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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노동 시민사회단체는 12월 15일 6시 광화문 파이낸셜 빌딩 앞에서 '제주 영리병원 철회와 원희룡 제주지사 퇴진 촉구 촛불 집회'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노동 시민사회단체는 12월 15일 6시 광화문 파이낸셜 빌딩 앞에서 "제주 영리병원 철회와 원희룡 제주지사 퇴진 촉구 촛불 집회"를 열었다.
ⓒ 강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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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낼 때 아프면 참 서럽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긴 시간 자취생활을 한 나는 몸이 아파서 느끼는 설움을 비교적 잘 안다. 이보다 더욱 슬픈 건 돈이 없거나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다. 돈 없어서 병원 못 가는 슬픔을 국가가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만든 제도가 국민건강보험이나 보건소, 국공립병원 등 공공의료서비스다. 이런 공공보건·의료제도와 서비스는 적용받고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빼앗길' 때 존재감을 확실히 실감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리병원, 의료민영화와 같이 의료서비스의 질적 변화가 예상되는 것들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제주도 영리병원 허가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향후 내국인 진료로 확대될 것이고, 의료 공공성 훼손으로 국내 공공의료체계를 허물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질문에 51.3%가 동의했다. '외국인 진료에 한정하므로 국내 의료체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의료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으므로 찬성한다'는 질문에는 35.8%가 동의했다. 리얼미터는 "한국당 지지층에서만 찬성 여론이 우세했고 모든 지역과 이념성향, 50대 이하 전 연령층, 한국당 제외 모든 정당 지지층에서 반대가 대다수이거나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리 국민은 영리병원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각자가 가진 경험치와 의료 공공성에 대한 견해에 따라 다르겠지만, 몸이 아플 때 받는 병원 치료에 대해 보편적 복지, 형평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지만, 의료영역에서까지 빈부격차가 더 심화되는, 그래서 돈과 생명을 등치 시키는 방향은 원치 않는다.

지금까지 여론의 뭇매로 인해 숨죽이고 있었던 영리병원 이슈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뿐만이 아니라 찬성 입장을 가진 대기업과 보수 언론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영리병원이 괜찮은 것일까? 최근 허가된 제주도 녹지국제병원이 일으킨 영리병원 논란을 보면서 우려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리병원, 이런 이유로 반대한다.

첫째, 영리병원의 특성이다. 현행법상 의료인·비영리법인·정부·지방자치단체만이 병원 설립이 가능하다. 개인병원을 제외한 비영리병원은 병원에서 올린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고, 수익은 전부 의료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와 달리 영리병원은 주식회사처럼 외부의 투자를 받을 수 있고, 투자자들에게 수익도 분배한다. 설립 목적이 이윤 창출에 있다. 이로 인해 의료비 인상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불필요한 진료를 추가하고, 의료 인력을 감축하여 이윤을 확대하는 전략도 우려스럽다. 의료행위 경험이 전무한 중국 부동산 회사인 녹지그룹이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했다는 것은 다시 짚어야 할 지점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 체계의 약화다.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의무가 아니다. 한국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진료행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따라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나 영리병원은 예외다. 현재 한국은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의료비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지만, 영리병원은 민간보험과 계약을 맺고, 진료비 수준을 책정한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확대되면 민간보험이 진출하는 영역이 커지면서 건강보험을 위협할 수 있다.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건강보험에 틈이 생기고, 민간보험이 이를 대체하는 상황은 의료 공공성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영리병원의 확산이다. 제주도에 영리병원 하나 설립한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냐고 반대 목소리에 비난을 가하는 집단이 있다. 내국인 진료는 불가능하니 걱정할 일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분간 그럴 수도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회에서 여러 번 밝혔다. 이 정부에서는 절대 영리병원 추가 허가는 없다."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작은 틈에서 시작돼서 댐은 무너지고, 작은 불씨가 건물을 삼킨다. 한번 풀린 영리병원의 빗장은 우리를 의료서비스의 양극화, 의료민영화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정권은 임기가 있지만, 새로운 시장을 찾는 자본의 힘은 더욱 꼼꼼하고, 영속적이다.

넷째, 의사결정과정의 문제다. 2015년 3월 녹지그룹은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계획서를 제주도에 제출한다. 이 사업계획은 보건복지부 승인을 거치면서 2017년 7월 병원 건물 준공과 의료 인력 채용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해당 병원이 내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전용 병원'인지가 제주도청과 녹지그룹 간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제주도청의 병원 개설 허가 문제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게 된다. 결국,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논의 끝에 6대 4로 '개설 불허 권고'를 결정했으나 원희룡 지사는 이를 뒤집고, 지난 5일 녹지국제병원 외국인 전용 조건부 개설 허가 발표를 했다. 이후 녹지국제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당초, 녹지그룹이 어떤 목적으로 제주도에 병원 건립 계획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리병원 도입 문제는 기업 자본이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을 찾으면서 촉발됐다. 김대중 정부부터 서비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면서 지금까지 의료산업화 기조는 확대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6월 건의한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 9개 중 첫 번째가 '영리병원 설립'이었다. 오랫동안 대기업은 영리병원을 통해 새로운 수익 확대의 통로를 마련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영리병원이 자본의 '신세계'가 되도록 둘 수 없는 또 따른 이유는 한국의 낮은 공공의료 수준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기관이 병상 수 기준 12%밖에 안 된다. 영국과 캐나다는 99%에 이르고, 독일 41%, 프랑스 62% 수준이다. 의료 부문에서 후진적이라고 하는 미국도 24%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영리병원 운영이 시작된다면 그나마 괜찮은 건강보험으로 다져진 공공의료 체계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번 제주 영리병원 설립 논란을 한국 의료시스템의 맹점을 되짚고,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12월 12일 tbs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했음.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응답율 6.9%. 이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태그:#제주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의료공공성, #국민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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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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