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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리석 선생 후손 차영조 선생
 차리석 선생 후손 차영조 선생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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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중국 충칭에서 태어난 꼬마는 어느새 75세의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 이제는 한 손으로 헤아릴 정도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차영조, 그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동암 차리석 선생이다.

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효창공원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효창공원은 김구 주석과 이동녕 주석, 차리석 비서장, 조성환 군무부장,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 7명의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는 묘역으로 국립시설이 아닌 탓에 지금껏 용산구청이 '근린공원시설'로 관리해왔다.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씨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버지의 묘를 직접 관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관리묘역'은 효창공원처럼 정부가 조성한 국립묘지는 아니지만 현충원 같은 국립묘지 수준으로 관리되는 묘역을 뜻한다.

해방 후 차씨에서 신씨로 성을 바꾼 이유

그는 한때 원래 성인 차씨를 버리고 신씨로 살았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몸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차씨의 아버지 차리석 선생은 해방된 조국을 끝내 밟지 못했다. 해방 후 불과 20여일 지난 1945년 9월 9일 운명했다.

임시정부 비서장으로 살림을 맡아온 차리석 선생은 환국 작업에 본격 착수하던 중 과로로 쓰러졌다. 평생을 독립운동만 하다 급작스레 떠나버린 차리석 선생은 두 살배기 아들 차영조와 부인 홍매영 선생만 남겨두고 떠났다.
  
 1945년 9월 9일 차리석 지사는 환국 준비중 과로로 쓰러져 중국 땅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앞줄 가운데 아기를 안고 있는 분이 부인 홍매영 지사이고 품에 안긴 아기는 올해 75세된 아드님 차영조 선생이다.
 1945년 9월 9일 차리석 지사는 환국 준비중 과로로 쓰러져 중국 땅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앞줄 가운데 아기를 안고 있는 분이 부인 홍매영 지사이고 품에 안긴 아기는 올해 75세된 아드님 차영조 선생이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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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가족들에게 이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차씨와 어머니 홍매영 선생은 해방된 조국에 힘겹게 돌아왔지만 조국은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1947년 7월 몽양 여운형 선생이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거목 김구 선생도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어머니 홍매영 선생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 영조의 성을 차씨에서 신씨로 바꿔 살게 한 이유다.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1962년에야 아버지 차리석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3등급을 서훈했다. 해방 후 17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아버지 묘소 효창원이 내 고향"
  
 효창원은 임정요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이 영면한 곳이다.
 효창원은 임정요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이 영면한 곳이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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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차영조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 묘소인 효창원이 내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이유를 물으니 "평생을 아버지 묘소를 지키며 지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충칭에서 태어난 차씨는 두 살 때 조국에 돌아온 이후 고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부모님 역시 모두 북쪽 출신이라 차씨는 부모님의 고향에 한 번도 가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효창원을 고향 삼아 지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에, 이낙연 총리가 임시정부 기념일인 지난 4월에 효창원을 찾은 것이다. 차씨는 "해방 후 대통령과 총리가 효창원에서 참배한 것이 처음이었다"며 "이낙연 총리가 아버지 묘에서 헌화를 하는데 눈물을 참기가 참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차리석 선생의 후손 차영조 선생
 차리석 선생의 후손 차영조 선생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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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차씨가 보여준 당시 사진에는 참배객들이 묵념하는 사이로 차씨만 혼자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들고 있다. 차씨 말대로 광복 후 처음으로 예우를 받은 아버지를 보니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바짝 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던 것이다.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은 느닷없이 관중 1만 8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효창운동장을 애국지사들의 무덤 앞에 만들어 버렸다.

박정희 정권은 한술 더 떠 김구 선생 묘역과 삼의사 묘역 머리쪽에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을 세웠다. 1969년에 세워진 이 탑의 한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같은해 박정희 정권은 임정요인 묘역 뒤쪽에 원효대사의 동상을 뜬금없이 세웠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대한노인회 중앙회 건물을 김구 선생의 묘 좌측에 자리하게 했다. 대한노인회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육영수 여사 경로 송덕비'를 세웠다.

앞서 일제는 조선왕가의 무덤이었던 효창원을 강제 이장한 후 골프장으로 운용했다. 해방 후 환국한 김구 선생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목적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효창원에 모셨다. 1948년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의 묘도 마련됐다. 1949년엔 김구 선생 자신이 효창원에 잠들었다.

이에 대해 차씨는 "(그들은) 친일 정권이니까 그랬던 것"이라며 "백범을 1949년에 효창원에 모시고 효창운동장이 만들어진 1960년까지 국민 아무도 참배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차씨는 "심지어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도 아버지 산소에 가려면 확인을 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효창원 입구에는 이승만 정권이 만들어 놓은 효창운동장이 60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
 효창원 입구에는 이승만 정권이 만들어 놓은 효창운동장이 60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 애국지사 묘역 어디에서 봐도 정면을 막고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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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창공원 머리에 세워진 반공투사위령탑
 효창공원 머리에 세워진 반공투사위령탑, 박정희 정권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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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은 애국선열들을 모신 효창원에 원효대사 동상을 세웠다.
 박정희 정권은 애국선열들을 모신 효창원에 원효대사 동상을 세웠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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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것은 결국 사라진다"

차영조씨는 "효창원이 국가차원의 관리묘역으로 바뀐 만큼 불필요한 운동장과 반공탑 등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며 "육영수 여사 송덕비는 고향인 옥천으로 옮기면 되고, 반공탑도 취지에 맞는 곳으로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씨는 "대한노인회 건물 등은 없앨 게 아니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차씨는 이어 "효창원을 많은 사람이 직접 와서 보고 느끼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일곱분 애국지사들을 위하는 것"이라며 "이분들이 비록 육신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있다는 본보기를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철거가 예상되는 효창운동장에 대해서도 차씨는 "그 자리 역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하면 된다"면서 "효창원은 원래 큰 연못과 소나무가 많던 곳"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시민들의 걸음을 잇기 위해 공원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매영 지사와 남편 차리석 지사  왼쪽이 이번에 포장증을 받은 홍매영 지사, 오른쪽은 남편 차리석 지사.
▲ 홍매영 지사와 남편 차리석 지사 왼쪽이 이번에 포장증을 받은 홍매영 지사, 오른쪽은 남편 차리석 지사.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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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조씨의 아버지 동암 차리석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파수꾼'으로 불린 인물이다.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조작 사건인 '105인 사건'에 연루돼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1919년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 망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후 김구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자싱으로 도피했을 때, 항저우로 이동해 김철 선생, 송병조 선생과 함께 임정을 지켜냈다. 중국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 차리석 선생을 비롯해 김철 선생, 송병조 선생 세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는 이유다.

한편 지난 11월 17일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차영조씨의 어머니 홍매영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 훈장을 추서 받았다. 1942년 중국 충칭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한 공적을 해방 후 75년이 지나 인정받은 것이다.

놀라운 점은 '순국선열의 날'은 차씨의 아버지 차리석 선생이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지청천 장군 등과 함께 제정한 기념일이다. 아버지 차리석 선생이 제정한 기념일에 어머니 홍매영 선생이 훈장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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