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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박용진
 시인 박용진
ⓒ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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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박용진 시인은 2018년 10월 20일, 첫 시집 <미궁>(파란)을 출간했다.

"'한창 바쁠 때인데 시집이 나왔구나' '좋다' 정도였습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정말 수도 없이 이 시집에 실릴 시들을 읽고, 또 읽고, 다시 또 읽었고 고쳤습니다. 시를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것인데, 시집을 준비하면서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나온 시집인데, 막상 나오고 보니 기쁘기도 했지만 어깨에 짐을 하나 더 얹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에서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사랑이다. 
 
'목을 반만 따고 거꾸로 매달아/ 움켜쥐었던 핏줄을 해방시키고/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 시 '꼬리뼈처럼' 중
'"울음도 의심도 없이 그대의/ 불행한 사랑이 또 만개할 것이다."' - 시 '네가 고마웠다 그래서 너를 망가뜨렸다' 중

"신화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사랑이라는 것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사랑 이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 화성지구화, 미니어처 색칠하기에 관심을 두면서 "아주 가끔 사람들도 만나고, 정말 가끔 시를 쓴다"는 시인과 지난 12월 16일 이메일로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는 보여주기 위한 일기 같은 것

그의 첫 시집 제목은 <미궁>이다. 시집을 닫는 시에서 그는 노래했다.
 
'어쩌면 사랑이 소멸해 가는 이 구멍 속에서/ 저는 조금씩 탄생하고 있는 것인지도' - 시 'Kronos' 중

"미궁이라는 이름을 가지기까지 미궁을 헤매는 것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정하지 못했던 것이 시집 제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 대한 이야기', '고트', '인터체인지' 등등 몇 가지 제목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출판사 대표님이 '미궁'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뭔가에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시집이 자체가 미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집 제목이 정해졌습니다. 사실 이 시집을 받아든 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들은 말이 황병기의 '미궁'이 모티프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그냥 미궁미궁하다가 미궁스럽게 나온 시집이라 미궁이라고 지었다고 하곤 합니다."

미궁은 그의 시 쓰기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저는 시를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말 거의 안 읽습니다. 오히려 읽는 건 소설이 훨씬 재미있죠. 다만 쓰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일기를 쓰듯 매일 썼고 그러다 보니 시는 보여주기 위한 일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기는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죠. 공공연히 말할 수 없는 사랑, 수치, 증오, 권태 등등이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담겨 있는 것이니까요. 그것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유를 사용하고 상징을 사용해서, 한 겹, 두 겹, 세 겹 덮어서, 그렇게 비밀들을 숨겨가면서 말이죠. 그렇게 일기를 썼습니다."
 
 시집의 해설을 쓴 전영규 평론가는 이 시집을 ‘크로노스 우화집’이라고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심연을 품은 심해어처럼 세상이 자라나는 당신의 어두운 입안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옛날에 사랑했던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이 시대의 마지막 오이디푸스이자 바울로의 목소리가. 그 어떤 이름도, 세례도 받지 않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나도 모르게 삼켜 버린 시(詩)라는 낯설고 무한한 그것들이.’(전영규 문학평론가의 『미궁』 시집 해설 ‘크로노스 우화집’ 중)
 시집의 해설을 쓴 전영규 평론가는 이 시집을 ‘크로노스 우화집’이라고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심연을 품은 심해어처럼 세상이 자라나는 당신의 어두운 입안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옛날에 사랑했던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이 시대의 마지막 오이디푸스이자 바울로의 목소리가. 그 어떤 이름도, 세례도 받지 않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나도 모르게 삼켜 버린 시(詩)라는 낯설고 무한한 그것들이.’(전영규 문학평론가의 『미궁』 시집 해설 ‘크로노스 우화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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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은 음울한 건축!

그는 첫 시집을 '음울한 건축'으로 함축해 표현했다.
 
'가난한 엄마는/ 날이 없는 것이면/ 뭐로든 때렸다 // 나는 울었다 // 그러면 엄마는/  화장실에 가뒀다 (중략) 혀를 빼물고 얌전히/ 앉아있는 개' - 시 '라이카' 중

라이카는 소련이 우주로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시킨 개다. 생명체가 우주에 갔을 때, 생존할 수 있는지 그들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라이카는 우주에서 숨을 거두었다. 시인은 엄마에 의해 화장실에, 라이카는 인류에 의해 우주선에 갇힌 것이다. 시인은 '엄마, / 사랑해요'(시 '라이카' 중) 자조한다. 미지를 향한 인류의 열망이 집약된 우주선은 감금된 시인에게 화장실이며 무덤이다.
 
'당신은 나에게 사랑을 원했고 나는 어금니 속에 노래를 가두었다 (중략) 우리는 자궁 속에서 살해당한 꿈' - 시 '물고기 무덤' 중

음울한 건축은 사람이 사는 집 따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엄마, 웅덩이 등 여러 은유로 표현된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갔으니까. 그곳이 이화장이었든 화산장이었든 결국에는 화진여관이었을 그곳에 우리는 들어갔으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 단단했고,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때였으니까.' - '화진여관' 중
'어머니 속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실/ 끝에 네가 묶인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 시  '웅덩이'  중

게임북처럼 읽는 재미

"<미궁>에 담긴 시들은 미궁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시 하나하나가 특정한 다른 시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가까이 배치하지 않고 흩어놓았습니다. 원래 의도한 순서대로 찾아 읽으려면 80, 90년대에 유행했던 게임북처럼 1페이지에서 갑자기 80페이지로 갔다가 다시 39페이지로 갔다가 하는 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들 중에서 지도 역할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시를 찾아 읽어낸다면 더 수월하게 접근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읽어도 됩니다. 굳이 의미를 찾으려고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그냥 와 닿는 대로 읽고 분위기만 느껴도 됩니다. 읽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어디 선물하셔도 됩니다."

시인이 생각하는 시집 속 가장 황홀한 시를 묻자, 그가 답했다.

"'첫, 사랑'이라는 시가 바로 떠오릅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바람난 어머니 같은' 시구 때문입니다."
 
'그날 밤 잠든 남자 앞에서 지네를 잡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여자들을 하나둘 마을 어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꽃향기를 따라 그림자를 찾아갔고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남자들을 발견했다 이빨 사이마다 무성한 음모가 자라고 있었다 여자들은 달려가 남자들을 걷어차고 그림자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발기발기 찣어발겨 먹어 치웠다 그림자 속에서 작은 뱀 새끼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조그맣게 쪼그라든 남자들은 울고 있었다 여자들은 집에 돌아가 남자 위에 올라탔고 남자들은 처음으로 향기를 가지게 된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사랑을 알았다 이듬해 마을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바람난 어머니 같은 여자아이들이 태어났다'
- 시 '첫, 사랑' 중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를 물었더니, "그나마 쉽고 짧으며, 서정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법한 시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시 '께나'를 말했다.
 
바람이 당신의 살점을 뜯어 가고 나면
푸른 지네들 사그락거리는 뼈만 남으면
잘 마른 정강이뼈에 구멍을 뚫어
바람 부는 날 불겠다 그때
당신의 망각처럼 꽃이 피면

온 바람 속에 당신이

다른 높이로 떠 있다

시 '께나' 전문

시집 출간 후, "이제 이 시집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의 고민은 독자가 시 속에서 더 헤매도록 시를 계속 쓰는 일이다. 그것이 새해, 시인의 소원인 "나쁜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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