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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시민분향소에서 컵라면과 과자 등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시민분향소에서 컵라면과 과자 등을 올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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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로 산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탄가루 속에서 일하던 스물다섯 비정규직 청년이 세상을 떴다. 청년은 설비에 끼어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로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고, 6시간 넘게 방치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를 보편타당한 것으로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이 죽음은 여기에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신분제가 폐지됐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말 신분은 사라졌는가.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할 수 있는가.

재벌과 사회 빈곤층,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우리는 사회 암암리에 존재하며 사람들을 가르는 수많은 신분을 목격한다. 그 대립을 바라본다. 그중에서도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주는 아픔은 한 개인의 설움으로 그치지 않는다. 차별은 먼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 친구도, 또 다른 친구도 계약직이었다

내 친구는 계약직이었다. "그렇게 하면 재계약해줄 수 없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며 그 친구는 정규직보다 많은 업무량, 출퇴근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속되는 상사의 폭언, 직장 내 성희롱마저도 생계의 위협 앞에서 꾸역꾸역 참아내야 했다. 회사는 모든 걸 참아내면 결국 재계약해줄 것처럼 말했다. 친구는 떠넘겨진 모든 일을 맡고, 부당함을 감수했다. 하지만 그의 고용계약은 지난달 만료됐다.

또 다른 친구는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는 근무 중 새끼 손가락뼈가 부러졌다. 산재였다. 의사는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업체는 통원치료로 끝내라는 둥 어떻게든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으려고 했다. 아직 몸도 못 추스른 채 친구는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는 아직도 손가락을 마음대로 굽히지 못한다.

차별은 무수히 이어져 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내식당 메뉴부터 태안화력발전소의 죽음까지. 이대로라면 무수히 이어질 차가운 현실이다.

청년은 팻말을 들었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여기에 적혔던, 끝맺지 못한 이야기들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거저로 신분 좀 올려달라는 투정이 아니다. 지난 9년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44건 중 42건이 하청노동자에게 발생했으며, 사망자 6명은 전원이 하청노동자였다. 위험한 작업들을 외주화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그 부담과 책임마저 모두 외주화해 버리는 현실을 좀 해결해 달라는 얘기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사람 목숨 좀 똑같이 여겨 살려 달라는 처절한 부탁이다.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정비노동자 김군이,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 청년이 숨졌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슬픔을 반복해야만 하는 현실을 제대로 바꿔 달라는 것이 그리도 무리한 요청인가.

아들 뜻 같이 하겠다는 어머니, 그 옆에 서자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조위(사회적참사특조위) 안전사회소위 주최로 열린 ‘안전한 사회를 위한 토론회’에 발언한 뒤 얼굴을 감싸며 힘들어 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조위(사회적참사특조위) 안전사회소위 주최로 열린 ‘안전한 사회를 위한 토론회’에 발언한 뒤 얼굴을 감싸며 힘들어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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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깜깜한 화력발전소 내부에서 일하면서 헤드랜턴조차 지급받지 못해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2인 1조로 이뤄지던 작업이 외주화 후 1인 1조가 되면서 청년은 죽은 후에도 6시간 이상 방치돼야 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가엾은 청년의 죽음을 접한 뒤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고 안타까워할 것이 자명하다. '내가 김용균이다', '나는 너다'라는 비정규직들의 처절한 외침에서 읽을 수 있듯,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언제고 제2의, 제3의 김용균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가엾은 청년의 슬픈 죽음을 진정으로 기리고자 한다면, 이 이야기를 애도로만 끝내선 안 된다. 그가 들었던 팻말 속 이야기들을 남은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 "우리 아들이 생전에 팻말을 들으며 했던 그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태그:#비정규직, #화력발전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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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에서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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