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 판씨네마(주)


영화 <러빙 빈센트>는 고흐를 향한 오마주다. 확장판을 보니,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의 고흐 사랑이 시발점이다. 고흐 작품을 수작업으로 모사한 스크린에 CG를 합성한 화면이 놀랍고 낯설다. 고흐를 좋아하지만, 고흐의 서명 격인 소용돌이나 줄무늬 같은 필선이 화면을 장악한 게 선뜻 반갑지 않다. 정체된 화폭에서도 어질증을 안기는 수많은 필선들이 애니메이션의 동화(動畫)에 의해 더욱 꿈틀대니 화면 전체가 울렁거린다. 그러나 불편한 중에도 세계 최초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에 압도됨을 어쩌지 못 한다.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다. 고흐 인물화의 모델들이 등장인물이다. 주인공 아르망 룰랭(더글라스 부스 분)은 고흐의 편지를 나른 집배원 조셉 룰랭 (크리스 오다우드 분)의 아들이다. 고흐 죽음 1년 후 테오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시작되는 아르망의 고흐 알아가기 연출은, 유화 스크린 못지않은 또 하나의 고흐 오마주다. 미치광이로 각인된 고흐의 이미지를 다른 관점들과 버무려 희석시킨다. 실화에 기초한 허구인데, 사인 규명에 나선 아르망의 동선을 고흐의 인간적 고뇌와 냉철함이 불거지는 맥락으로 활용한다.  
 <러빙 빈센트>는 오프닝부터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러빙 빈센트>는 오프닝부터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 판씨네마(주)

 
그 과정에서 불우한 고흐의 예술가적 재능을 알아본 드문 인물들이 드러난다. 화방 주인 탕기 영감(존 세션스 분)과 폴 가셰 박사(제롬 플린 분)의 딸 마르게리트 가셰(시얼샤 로넌 분)가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말 많은 고흐의 자살에 대해 열린 관점을 보여준다. 동네 한량 르네를 위시해 미술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화가로서 고흐를 이기적으로 이용한 주치의 폴 가셰 박사를 끌어들인 개연성 있는 해석이다. 그쯤에서 널리 알려진 빈센트와 테오 형제의 "두 개의 심장, 하나의 마음" 같은 관계가 극적으로 어필된다.

성년의 고흐(피터 굴라치크 분)는 1989년 요양병원에서 그린 '자화상'을 닮아 있다. 나는 평소 그 자화상의 고흐를 좋아한다. 단정한 정장 차림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귀를 잘라 아는 매춘부에게 건넨 선정적 사건과 거리 먼 고요함이 묻어나서다. 숱한 외면과 조롱, 그리고 비극으로 얼룩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바닥 중의 바닥 인생"을 견딘 자의 수척함이 고흐가 감내했을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한 나의 감상은 아르망을 입체적 인물로 묘사한 연출이 반가울 뿐이다.

마르게리트는 아르망에게 반문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도 궁금해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아느냐"고. 뜨끔해 하는 아르망이 관객인 나에게 오버랩 된다. 핍박당한 고흐를 동정하게 된 아르망이 약자를 괴롭히는 동네 청년들과 싸우는 맘이 그래서 이해된다. 섣부른 몸짓이지만, 아르망은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식 공감에 접속한 셈이다. 가셰 박사의 가정부 루이즈와 마찬가지로 고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아르망을 변화시킨 건 어쨌거나 그 자신의 발품 덕이다.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영화 <러빙 빈센트> 스틸컷 ⓒ 판씨네마(주)

 
<러빙 빈센트>는 아르망의 발품을 통해 여러 실화들을 들려준다. 아를 사람들의 고흐 추방 청원, 가셰 박사 및 마르게리트와의 관계, 사망 몇 주 전의 말다툼, 르네 같은 동네 한량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 등등이다. 고흐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1890년의 10년뿐인데, 고흐 죽음을 추리하는 영화는 그 마저도 압축해 주변의 몰이해와 거부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살아서는 단 한 점의 그림을 판 무명 화가 고흐의 사후 명성이 세상의 평판 또한 변화무쌍한 생물임을 일깨운다.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Vincent'는 돈 매클레인이 고흐의 전기를 읽고 작곡한 헌정곡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가 대표 작품으로 암시되어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고흐가 내면의 눈으로 표현한 세상을 뒤늦게 이해해서 미안하다는 거다. 고흐의 필선을 정신병적 증후가 아닌 내면 가득한 생기 표출로 본다는 얘기다. 분야는 다르지만, <러빙 빈센트>의 고흐 오마주와 동류인 셈이다. 이래저래 좋아하는 고흐를 만날 수 있어서 재개봉된 <러빙 빈센트> 확장판이 기껍다. 혹여 내 주변에 있을 불특정 고흐들이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러빙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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