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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실 앞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2017년 11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실 앞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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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6일 오전 11시 13분]

한 남자가 있다. 스스로 "누군가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데, 나는 어이하여 망자의 뒤만 쫓게 되었나..."고 말하는,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다.

그는 단순히 망자의 뒤만 쫓는 사람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처참하게 스러진 영혼을 위로하고, 사람을 도울 길을 좇는 사람이다. 안 사무국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조사팀장이었다.

현재 그는 유신 시절 '사법살인' 당했던 인혁당 재건위사건 피해자들이 세운 4.9통일평화재단에서 일하며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피해자를 지원하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을 찾는다. 지난 2~6월에는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서 동료들과 함께 너덧 살 먹은 아이의 발가락뼈, 사용하지 않은 M1 총알, 엄마의 왼쪽 신발과 아이의 오른쪽 신발을 수습하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국회에 나타난 그 사람

그리고 잊을만하면, 안 사무국장은 국회에 나타난다. 12월 19일과 20일에도 어지럽게 의원회관과 본관을 오갔다. 24일 전화를 걸었을 때도 국회라 했다. 26일에도 그는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446호 행정안전위원회 소회의실 앞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벌써 8년째다.

이날 국회 행안위는 오전 8시 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오후 9시 반 전체회의를 연다. 여기에 그가 8년째 행안위 소회의실 앞을 서성인 이유가 있다. '과거사법'이다. 행안위는 이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 5개와 장준하 사건 등 진실규명과 정의실현을 위한 과거사청산 특별법,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을 심사한다.

줄곧 국가 폭력 피해자들 곁을 지켜온 안 사무국장은 2010년 12월 31일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종료한 뒤 다시 출범할 방법을 찾아왔다. 그는 "사람들은 과거사 문제가 많이 정리됐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심각하다"고 말하곤 했다.

24일 통화에서도 유신 시절 간첩으로 몰렸던 납북어부 피해자만 3천 명이 넘는다고 추산되는데, 진실화해위에서 채 20건을 못 다뤘다고 했다. 역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썼던 재일교포 피해자들도 약 160명인데 진실화해위에서 50여 건밖에 조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질문마다 자판기 버튼 누르듯 답변이 줄줄 이어졌다. 안 사무국장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양승태 대법원 때 소멸시효 문제 등으로 780명 정도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고, '막걸리 반공법' 사건 피해 규모는 어림잡아 2만 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 이야기들이다. 피해자들의 온몸과 마음이 기억하지만, 그것만으로 '야만의 시절'을 보상받을 수 없다. 아비를 잃은 지 너무 오래된 노인은 여전히 목 놓아 아비를 부르지만, 그것만으로 뼛조각 하나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안 사무국장은 진실화해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절박하다고 얘기한다.

26일 법안심사가 처음은 아니다. 국회는 2017년 8월 29일 과거사법 7개 모두를 일괄상정한 뒤 지난 9월 11일까지 모두 7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지금껏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9월 회의에서도 '소소위를 구성하여 논의하자'고 했지만 별다른 후속활동이 없어 올해 안에 행안위를 통과하는 것조차 요원해 보였다.

어쩌면, 반전이 이뤄진다면...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12월 26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식을 알리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두 개의 출입증을 갖고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을 수 없이 오갔다.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이 12월 26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식을 알리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그는 두 개의 출입증을 갖고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을 수 없이 오갔다.
ⓒ 안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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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 사무국장은 잊을만하면, 아니 지겹도록 국회를 다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반전이 생겼다. 법안이 여러 개라 쟁점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자 인재근 행안위원장은 '일단 진실화해위 재개부터 하자'는 취지로 12월 12일 대안을 내놨다. 세부 내용은 더 있지만 사실상 원포인트 발의인 셈이다.

안 사무국장은 "변수가 좀 있긴 하다"면서도 "연내에는 (행안위 처리도) 안 될 줄 알았는데... 행안위 통과만이라도 되면 큰 성과"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바람대로 26일 법안소위가 과거사법을 처리하면, 곧바로 행안위 전체회의가 이 안건을 논의한다. 여기서 별 다른 의견 없이 과거사법이 통과된다면 그가 9년째 국회 본관 446호 앞을 지키는 일은 없지 않을까. 다음에는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이 있는 본관 4층을 서성일 것 같지만.

산타클로스를 믿기엔 너무 많은 세월을 헤쳐 온 그다. 그럼에도 어쩌면 안 사무국장은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절실하게 기적을 바라고 있을 듯하다. 산타는 성탄절 다음날이어도, 국회에 찾아와줄까.

26일 오전 10시 33분, 안 사무국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법안소위에서 처리는 무산되었습니다. 다만 1월 소위에서 계속 심사하기로 하였고, 이어지는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한번 더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산타는 결국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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