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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100여 일 이상 분당 탄천에 나가 오리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전해준 감동적인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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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던 새끼 오리가... 동화같은 일이 벌어졌다

올 한 해 지켜본 탄천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징검다리 위는 물론 산책로에서도 보이는 물속의 잉어들. 물과 뭍을 오가며 노니는 각종 오리들. 때마침 머리 위를 날아가는 왜가리나 백로들.

이렇듯 생태계에서 다양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물들이 찾는 탄천은 넉넉한 부모 품처럼 모든 생물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다. 물론 사람들에게도 산책이나 운동 등 탄천을 찾는 목적에 만족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인간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이나 디지털 시대의 볼거리와는 다른 감흥을 주기도.

넉넉한 탄천이기에 조류 도감에 이름을 올린 품종 있는 새들만 받아들이진 않았다. 어떤 새들이라도 날거나 날지 못하거나 이름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새가 터 잡고 살 수 있도록 받아들였다.

탄천을 산책하며 다양한 커플을 만났는데 특히 두 오리 커플이 눈에 띄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오리들과 확연히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은유도 달랐고.

두 커플 모두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먼저 흰둥이와 청둥이를 소개하겠다. 이들은 탄천 어딘가에 사는 수컷 청둥오리와 암컷으로 보이는 집오리 커플이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청둥오리 '나그네'와 그의 여자친구인 '하얀 오리'가 연상되는 커플이다.
   
탄천에서 수컷 청둥오리가 암컷으로 보이는 집오리 뒤를 따르고 있다. 둘은 마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나그네와 하얀 오리가 연상된다.
▲ 흰둥이와 청둥이 탄천에서 수컷 청둥오리가 암컷으로 보이는 집오리 뒤를 따르고 있다. 둘은 마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나그네와 하얀 오리가 연상된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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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게 보이지만 잠시후 청둥오리는 다른 오리들을 위협해 쫓아버렸다.
▲ 흰둥이와 청둥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잠시후 청둥오리는 다른 오리들을 위협해 쫓아버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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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녀석들을 2017년 가을부터 지켜보고 있다. 동화 속 나그네와 하얀 오리 사이에 태어난 '초록'처럼 새끼 오리가 태어날지 기대를 한 것. 그렇지만 아직 소식은 없다. 두 녀석은 항상 붙어있기에 언젠간 동화처럼 될 날이 있을 거로 상상해 본다.

이들을 보면서 그 어떤 인연이 둘을 만나게 했으며 저렇게 딱 붙어 지내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곤 했다. 야생 철새들이 주로 찾는 하천에 누군가의 집에서 길렀을 저 하얀 오리가 어떻게 탄천까지 날아왔을까도. 아, 저 하얀 오리는 날지 못하니까 흘러왔겠구나.

저 청둥오리 수컷은 탄천에 많은 청둥오리 암컷을 제치고 왜 저 하얀 오리만 따라다닐까? 왜 다른 수컷 오리들이 접근하면 큰 소리와 날갯짓으로 쫓아버릴까? 하얀 깃털이 그렇게 좋았더냐? 이런저런 망상을 품어보지만, 저들에게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인간의 눈으로 유추하여 은유할 뿐.

오리도 '믹스'가 있다

두 번째 커플의 이름은 헨젤과 그레텔이다. 짙은 갈색으로 어둡게 보이는 녀석이 헨젤이다. 흰 무늬가 보이는 녀석이 그레텔. 이 녀석들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놀랐었다. 다르게 생긴 문양도 문양이지만 그 크기가 다른 오리의 거의 두 배였기 때문에.
 
 야생 오리와 야생 오리 사이에 태어난 오리로 보인다.
▲ 헨젤과 그레텔  야생 오리와 야생 오리 사이에 태어난 오리로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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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조류 도감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믹스 오리가 분명했으니.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특성이 함께 보였다. 야생오리 사이에 태어난 오리였던 것.

둘은 커플인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항상 붙어 다니기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야생에서 야생오리 사이에 태어난 서로 다른 오리들이 만나서 커플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없진 않겠지만 상당히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남매로구나! 그래서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들은 몸집이 큰 만큼 식탐이 많다. 지난 5월에 만난 청둥오리 가족인 도로시와 아이들이 주변에 오면 힘으로 밀어냈다. 그 조그만 녀석들을 경쟁자로 본 것. 그리고 이 녀석들은 산책객들에게 다가가 먹이를 구걸하기도 했다.

