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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에서 마주친 이채로운 판잣집. 바로 뒤에 청계천 박물관이 있다.
 청계천변에서 마주친 이채로운 판잣집. 바로 뒤에 청계천 박물관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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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와 청계천 양편에 도로 다이어트 방식(차도를 줄여 새로운 길을 조성)의 자전거도로가 생기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좋아졌다. 특히 청계천 자전거길은 광화문, 세운상가, 광장·평화시장 등 천변의 명소를 바로 들를 수 있어 더욱 좋다.

청계천 하류 구간을 지나다보면 만날 수 있는 청계천 박물관(성동구 청계천로 530 (마장동))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천변에 자리한 이채로운 판자촌 덕택에 이 박물관을 알게 됐다. 박물관 앞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무인대여반납소가 있어서 자전거 타고 오기 좋다. 강도 아닌 작은 개천에 박물관이 자리한 물줄기는 청계천이 유일하지 싶다. 
 
청계천 양편에 있는 안전한 자전거도로.
 청계천 양편에 있는 안전한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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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판잣집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시민들.
 청계천 판잣집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시민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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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가에 지난 1950~1960년대 청계천에 자리하고 있었던 판잣집을 재현해 놓았다. 외관도 눈길을 끌지만 안에 들어가면 406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연탄가게 '청계연탄', 만화가게, 구멍가게 '광명상회' 에다 당시의 교실 등을 꾸며 놓았다.

소품 하나하나가 정답다. 교실 안 나무 책·걸상, 연탄난로 위의 양은주전자, 동그란 나무 밥상에 놓인 양은냄비와 노란 양재기, 벽에 걸린 까만 교복과 교모는 직접 입어보고 기념 사진도 찍을 수도 있다. 

판잣집 바로 뒤에 수표(水標)석을 문 앞에 세워놓은 청계천박물관이 서 있다. 조선 세종 때인 1420년 한강변과 청계천에 처음 만들었던 수표는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물의 높이를 재는 측량기구다.

현재 남아 있는 수표는 영조 때 다시 만든 것으로 청계천의 다리 수표교 앞에 세웠다. 수표교는 임금의 어가행렬이 지나가던 다리로 청계천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수위를 재기 위해 만든 수표석이 서있는 청계천박물관,
 조선시대 수위를 재기 위해 만든 수표석이 서있는 청계천박물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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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만 갖춘 청계천 수표교.
 모양만 갖춘 청계천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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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계천 수표교는 다리 모양새만 갖췄다. 지난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설치하면서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고 아직까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청계천은 조선초부터 나라에서 신경 쓰고 관리하던 하천이었다. 1411년 태종 이방원은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게 하면서 이름을 '개천(開川)'이라 명명했다. 개천이란 자연하천의 바닥을 파고 물길을 넓히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든 하천을 말한다.

또한 태종은 청계천의 유서 깊은 다리 가운데 하나인 광통교를 만들었다. 이 다리엔 보기 드문 문양의 돌들이 있는데 태종의 아버지인 이성계의 계비, 강씨 무덤에 있던 거였다. 이걸 태종이 강씨 무덤에서 가져온 것.

이성계가 왕위를 강씨 소생이자 세자인 방석에게 넘겨주려고 했다가 전처 소생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방원은 강씨가 미웠던 모양이다. 강씨가 죽고 난 뒤에 묘지석을 파가지고 광통교를 만들었다. 한양 사람들이 이 돌들을 밟고 다니라고 한 거다.
  
박물관 바닥에 옛 청계천 일대 지도가 깔려있다.
 박물관 바닥에 옛 청계천 일대 지도가 깔려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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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처럼 움직이는 청계천 광통교 옛 사진.
 동영상처럼 움직이는 청계천 광통교 옛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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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구경은 입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먼저 올라가길 추천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길의 속성을 따라 1층까지 자연스럽게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를 관람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한양의 젖줄 청계천을 다룬 4층에서 청계천 복원 후 10년의 기록이 담긴 1층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3층에서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고 북촌과 남촌의 경계가 된 사실을 알게 됐다. 1914년은 일제가 '창지개명(創地改名)'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지명을 새로 지은 해다. 이때 서울의 당시 이름인 '한성'을 없애고'경성부(京城府)'로 고치는 등 우리의 산·강·지명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특히 바닥에 청계천 주변 옛 지도 그림을 깔아 놓아 이채로운 기분이 들었다. 옛 지도와 안내 게시판 덕분에 청계천이 백운동천, 삼청동천, 남소문동천 등과 이어진 지천 관계임을 알게 됐다.

여기서 동(洞)은 동네가 아니라 산자락이나 계곡을 뜻한다. 19세기 조선 후기에 찍은 옛 청계천 흑백사진들엔 증강현실기법 효과를 적용해 흡사 움직이는 영상처럼 보였다. 관람객들이 청계천을 현실감 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5~60년대 청계천 판자촌 사진.
 박물관에 전시된 5~60년대 청계천 판자촌 사진.
ⓒ 청계천 박물관내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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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까지 하는 '남소문동천' 전시회.
 내년 2월까지 하는 "남소문동천" 전시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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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변 약국집 아들이었던 소설가 박태원이 소설 '천변풍경'에서 묘사했던 풍경도 나온다. 아낙네들의 빨래터였던 청계천이 8·15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빈민들의 '하꼬방'(판잣집)으로 채워진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6·25 전쟁이 끝난 폐허의 땅, 청계천변에는 피난민들이 내려와 거대한 판자촌을 이룬 풍경이 생경하고 놀라웠다.

1층 기획 전시실엔 내년 2월 24일까지 '장충단에서 이간수문으로 흐르는 물길, 남소문동천'을 볼 수 있다. 남소문동천 상류의 장충단부터 하류 배수구인 이간수문까지 상·중·하류 구역별로 시대의 변화상을 사료와 사진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청계천 일대가 잘 보이는 박물관 옥상정원.
 청계천 일대가 잘 보이는 박물관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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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만든 고가도로 흔적. 일부러 남겨 놓았다.
 7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만든 고가도로 흔적. 일부러 남겨 놓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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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옥상정원으로 가면 청계천에 바라보이고 하천 위에 있었던 고가도로 일부를 볼 수 있다. 청계로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청계천에 고가도로 일부를 남겨둔 거다. 70년대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는 복개공사를 하면서 청계천 물줄기가 땅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차도와 함께 고가도로가 생겨났다.

이로써 청계천은 사라지고 대신 청계로가 되었다. 복개공사는 물길을 덮는 공사일 뿐만 아니라 천변의 판잣집들을 허무는 공사이기도 했다.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던 청계천 양안에는 현대적인 상가 건물이 자리해 70년대 한각의 기적을 이뤄내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박물관 관람을 하면서 한 권의 책을 읽는 듯 했다. 몰랐던 역사적인 내용,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면 광통교 돌들에 담긴 사연도, 수표교가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진 사실, 청계천 복원공사 중 장통교가 사라진 것도 몰랐을 듯하다. 박물관 관람 후 자전거를 타고 다시 청계천변을 달려가는 길, 물줄기가 새롭고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청계천 박물관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이며,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다. 입장료는 없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누리집 : http://www.museum.seoul.kr/cgcm/index.do
* 문의 : 02-2286-3410
* 교통편 : 1호선 제기역 4번 출구, 2호선 용두역(동대문구청)역 5번 출구, 5호선 마장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15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실립니다.


태그:#청계천, #청계천박물관, #청계천판잣집 , #남소문동천,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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