 접근을 막기 위해 모여 외부세력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과 영도 주민들이 2011년 7월 30일 오후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한진중공업 접근을 막기 위해 모여 외부세력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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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정리된 후 우린 다시 길을 걸었다.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노인이 아닌, 내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간 그 학생의 다급한 표정이 자꾸 생각났다. 그는 노인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걸 알고 전력으로 달렸다. 어쩌면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 뒤에 단 한 사람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추측까지 하면서 그 학생이 몹시 미웠다. 도망치라고, 조심하라고, 아니면 외마디 소리라도 질렀다면 앞서가던 이들이 뒤를 돌아봤을 테고, 어쩌면 누구도 노인의 퍼포먼스에 이용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학생운동에 나선 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비열한 정신머리로 무슨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지, 한심하고 참담했다.

집결지에 도착하자 실종(?)되었던 일행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언니, 어버이연합한테 당했다면서요!" '당하긴 뭘 당해! 우리가 널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밀어 넣고 애써 반가운 척을 했다.

최종목적지인 영도조선소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혀 있었다. 한 공원에서 풍등을 날리고, 밴드의 음악에 몸을 흔들고 새벽녘에 공원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주최 측에서 제공한 주먹밥을 먹고, 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어디쯤이었을까. 누군가 바다 건너 우뚝 서 있는 한 크레인을 가리키며 "저것이 김진숙 씨가 타고 있는 85호 크레인"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까마득한 크레인 위에서 점처럼 조그만 사람이 이불을 털고 있었다. 바로 그였다. 김진숙 씨를 그래도 보고 간다는 뿌듯함에 잠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천에 돌아온 뒤 나는 그 일을 잊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어버이연합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도 내 머리를 움켜쥔 손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당시 쓴 메모를 들추고서야 알아챘을 만큼 이 일은 내 기억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뒤에서 칼을 들고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간호사에게 피하라 외친 의사의 기사를 보고 그 학생이 떠올랐다. 나는 그 학생에게서 두려움과 이기심을 봤다. 그런데 그의 감정이 나를 위험에 빠뜨렸을까?

그 역시 살고 싶었을 텐데...

학생은 나를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본인이 살고 싶을 뿐이었을 거다. 그의 두려움이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물론 같은 상황이 내게 벌어진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지, 맞닥뜨리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두려움과 이기심이 내 입을 막고, 두 다리를 전력질주하게 만들지 모른다. 사실은 나도 그 학생이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문득, 그 학생이 나를 지나쳐 간 뒤 혹시 뒤를 한 번 돌아보진 않았을지 궁금해졌다. 내 머리채를 휘감은 노인, 고개가 뒤로 꺾인 나, 나를 도우려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이 죄책감이,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나약한 인간에 대한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을지...

한참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간 이를 응원하러 가는 길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한동안 꽤 씁쓸했다.

이런 경험을 한 내게는, 의사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살렸기' 때문에 의로운 것이 아니다. 내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 살고자 하는 강력한 본능에 앞서 타인을 먼저 챙긴 그의 행동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댄다. 의로운 행동을 나오게 한 건 그의 내면이다.

그 내면엔 무엇이 있었으며, 그의 본능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궁금하다. 이 역시 쉽게 답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오래 기억하며 되새기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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