교량 밑 그늘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으면 다가간다.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자신들에게도 던져 주는 걸 알기에. 야생오리들은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는데 이 녀석들은 그런 자존심을 버렸다. 그만큼 야생에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아서일까?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다가 가는 녀석들. 간혹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도 먹이를 던져 주는 걸 안다.
▲ 헨젤과 그레텔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다가 가는 녀석들. 간혹 사람들이 자기들에게도 먹이를 던져 주는 걸 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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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오리답게 공중을 나는 녀석들. 큰 덩치 때문인지 다른 오리에 비해 낮은 비행을 하고 그 소리도 묵직하다.
▲ 헨젤과 그레텔 야생 오리답게 공중을 나는 녀석들. 큰 덩치 때문인지 다른 오리에 비해 낮은 비행을 하고 그 소리도 묵직하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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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녀석들이 야생오리임을 보여줄 때가 있다. 하늘을 날 때다. 덩치 때문인지 높게 날지는 않지만, 공중을 나는 것. 조그만 오리들과는 달리 위용을 뽐내듯 무거운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두 커플은 지금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려고 준비 중이다. 내가 인간의 관점에서 나의 시선으로 엉뚱한 추론을 하기도 했지만 둘의 삶은 동화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겨울 나는 게 걱정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내일을 맞이하고픈 게 그들의 삶이 아닐까?

관심을 가지고 탄천을 다니고 애정으로 들여다보니 보이는 것이 이렇듯 많아졌다. 특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마주친 놀라운 순간도 경험했다. 지난 6월 6일, 그날은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흰뺨검둥오리 가족들을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하지만 놀라운 순간과도 마주친 날이었다.

공휴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도로시와 아이들을 만나러 탄천에 나갔다. 그런데 내 눈에 먼저 뜨인 건 갓 태어난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었다. 그것도 두 가족을 한꺼번에.

탄천에 나타난 고라니

나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때 오리 가족들 뒤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건너편 기슭의 물억새 덤불이 흔들리더니 커다란 짐승이 지나간 것.
 
원래는 앞쪽의 오리 가족의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 탄천에 나타난 고라니 원래는 앞쪽의 오리 가족의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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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였다.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엄니가 확실히 보이는 수컷 고라니였다. 탄천에 고라니가 살고 있던 것. 고라니는 Water Deer라는 영어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물가를 좋아하고 헤엄도 잘 친다고 한다. 근처에 산이 있고 탄천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고라니가 찾아온 게 아닐까?
 
이 사진을 찍기 며칠 전에 저 뒷다리 부분을 언뜻 목격했었다. 당시에는 고라니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 탄천에 나타난 고라니 이 사진을 찍기 며칠 전에 저 뒷다리 부분을 언뜻 목격했었다. 당시에는 고라니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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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며칠 전에 뭔가를 보았었는데 그게 바로 고라니였던 것. 당시는 도로시네를 찾으려 쌍안경으로 탄천 기슭의 숲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언 듯 본 게 기다란 뒷다리였다. 네다리 동물의 길쭉한 뒷다리. 첫 느낌에 "사슴인가?" 했지만 "설마, 사슴이 살겠어?" 하면서 커다란 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식자일 수도 있는 짐승 출현에 불안해했었는데 고라니였다.

그 후로는 볼 수 없었다. 지난여름 어느 해거름에 단말마와도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고라니의 울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탄천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슭의 물억새를 모두 베어버렸다. 그래서 그 안에 살았을 법한 너구리들은 산으로 올라갔을 것이고 한때 머물렀을 고라니는 어디론 가로 떠났을 것이다.

또다시 겨울이 왔고 또 한 해가 넘어간다. 계절을 기다렸다는 듯이 탄천에는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더러는 지친 날개를 쉬었다 다시 남쪽으로 혹은 북쪽으로 날아갈 테고, 더러는 탄천에 터 잡고 겨울을 날 것이다.
 
원앙은 천연기념물 327호다. 탄천에 온 무리는 북쪽에서 겨울을 나려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 탄천을 찾은 원앙 무리 원앙은 천연기념물 327호다. 탄천에 온 무리는 북쪽에서 겨울을 나려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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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신기하게 바라보던 원앙들도 많이 날아왔다. 당시에 천연기념물이 탄천에 산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아마 매년 이맘 즈음이면 북녘에서 날아와 겨울을 났을 것이다.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가거나 새로운 삶을 찾아 흩어졌을 것이고. 내가 몰랐을 때부터 쭉.

내가 찾았고, 보았고, 느껴서 큰 의미로 다가온 탄천. 관심 깊게 바라본 그곳에는 인간 세계 못지않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인간들은 해가 넘어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거에 큰 의미를 두지만, 탄천의 생명에게는 그저 하루하루 넘겨야 할 오늘이 있을 뿐일 것이다.

2019년에도 탄천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 넉넉한 환경을 줄 것이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탄천에서의 1년, #탄천의 고라니, #탄천의 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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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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