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그러나 정작 인터넷 검색창에 가락시장의 노동실태와 관련하여 검색을 해보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연일 쏟아지는 노동 관련 뉴스 속에서 '강남 3구' 송파구의 최대 노동자 밀집지역인 가락시장에 대한 어떠한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지역노동조합인 '송파유니온'이 이 거대한 노동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기로 한 때가 지난 9월 말경. 먼저 우리는 조업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 차를 타고 가락시장에 들어와 보았다. 비교적 큰 출입구인 남1문으로 들어와 가락몰을 오른쪽에 두고 쭉 직진했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에서 좌회전을 해서 가락시장의 경매장이 있는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보았다.

좌회전을 하여 시장 안쪽으로 들어온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경매장과 각 도매시장 법인에 속한 중도매인들의 가게 사이에 난 길이 화물차와 삼륜전동차, 청과들이 실린 파레트와 박스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고, 사람들은 요리조리 그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도저히 이 길을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좌우를 살피며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겨우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움직이기조차 힘든 그곳, 작전을 세우다
 
가락시장 실태조사 설문지. 총 4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문을 하는데는 평균 10분-15분이 소요된다.
 가락시장 실태조사 설문지. 총 4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문을 하는데는 평균 10분-15분이 소요된다.
ⓒ 황재인

관련사진보기

  
다음날부터 작전을 세웠다. 먼저 가락시장에서 현재 일하고 있거나, 일해 본 경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 가락시장의 도매방법,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구성 및 업무 등에 대해 물어보며 사전 정보를 얻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며 설문조사 문항을 만들었고, 용지를 디자인했으며, 설문조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제작하였다.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 최대한 알려질 수 있도록 단체조끼를 만들었고, 실태조사원을 드러내는 명찰도 제작했다.

또 판촉물 기획사를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인 칫솔치약세트를 원가로 제작했다. 조사 당일에는 가락시장으로 일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인 가락몰 3관과 4관 사이 입구에 천막을 치고, 설문조사 취지를 알리고 설문조사를 독려하기 위해 이동식 앰프도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전준비를 마친 우리는 9월 30일 오후 9시경에 가락시장 앞에 모였다. 그리고는 사전에 거점으로 선정한 가락몰 입구에 천막을 치고, 그 주변에 현수막을 걸었다. 단체조끼와 명찰을 착용한 뒤 2인 1조로 팀을 구성하여 한 명은 설문용지를 끼운 파일을, 다른 한 명은 기념품이 든 에코백을 든 채 두 시간 후 거점으로 다시 모이기로 약속하고 무작정 가락시장으로 들어갔다. 그게 오후 10시였다.

가락시장 안은 역시나 전쟁터였다. 상당히 넓은 시장임에도 시장 안은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이 운전하는 삼륜전동차, 이리저리 쌓여 있는 농산물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설문을 요청하는 우리들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은 채 일에 열중해 있었다.

우리는 설문은커녕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삼륜전동차를 피해 다니는 것조차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밤 12시가 되어 다시 모인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총 4개의 조에서 단 2장의 설문을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서로를 다독였지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새벽 2시까지 첫날 설문조사를 마친 우리가 받은 설문지는 총 3장이었다.

첫날 결과는 처참...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락몰 메인 출입구 앞에 천막을 세웠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락몰 메인 출입구 앞에 천막을 세웠다.
ⓒ 황재인

관련사진보기


이튿날, 우리는 다시 모였다. 이제는 약간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메인부스에서 한의사의 무료건강상담 프로그램을 하니 두세 명의 노동자들이 호기심에 부스를 찾아왔다. 가락시장 안을 누비는 팀들도 첫날과는 달리 설문조사를 받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은 총 15장의 설문지를 수거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약 8일간(9월 30일~10월 10일) 설문조사를 받았다. 어떤 날은 아침 7시, 또 어떤 날은 오후 5시부터 설문을 시작하여 최대한 다양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자 했다.

어렵게 받은 설문조사는 총 150여 장이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수만 명의 노동자 숫자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였다. 이르면 오전 7시부터, 늦을 때는 새벽 2시까지 진행된 강행군 속에서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작지만 큰 성과였다고 자평하고 싶다. 이렇게 받은 150장과 항운노조의 협조를 얻어 받은 450장을 더해 총 600여 장의 설문지를 수거할 수 있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서 만난 가락시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조 섞인 말들을 하곤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뜻은 좋지만 여긴 힘들 걸요."
"실태조사 이거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는 기대 안 해요. 저도 돈 좀 모으면 그만둘 겁니다."


노동자들은 이런 말들을 남긴 채, 설문조사에 함께할 것을 호소하는 우리들을 그냥 지나쳐 갔다. 오전 8시. 많은 사람들이 출근준비로 바쁜 그 시각에 가락시장의 많은 노동자들은 야간·새벽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했고, 몇몇은 진하게 술을 한잔 걸치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조금씩 베일 벗는 가락시장 노동자들의 실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거나, 문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문조사원이 직접 각 문항을 읽어주며 설문조사를 하는 모습.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거나, 문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문조사원이 직접 각 문항을 읽어주며 설문조사를 하는 모습.
ⓒ 황재인

관련사진보기

    
안개 속이었던 가락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는 그렇게 조금씩 우리 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1일 12시간~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것도 대부분의 노동시간이 야간 또는 새벽이었다. 시장이 쉬는 토요일 하루를 제외하면 휴일도, 휴가도 없이 일해야 하고, 정신없이 오가는 삼륜차에 치이거나 무거운 물품을 옮기면서 허리를 다치는 등의 재해 위험에 처해 있었다.

1985년 문을 열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의 노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못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곳이 현대판 노동지옥"이라고 여기면서도 이 나이 먹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또는 어디를 가나 최저임금인데 여기는 노동시간이라도 기니 좀 더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별다른 조건 없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 등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가락시장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이었기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심정으로 버티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아질 수 있다. 변할 수 있다"는 기대는 그들에게 사치였다, 그렇게 가락시장의 노동실태는 묵인되어 왔다.

* 자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태그:#가락시장, #노동조건, #비정규직, #송파유니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재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송파구에 사는 청년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