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새벽 조빈의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이 주요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올라섰다.

지난 1일 새벽 조빈의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이 주요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올라섰다. ⓒ 멜론/지니

 
새해 첫 날 음원차트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1일 오전 1시 멜론을 비롯한 주요 음원사이트에 갑자기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이라는 제목의 곡이 차트 상위권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는 노라조의 멤버인 조빈이 지난 2015년 발매한 첫 번째 솔로 앨범 <조빈 일집 명상판타지>의 수록곡이다. 앨범의 제목만 봐도 십수년 째 코믹한 콘셉트로 활동해왔던 조빈의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의 가사는 이렇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
이상하리만치 신기하게 모든 상황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무엇이든 상상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로또는 비교도 안 될 성공이 다소곳한 자세로 나를 영접하려 기다리고 있다."
- 조빈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 중에서.


정말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였다. 앨범 소개에는 음악 장르가 '뉴에이지'라고 되어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장르를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노래다. '명상 판타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지하게 읊조리는 조빈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 많은 누리꾼들은 새해 벽두부터 이 노래를 찾아 들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새해 첫 곡' 징크스(?) 때문이었다. '새해 처음으로 듣는 노래가 한 해를 결정한다'는 징크스가 연말부터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누리꾼들은 다가올 2019년에 대한 희망을 안고 새해 첫 곡으로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노래'를 선택한 것.

음원사이트 앨범 소개 페이지에도 '새해 첫 곡입니다 잘 들을게요', '제가 원하는 것들 뭐든지 다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등 누리꾼들의 새해 소망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노랫말이 주는 '느낌적 느낌'
 
 '돈벼락'이 수록돼 있는 가수 김필의 앨범 재킷 이미지.

'돈벼락'이 수록돼 있는 가수 김필의 앨범 재킷 이미지. ⓒ (사)한국음반산업협회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 말고도 '돈벼락'이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노래도 함께 차트에 올랐다. 음? 근데 가수 이름이 김필?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우리가 아는 그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6>의 준우승자 김필이 아니라, 동명이인 트로트 가수 김필이다. 2012년 발매한 앨범의 수록곡인 '돈벼락'은 조빈의 노래처럼 행운이 넝쿨째 굴러 들어올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온다.
돈벼락 쏟아진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더니 
놔 둬야 좋은 날 있구나. 
탄탄대로 펼쳐졌네."
- 김필, '돈벼락' 중에서.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에 이어 11위를 차지한 '돈벼락'은 2019년에 대한 젊은층의 바람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곡이었다. 누군가는 또 '요즘 젊은이들은 노오력도 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바란다'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듣는다고 진짜 '돈벼락'을 맞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힘들고 고되었던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 첫 날부터 희망찬 한 해를 꿈꾸며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노래', '돈벼락'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듣는 것은 그저 유쾌하게 느껴진다.

4년 전인 2015년, 한 커뮤니티에 "새해 첫 곡으로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었더니 진짜 집에서 나가 독립하게 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너도나도 적절한 '새해 첫 곡'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실제로 1일 음원차트에는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 '돈벼락' 이외에도 레드벨벳 '행복', 엑소 '로또', 대성 '대박이야' 등의 노래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새해 첫 곡' 후보들도 있다. 힙합 커뮤니티인 '힙합엘이'에는 지난 1일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동기부여도 할 겸 래퍼 스윙스의 'Keep going'을 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Keep going'의 가사에는 "성공의 기준이 돈이 되기보단 실수와 실패에서 자유로워 지길"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평상시에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있는 곡들의 면면을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다. 물론 누군가는 새해 첫 곡으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연애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들이 새해 첫 번째로 선택한 곡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자는 내용의 곡이었다. 새해가 되면 새해 목표를 세우고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다짐을 하며 계획을 짜는 것처럼,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는 게 아닐까. 

내년 첫 날에는 무슨 노랠 들으면 좋을까
 
 가수 조빈의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이 수록된 앨범 재킷 이미지.

가수 조빈의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이 수록된 앨범 재킷 이미지. ⓒ (주)지니뮤직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한성우의 저서 <노래의 언어>에서 저자는 "쿵쾅대는 리듬과 화려한 선율이 아니라 조용히 따라 불러보고 곱씹어보는 노랫말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말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조빈의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 뿐만이 아니라 <조빈 일집 명상 판타지>에 수록된 곡 모두 어떤 특별한 리듬이나 선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가사를 읊조리고 있을 뿐이지만 일관적인 메시지는 존재한다. 부자가 될 것이고('듣기만 해도 부자 되는 음악'), 살이 빠질 것이며('듣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음악) 갑질하는 직장 상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듣기만 해도 직장 스트레스가 풀리는 음악')이라는. 이쯤 되면 어떤 악기를 썼고 어떤 멜로디가 있는지는 사람들이 새해에 처음 듣고 싶어 하는 것에 크게 영향을 주는 문제는 아닌 듯하다. 

새해 벽두부터 낯선 노래가 음원차트를 장악한 이 기이한 유행에는 우리네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사는 것이 팍팍하고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많은 이들의 삶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잘 될거야'라고 말해주는 노래 한 곡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나는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노래만큼 '힘들면 조금 쉬어가도 된다'고 위로하는 노래도 사람들이 새해 첫 날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이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도록. 그 중에 두 곡을 소개해본다.

"이젠 잠시 내려놔도 돼.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어린 날들아.
안아 주고 싶은 나의 닫힌 기억들
이젠 편히 쉬기로 해 외로웠던 날들아."
- 박보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중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난 꿈을 꾸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는 꿈을 
작은 희망들이 있는 곳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곳 
내가 살아가고 싶은 곳 
누구도 포기 않는 곳."
- 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 중에서.
새해첫날 역주행 조빈 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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