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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근현대사 자료를 검색 입수하여 110회 연재한 바 있다. 새 연재 [NARA의 북한 측 노획물]에서는 2017년 10월 기자가 제4차로 NARA에 가서 직접 입수한 자료를 소개한다. 미 정보당국이 한국전쟁 당시 수집한 북한 정부기관의 서류가 그 대상이다. 당시 무차별적으로 자료가 수집된 탓으로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음을 미리 밝힌다.

이 연재가 당시 북한 사회 및 한국전쟁사 연구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문화예술인들의 1차 창작 자료로 쓰이길 바란다. - 기자 말

 
인공치하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선 김일성장군 만세 선전아치 ⓒ NARA / 박도
 
[기사 수정 : 4일 오후 7시 49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 두 차례나 인민군에게 수도 서울을 빼앗겼다. 제1차는 1950년 6월 28일부터 그해 9월 28일까지로 약 90일간이었다. 서울시민들은 인공치하에서 살아야 했다. 두 번째는 1951년 1월 4일부터 그해 3월 15일까지로 약 70일간이었다. 

제1차 인공치하 때는 전쟁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탓으로 서울시민 대부분이 피란을 가지 못했다. 이번 5회와 다음 6회에서는 당시 역사학자였던 김성칠(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역사 앞에서>(창비) 속 한국전쟁 중 일기와 기자가 NARA에서 입수한 그 시절 사진으로 당시 생활상을 소개한다. 
 
유엔군 폭격으로 파괴된 서울역 앞 복구작업 ⓒ NARA/ 박도
 
  
<설마 서울이야> - 1950년 6월 27일
 
"새벽 라디오에 신성모 국무총리 서리가 특별방송을 하여 정부가 수원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한다. 밤사이 대포소리가 한결 가까이 들려왔으나 '그래도 설마 서울이야' 하고 진득이 배겨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단박에 맥이 탁 풀린다.

(중략) 앞으로 서울이 어떠한 동란의 와중에 휩싸일는지, 세상이 바뀌는 일이 있다면 나 자신은 어떠한 처지에 서게 될 것인가. 피란! 피란한다면 이 손바닥만 한 38 이남에 어디는 안전한 곳이 있을 것인가. 이 여름철에 어린것들을 데리고 생활의 둥우리를 떠나서 어디에 살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인민군 전사의 수첩에서 나온 사진(사진 뒷면의 기록: 김용준, 리영록, 김기원, 김용생, 김두형, 주중환 여섯 동무가 568 연대직속 경비소대 사격장 밑에서). ⓒ NARA
 
<통곡하고 싶은 심정> - 1950년 6월 28일
 
"(생략)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포성이 뜸해지기에 밖을 내다보니 낙산 위에 늘어섰던 포좌(砲座, 대포를 올려놓는 장치)가 간 곳이 없고 멀리 미아리고개로 자동차보다도 크고 육중해 보이는 것이 이곳을 향하여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것이 대포알을 맞아도 움쩍하지 않는다는 이북의 탱크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돈암동 거리엔 이미 사람들이 나다니는 양이 보이고, 전찻길엔 이상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떼 지어 행진하고 있다.
 
그 지긋지긋하던 포성이 그치어 사람들의 얼굴엔 이제야 겨우 살아났다는 안도감이 역력히 나타나 보이나 밤사이 세상은 아주 뒤집히고야 만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하룻밤 사이에 대한민국 아닌 딴 나라 백성이 되고 만 것이다.
 
낮때쯤 하여 아이들을 앞세우고 돈암동을 떠나 집으로 향하였다. 거리에는 이미 붉은 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있고, 학교 깃대엔 말로만 들던 인공국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되넘이고개(현 서울 미아리고개)를 넘어서 동소문을 향하여 탱크며 자동차며 마차며 또 보병들이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비록 억센 서북사투리를 쓰긴 하나 우리와 언어‧풍속‧혈통을 같이하는 동족이고 보매 어쩐지 적병이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디 멀리 집 나갔던 형제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오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들이 상냥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적개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유독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적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 본 국군과 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다르다면 그들의 복장이 약간 이색질 뿐, 왜 그 하나만이 우리 편이고, 그 하나는 적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냐.

언제부터 그들의 사이에 그렇듯 풀지 못할 원수가 맺히어 총검을 들고 죽음의 마당에서 서로 대하여야 하는 것이냐. 서로 얼싸안고 형이야 아우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그들이 오늘날 누굴 위하여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이냐.
 
나는 길바닥에 털퍽 주저앉아서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래야 울 수 없는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어 있는 게 아니냐." 
 
한강 부교 설치 장면 ⓒ NARA/ 박도
  
유엔군 폭격 후 화재장면 ⓒ NARA/ 박도
 
유엔군 폭격으로 파괴된 시가지 ⓒ NARA
  
전화로 파괴된 현장 ⓒ NARA
  
인민군 탱크 부대. ⓒ NARA
태그:#북한 노획물,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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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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