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호세력들의 횡포와 이로 인한 부작용은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사·인문·학술 계간지 <사람과 언론>은 이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각 지역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3호(겨울호)에서 특집으로 마련했다.  <기자말>

'지역사회 지배구조와 토호세력의 뿌리'는 어느 지역이나 오랜 기간 동안 내재돼 왔던 골 깊은 지역사회의 문젯거리다. 쉬쉬하며 감추어져 왔을 뿐, 자본과 권력 간의 결탁,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은 지속되면서 지역에서 거대 공룡처럼 비대해지는 양상이다. 선출되지 않은 토호권력에 의한 피해는 지역의 언론사 내부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인천의 대표적 일간지인 <인천일보>에서 다섯 번 해직됐다가 다섯 번 복직돼 지금은 논설실 심의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찬흥(56)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4년 신문사에 입사한 그는 기자로 출발해 국회를 출입하는 정치부장과 회사 노조위원장 등을 맡아 열정적으로 언론활동을 해 온 베테랑 기자였다. 

그런 그가 신문사와 갈등을 빚게 된 것은 경영진의 눈엣가시로 보이기 시작한 2007년부터다. 회사는 그를 무단결근, 무단 외출, 지각 및 조퇴, 근무태만, 징계위원회 방해 등을 이유로 무려 다섯 번이나 해고됐으나 그 때마다 부당 해고라며 복직을 위해 회사 쪽과 맞서 싸운 그에게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 고등법원 등은 모두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복직 판결을 내렸다.

지역언론사와 자본의 결탁, 지역언론사와 권력의 결탁이 끊임없이 이뤄지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언론이 지역의 토호로 군림하고 있다. 그 중심에서 가장 많은 경험과 갈등, 고난을 겪은 그에게 토호의 실상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찬흥 <인천일보> 논설실 심의위원
 정찬흥 <인천일보> 논설실 심의위원
ⓒ 사람과언론

관련사진보기

 - 다섯 번째 해고되어 복직한 것이 2014년 7월 25일인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타깝고 황당한 일들이 계속되어왔다. 복직이후 회사와 힘을 합쳐 올바른 지역언론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했으나 회사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논설위원실에 발령을 받아 다른 논설위원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지만 칼럼이나 사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심의위원 역할을 하고 있다. 기사나 사설, 칼럼 대신 모니터 보고서를 쓰고 있다."   

- 복직 이후 부당한 인사라든지 대우에 대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있는가?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제출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부당전보와 부당대기,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원직 복직을 위한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냈다."

- 회사의 경영이 많이 나아지고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듯한 이미지를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지?
"대기업(부영그룹)이 최대 주주로 영입되고 실질적인 오너가 되었지만 급여가 꼬박꼬박 매달 지급되는 것 외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룹의 총수이자 회장이 임대주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불안감과 그 여파가 전 계열사에까지 미치지 않겠는가.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다. 부영그룹은 다른 지역(제주)에서도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일간지 대주주에 참여해 반발을 샀는데 이 지역에서도 시선은 곱지 않다."    

-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토호세력들이 군림하고 있다고 보는가?
"지역의 토호세력들은 자본과 권력을 모두 쥐고 있다. 여기에 언론까지 쥐락펴락하고 있을 정도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물론 선출된 권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토호세력들에게 정치인들이 기웃거리며 기대는 것은 일상화"

- 토호세력의 골 깊은 뿌리는 언제부터 형성돼 왔다고 보는지?
"오랜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과 수도권 등은 주로 토착민들보다는 외지에서 유입된 세력들에 의해 기득권 쟁탈전이 펼쳐진 곳이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건설업, 운수업, 학원, 병원 등에 이어 언론사를 반드시 인수하거나 최대 지주로 참여해 방파제로 이용하고 있다."

- 토호세력의 가장 큰 횡포와 폐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는지?
"무엇보다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외면당하는 데 일조를 한다. 또 이들 토호세력들은 정치권에 인맥을 두고 있거나 직접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지역의 모든 기득권을 독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 몫이 된다.   

- 지역의 정치·행정·문화·재계·언론계 등에 이르기까지 장악하고 있는 토호세력의 특징은 가족 간 대물림 또는 상호간 혼맥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지역의 실상은 어느 정도인가?
"한편으로는 고고한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에 기여하는 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이 되는 것이면 무슨 사업이든 뛰어들고 있다. 가면을 쓴 형태다. 병원, 대학, 심지어 언론사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례는 이 지역에서 유독 심하다. 그런 토호세력들에게 정치인들이 기웃거리며 기대는 것은 일상화가 되었다."   

- 지역사회의 적폐청산을 위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며,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언론이 올바른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그런 언론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지역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데 대해 안타깝고 죄스럽기만 하다. 시민사회단체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의 물결이 스며들면 기능이 쉽게 망가지기 일쑤다. " 

-지역에서 오랫동안 언론활동을 해왔는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일을 시작했나.
"1989년 지역의 일간지에 언론사 생활을 시작해서 1992년 일간지로 자리를 옮긴 후 2년 후인 1994년 현재의 인천일보에 몸담기까지 30여 년을 지역 언론사에서 일을 해왔다."

- 오랫동안 지역언론 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지역이나 언론사 난립과 경영난은 늘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강요하는 건 다반사다. 사실 금전적인 어려움은 참을 수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적 소양과 자질의 싹을 틔워보기도 전에 꿈을 접어야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가슴 아프다. "        
    
-앞으로 계획은?

"힘든 언론생활이지만 30여년을 버텨왔다. 계속 지역 언론인으로 남을 생각이다. 비록 현재는 사설을 못 쓰는 심의위원이지만 다시 취재현장으로 나가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 언젠가는 꼭 실현되리라 믿는다."   


[인터뷰①]"새마을운동·바르게살기·자유총연맹 등 3대 관변단체, 대통령도 손 못대"
[인터뷰②] "<조선일보> 절독운동이 토호세력 뿌리 뽑는 일"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계간지 <사람과 언론> 발행인 겸 편집인입니다. 이 기사는 <사람과 언론> 겨울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토호, #사람과언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