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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목동병원에서 바라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모습
 이대 목동병원에서 바라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모습
ⓒ 신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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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오전이다. 이대 목동병원에 입원해 계신 엄마 병문안을 마치고 나와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병원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퍼져 나가는 새하얀 연기는 발전소의 평온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이런 평온함과는 달리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평온하지만  않는 곳이 목동 열병합발전소였다. 75m 높이의 이곳 굴뚝 꼭대기에는 엄동설한에 고공농성 신기록을 경신하며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이 있다.

그날따라 서울의 최저 기온 영화 14도의 강추위가 몰려 왔다. 두꺼운 방한복과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동여매 추위와의 전쟁을 위한 완전무장을 했음에도, 몸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칼바람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강력한 세밑 한파가 찾아온 날이기도 했다.

지상의 날씨가 이렇게 살인적인데 상공 75m 굴뚝의 상황은 과연 어떠할까,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혹한의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과는 달리 '유유자적' 뿜어 저 나오는 굴뚝 연기의 모습이 그저 얄밉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 아직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지만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와 대표와 세 차례 만남을 가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이 고공농성 현장을 방문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어제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현장을 방문 이들을 위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 고공 농성 최장시간이라는 처절한 몸부림 끝에 얻어낸 결과다. 그 이전까지 75m 굴뚝에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파인텍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그들만의 외로운 투쟁을 벌여 왔던 것이다.
 
408일째 고공농성중인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위 농성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408일째 굴뚝농성 408일째 고공농성중인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2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위 농성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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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랬다. 엄마가 이대 목동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올 4월, 면회를 위해 9호선 신목동역 2번 출구를 나와 약 1km를 걸어가는 도중 목동 열병합발전소 인도 한편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이들을 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 왜 이러고 있을까? 란 생각만 한 채 내 발길만 재촉했다.

이렇듯 사람들은 설사 그곳을 지나다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봤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넋두리만 할 뿐, 그 누구 하나 이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에 관심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75m 굴뚝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그저 남의 일로 치부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 고공 농성 최장 신기록을 세우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75m 굴뚝 농성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굴뚝  고공농성 최장 신기록에 그제서야 굴뚝에 사람이 있다고 보도를 했다. 운동선수가 세운 자랑스러운 세계 신기록도 아닌 75m 굴뚝 고공농성 세계 최장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에 뉴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여기에서 그쳤다. 그들은 점차 열병합발전소 주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런 와중에 노동자들은 75m 굴뚝에서 두 번째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오늘도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며 높이 75m 굴뚝에서 고공농성 신기록을 경신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에게 이런 극한의 생존권 농성도 끝날 기약이라도 있으면 견딜만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약도 아직까지 없다.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와 대표와 3차례 만남 끝에 견해차만 확인한 기약 없는 농성은 이들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더 힘든 것이 있다. 바로 굴뚝 고공농성을 바라보는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다.

이들 파인텍 노동자들의 요구가 과도한 것도 아니다. 원래 다니던 직장 다니게만 해달라는 소소한 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이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잠재적 우리 아버지요, 우리 남편이며 우리 아들이 될지도 모를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소금을 뿌리는 시선을 보내는지 야속하기만 한 것이다.

때마침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올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국정 목표는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임을 강조했다. 좋은 취지의 국정운영 목표로 환영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결국은 75m 굴뚝 노동자들의 아픔을 같이 나눌 줄 아는 사회만이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되는 것이다.

태그:#굴뚝 고공농성, #목동 열병합발전소, #파인텍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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