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자영업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답답했다. 재밌자고 보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남는 건 혈압뿐인 듯하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고로케집 사장과 피자집 사장 이야기다.

입으로는 절박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여유가 넘친다. 포방터 시장의 돈가스집 사장처럼 폭삭 망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삶의 무게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걸까? 절실함이 전혀 없는 그들의 태도가 이젠 불편하기까지 하다. 
 
"고로케랑 이제 막 썸타기 시작했는데 권태기가 왔어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 SBS


 
조보아가 고로케집 사장님과 꽈배기 만들기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예능적 재미를 위한 설정이겠거니 했다. '꽈배기 만드는 속도를 높이라'는 백종원의 조언과 충고가 먹히지 않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고로케집 사장이 이기긴 했지만, 아주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오히려 틈틈이 연습한 조보아가 만든 꽈배기의 만듦새가 더 좋았다. 이론적 지식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로케집 사장은 끊임없이 변명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 튀겨서 나가 줘야 하는데 또 공간이 안 되고..."
"저도 그거(발효)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시작은 했고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한 대로 바뀌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무릎에 연골연화증도 있고 해서 오래 서 있기가 좀 힘들고."
"손목은 중학교 때 야구한다고 공 막 던지다가...."


비전문가인 시청자가 보기에도 이러한데, 전문가인 백종원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어떡하지?"라고 반문하는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20대 청년 사장의 되지도 않는 핑계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가슴이 꽉 막히는 듯했다. 

"3년이나 5년이나 했다고 하면 같이 박자라도 맞춰주지, 달랑 석달 해놓고..." 

그럼에도 꽈배기집 사장이 튀김기가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자, 백종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쏘아붙인다. "실력이 된 다음에 얘기를 하라니까!" 노력을 하지 않는데 실력이 쌓일 리가 없다. 실력이 없으니 장사가 잘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변명거리만 찾게 된다. 꽈배기를 처음 만들어 본 조보아를 겨우 이길 정도라는 걸 알면서도 웃을 수 있다니, 이쯤되면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 
 
"그걸 제가 펴 드릴 순 없고... 남기실래요, 그냥?"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 SBS


피자집 사장의 행태는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요리 시간이 한 시간 넘게 걸릴 거라며 시식단을 기겁하게 하더니, 시간이 안 되면 다음 기회에 오라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백종원은 '자신있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하라'는 숙제를 내줬지만, 피자집 사장은 이를 깔끔하게 무시한 것이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습도 하지 않은 티가 팍팍 났다. 주방은 어수선했고, 조리 과정은 어설펐다. 시간이 지체되자 급기야 시식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시식단도 나왔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무려 45분 만에 겨우 완성된 음식은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자아낼 정도로 형편 없었다. 방치돼 있던 국수의 면은 지나치게 불어 있었다.

시식단이 면이 너무 뭉쳐서 먹을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피자집 사장은 "그걸 제가 펴 드릴 순 없고... 남기실래요, 그냥?"이라며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조보아는 입을 막은 채 말을 잇지 못했고, 백종원은 사레가 들릴 정도로 황당해 했다. 장사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어 보였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1월 2일 방송분 중 한 장면.

<백종원의 골목식당> 1월 2일 방송분 중 한 장면. ⓒ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1월 2일 방송분 중 한 장면.

<백종원의 골목식당> 1월 2일 방송분 중 한 장면. ⓒ SBS

 
막장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욕하면서 보는 게 싫어서다. 그런데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선 막장 드라마의 향기가 난다.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어째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의 힘과 백종원의 역량을 이런 곳에 낭비하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냉면집과 햄버거집의 방송 분량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렇게 잘하면, 백종원이 할 일이 없다. 또, 시청률도 오르지 않는다. '갈등'은 필수 요소다.

물론 SBS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방송사일 뿐이고, 백종원 공무원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좀 지나치다. 초반에야 자영업의 노하우와 요식업의 기초를 공유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이젠 대놓고 '백종원의 사람 만들기' 시리즈로 변질된 느낌이다. 방송의 생리를 모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좀 씁쓸하다. 

골목상권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좀더 많은 가게를 소개하고, 기술은 갖췄으되 홍보나 노하우가 부족해 힘들어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순 없는 걸까? 백종원이 고로케집 사장에게 했던 분노의 말, "실력이 된 다음에 얘기를 하라니까!"는 어쩌면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실력이 된 가게를 섭외하라니까! (이러다가 나 죽겠다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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