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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가 폭발하였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검찰 내 성추행사건 폭로를 기폭제로 연극계, 문단, 영화계, 교육계, 의료계 등 다방면에서 #미투 운동이 전개되었다. 사례 중 상당수가 업무나 고용관계 속에 일터에서 발생하였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표현을 성폭력과 함께 사용하였다.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으로 직장 내 성희롱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행위로 여겨지는 오해가 발생하나 실제 직장 내 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은 가벼운 농담에서 강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위의 성폭력을 통칭한다.)은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 간의 피해-범죄 문제이며,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협하는 노동권 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투 국면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일터의 성희롱․성폭력이 단지 개인 간 발생하는 성범죄일 뿐 아니라 우리사회 만연한 성차별이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임을 각인시키며, 한국사회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글에서는 #미투 운동 속에서 제기된 성차별, 성폭력 근절과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한 요구가 얼마나 정부정책에 반영되었는지 점검하고,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투 운동, 폭로가 아닌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미투 운동 참여자들은 단순히 피해에 대한 폭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마련을 요구하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 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발언과 대책마련을 당부하는데 힘입어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여기에 여성계의 성평등 정책 및 추진체계 마련 요구도 더해져 부분적으로 대책이 마련되었다. 

경찰청과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의 성평등위원회, 국방부와 보건복지부의 양성평등위원회 등 정부 부처별로 성평등 추진체계가 구성되고 있으나 아직 미미하다. 모든 부처에 성평등 추진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처별 성평등 추진체계는 각 부처의 사업과 정책이 성평등 관점에서 입안되고 시행될 수 있는 직제를 마련하고 충분한 수의 적임자를 배치하고 예산을 배분하여 실질적으로 성평등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성평등 정책은 한 부처에 국한될 수 없다. 뿌리깊은 성차별은 모든 영역에 얽혀 있기에 전 부처, 전 사회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전 부처를 아우르고 각 부처 간 정책이 배치되고 조정, 점검되어 전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성평등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여성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부처에 대한 강제력과 통합조정 기능, 집행기능을 갖는 상임위 형태로 존재해야 개별 부처의 성평등 추진체계와 지자체까지 포괄하여 성평등 철학에 기반한 성평등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 과제1. 고용평등업무 전담 조직 복구

일터 성희롱·성폭력은 행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범죄의 현장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고평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사업주의 피해자의 권리 보호와 재발 방지 등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일터 성희롱·성폭력 건에 대해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향후 이러한 행위가 발생되지 않도록 사업장 내 관련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장의 자율적 처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평법 집행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이나 사업장 지도점검 등의 역할을 상시적으로, 제대로 수행하며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 속에서 피해자가 평등하고 안전한 근로조건을 보장받아야 피해를 회복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터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70%가 퇴사하고, <평등의전화>에 상담한 피해자의 63.2%가 일터에서 2차 피해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법은 있으되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사문화된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일터의 성희롱·성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고용상 성차별이 폭넓게 규율되고 일터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지도 감독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고용노동부의 역할이고 책임이고 권한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전국의 수천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우리 국민 대다수의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할 책무를 방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말 여성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는 자료에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차별 관련 처리 건수가 14건이고, 이 중 기소 15%, 권리구제 10.1%, 위반 없음 49.3%, 기타 26.0%라는 데이터를 인용하며, '차별에 대한 심층적 판단이 어려워 근로감독관의 처벌, 시정이 미흡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5년 동안 단 14건. 그 5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발생한 성차별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고평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아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없기 때문에 사건을 진정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산하 11개 지부의 상담실인 <평등의전화> 등 전국 고용평등상담실로 상담되는 성차별 건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의 업무 방임과 직무유기가 고평법을 사문화하고 여성노동자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미투 운동 속에서 몇 몇 부처에서 마련하고 있는 성평등 추진체계를 마련하기는커녕 고평법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조직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성차별에 대한 규율과 일터에서 피해자 권리 보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를 상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직과 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2009년 폐지된 고용노동부 고용평등국과 지방관서의 고용평등과의 복구이다. 그래야 법률을 집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노동 과제2.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 마련

우리사회는 차별시정기구 일원화를 추진하며 성차별 시정에 대한 공백을 방치해 왔다. 고평법 제정 당시부터 설치되어 고용상 성차별 시정을 담당하던 지방노동청의 '고용평등위원회'가 2005년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에 따라 폐지되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상 성차별 문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차별을 판단하여도 차별시정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사실상 고용상 성차별 시정구제제도로 기능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원칙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고용상의 성차별 시정을 위한 별도의 장치가 시급하다. 

고평법 시행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성차별과 성희롱이 제대로 규율되지 않고, 오히려 사문화된 법 앞에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이유는 고평법 상의 성차별, 성희롱 등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원칙도 의지도 업무처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노동위원회에 고용상 성차별의 권리구제절차를 신설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계획은 성차별 해소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려스럽다. 노동위원회가 성차별 시정업무를 담당하더라도 차별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여 구제와 시정을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이제 직접적으로 성을 기준으로 차별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나 사회적 편견과 통념 속에서 다양하게 차별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에 대해 성차별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는 인적 구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과 구제업무를 담당하더라도  개별 사업장에 대한 실제적인 규율은 일선 노동청의 관리감독 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방노동관서의 고용평등과가 폐지된 이후 고용상 성차별과 성희롱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처리할 수 있는 인력도 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각 청에 1~2인의 전담근로감독관을 지정한다는 대책으로는 성차별 근절이 불가능하다. 고용노동부의 성차별 근절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제라도 직장 내 성희롱과 고용상 성평등 업무를 고용노동부의 중요한 업무로 인식하고 관련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계획하고 이에 맞는 조직체계와 예산, 인력을 마련하고 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의 성평등 노동 관련 단체, 지자체 고용평등 담당부서, 지역의 노동조합, 명예고용평등감독관, 고용평등상담실 등 고용평등과 관련하여 협력할 수 있는 단위들과 거버넌스를 구축해 보다 유기적으로 활동하여 성평등 정책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명숙 기자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입니다.


태그:#미투운동, #고용상 성차별, #직장내 성희롱, #성평등 , #여성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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