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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탄 소재 생산업체인 KPX케미칼(울산 남구 매암동) 노조 대의원 이아무개씨(50)가 지난 21일 오전 10시쯤 울산 태화강 하류 명촌교 다리 밑에서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됐다. 

노조 등에 따르면 고인에게 이상징후가 포착된 건 지난 10일이었다. 이날은 11월 27일에 편성된 작업교대표가 공고된 날이었다.

동료들은 고인이 이 편성표를 확인한 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평소 불편한 사이였던 직장 상사와 한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후 지난 19일 오후 6시께 자택에서 외출한 고인은 이틀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울산하늘공원에 안치된 KPX케미칼 노조 대의원 이아무개씨(50) 의 유골. 고인은 아내와 중학생 두딸을 유족으로 뒀다.
 울산하늘공원에 안치된 KPX케미칼 노조 대의원 이아무개씨(50) 의 유골. 고인은 아내와 중학생 두딸을 유족으로 뒀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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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21~23일 울산 영락원에서 3일장으로 치러졌다. 부인과 두 딸의 통곡 소리를 뒤로한 채 고인의 유골함은 울산하늘공원에 안치됐다. 

동료들은 고인의 죽음이 "노동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2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28년 만의 첫 파업

KPX케미칼 울산공장 노조는 3년 전 이맘 때인 2015년 12월 10일부터 3개월간 파업을 벌였다. 노조 설립 후 28년간 노사분규가 한 차례도 없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오랜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회사 측은 정부 지침에 임금삭감과 임금피크제 등을 시행하려 했고, 노조는 "사측이 300억 원의 흑자를 전망하면서도 경기침체와 정부의 지침에 편승해 조합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노조가 파업으로 맞서자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울산지법에 쟁의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합법 파업"이라며 기각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KPX 노사는 임금협상에서 2015년 임금 동결, 호봉승급분 3년간 동결, 2016년부터 임금피크제 도입, 신입사원 초임 삭감 등에 합의했다. 기존 정년이 56세였지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57세 때부터 56세 때 임금을 기준으로 매년 10%씩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해 회사에선 노조파괴 공방이 일어났다. 2017년 7월 노조는 "회사가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면서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국회에도 진정을 넣었다. 제1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관심을 가지고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기도 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KPX케미칼 사례는 법무법인과 함께 현행법의 허점을 이용해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한 것으로, 가장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라며 "관련 공무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당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 차원에서 철저히 밝힐 것"이라고 했다.
 
2017년 7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과 당 전국노동위원회, 화학노련 KPX케미칼 노동조합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측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7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과 당 전국노동위원회, 화학노련 KPX케미칼 노동조합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측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 KPX케미칼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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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당 송옥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화학노련 KPX케미칼 노동조합은 그해 7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 측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송 의원 등은 "KPX케미칼 사측은 2015년 8월 노조파괴를 위한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치밀한 노동조합 말살 행위에 돌입했고 신입사원 초임 삭감, 호봉제 폐지 및 임금 동결,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합의하지 않으면 제2공장을 도급전환 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등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크게 후퇴시키는 개악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파업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KPX케미칼 회사 측 행보가 유성기업과 유사하다는 점도 부각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후 검찰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압수수색에 나서기도 했지만, 1년이 훌쩍 넘도록 밝혀진 건 없다. 그사이 조합원은 100여 명에서 43명으로 줄었다. 이를 두고 노조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며 "대의원 이씨의 죽음도 그 연장선"이라고 주장한다. 

KPX노조는 "고인은 지난 2015년 공정분배와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파업 이후 사측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비롯해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 등에 분노해 왔다"면서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같은 사실은 고용노동부 특별 감독과 지난해 국회를 비롯한 국정감사에서 수차례 지적해 왔으나, 아직도 속 시원히 밝혀진 것도 없다"라면서 "얼마나 더 많은 조합원들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분노를 삼켜야 하나, 고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 사측의 계속적인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간부와 조합원에 대한 노동탄압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KPX케미칼 회사 측은 이같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파악 후 연락을 드리겠다"고 한 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태그:#KPX케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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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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