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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 등 합동조사단이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아현국사에서 이틀전 발생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 등 합동조사단이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아현국사에서 이틀전 발생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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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소통하는 '초 연결 사회'를 살아간다. 각자가 가진 스마트폰으로 못하는 게 거의 없는 세상이 됐다. 아침부터 확인하는 e메일부터 하루종일 다른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SNS, 자기 전 멀리 떨어진 가족과의 영상통화까지… '초연결 사회'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시간 절약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얼마 전 우리는 초연결 사회가 한 순간의 문제로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위에 서 있는지 실감했다. 지난달에 있었던 KT 통신대란이 그것이다. A~D까지 등급별로 나눠 안전관리가 이뤄졌지만 사실상 통신의 영향력이 더 컸던 아현지사가 D등급으로 분류돼 기업의 자체적 관리도, 정부의 관리감독도 벗어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가 화재가 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불편을 겪었다. 전화나 인터넷이 끊겨 많은 자영업자들은 주문전화나 카드결제가 되지 않아 영업 손실을 겪었다. 또 택배기사나 택시기사, 음식배달업 종사자들 또한 유무선 통신을 생계 기반으로 삼고 있어 업무에 큰 차질을 받았다.

나를 슬프게 만든 뉴스
  
많은 불편함 중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안전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는 피라미드의 가장 하위구조에 위치해있다는 것이다.

한 70대 노인은 통신대란 속 119를 제때 부르지 못해 심 정지 상태로 사망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겐 죽음만큼 두려운 공포를 안겼다. 시각장애인 A씨의 경우에는 집 안에 IoT(사물인터넷) 기기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음성인식이 되지 않아 난방 장치를 켜놓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와상 장애인 B씨는 호흡이 가빠져 급히 전화기를 찾았지만 전화가 되지 않아 활동지원사도, 소방대원도 부를 수 없었다. 겨우 기어서 문 앞으로 나와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이처럼 초연결 사회에서 우린 멀리 떨어진 외국인과도 연결을 맺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을 위기 상황에서 구조하진 못했다. 사회적 안전망은 위기상황일수록 가장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로 빛을 발해야 하지만 이들과의 연결고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지금의 사례를 KT에만 떠 넘겨선 안 된다. 물론 KT가 최근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앞세워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관리인원을 감축하고, 안전관리등급을 제대로 매기지 않은 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이미 개개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통신 분야를 민영화해 KT, SK, LG 세 군대의 대기업에 맡겨놓은 채 제대로 된 안전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점, 국가가 보호해야 할 독거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점, 재난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대처 매뉴얼이나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

검은 백조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도록
  
'Black Swan'이란 말이 있다. '검은 백조'란 뜻으로 미국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뉴욕대학교 폴리테크닉연구소 교수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두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세계금융위기가 닥친 걸 보며 했던 말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흰 날개를 가진 백조의 모습만 보고 검은 날개의 백조는 없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재난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상상을 넘어서는 충격으로 찾아온다.

KT 통신대란 역시 지금의 안전관리시스템 상 언젠가 SK나 LG라 할지라도 생길 수 있는 문제였다. 또한 초연결 사회에서 우리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통신을 담당하는 카카오톡, 페이스 북, 네이버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갑작스런 문제로 언제 우리 일상생활을 오작동 시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정부는 이번 KT 통신대란을 통해 공공자산이라 할 수 있는 통신 영역을 대기업에 맡긴 것을 반성해야 한다. 공적 책임은 기업에만 떠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국민의 일상생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통신 영역을 지금이라도 대기업 독과점이 되지 않도록 규제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또한 독거노인, 장애인, 생계형 플랫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안전문제에서 가장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로 제대로 된 안전망과 재난 대처 매뉴얼을 갖춰야한다. 그것이 갑자기 눈에 띈 검은 백조도 당황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길이며, 초연결 사회 속 연결되지 못한 이들을 연결하는 망이다.

태그:#통신대란, #초 연결 사회, #BLACK SWAN, #KT화재, #안전관리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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