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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속 태평소를 불고 있는 사람사랑 한홍수 대표
 노을 속 태평소를 불고 있는 사람사랑 한홍수 대표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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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인 한홍수 선생은 장애인들과 더불어 끊임없는 봉사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비영리 단체인 사람사랑을 만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공연무대를 16년간 이어오고 있다.

오는 7일 전남 목포시 소재 남도 소리 울림터(도립도서관부근)에서 장애인과 보조를 맞춘 공연이 우리 곁에 찾아온다. 매번 다른 색깔의 공연, 그리고 관객들의 박수갈채는 그가 다음 공연을 기획하는 힘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고 말 그대로 사람 축제의 장을 만드는 그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공연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카페에서 그에게 삶의 길을 물었다
 카페에서 그에게 삶의 길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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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로 향했다. 한홍수 선생이 사는 곳이다. 어정버정 서서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그의 불편한 걸음에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는 걸음이 오히려 비장애인들보다 더 떳떳하고 올곧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각장애인의 평생 소원이 무엇인 줄 아세요? 세상을 보는 것이죠. 당신은 그들의 평생 소원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죠. 정말 운이 좋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최대한의 감정을 절제하려는 신중함이 실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톤을 높여 호소하려는 어느 연설가보다 더 깊이 그의 말에 매료됐다. 또한 그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총총했다. 결의마저 느껴졌다.

"사회는 수고로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대에서 장애가 있는 친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이 비장애인들이 하는 최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한 꼭지를 넣어주세요."

으레 장애인들의 무대는, 장애인들의 축제는, 장애인들을 전면에 내세운 채 그것이 전부인 양 말을 한다. 장애와 비장애인의 무대를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지금껏 그러한 구별 속에 살았는가.

그는 되레 장애인 성가대를 하려고 하는데 왜 편곡을 하지 않은가는 질문을 던졌다. 왜 비장애인의 음에 맞춰 연주되는 음에 억지 춘향식으로 장애인을 끼워 넣고 그의 능력 부족을 탓하는가. 그는, 수고로움이란 어설픈 배려가 아니고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하려는 삶의 자세라 말했다.

그는 말만 하지 않았다. VMS 자원봉사 시스템에 집계된 봉사시수만 1428시간, 장애인과 동행한 국악 공연 760여회를 기록했다. 모두 장애인들과 함께 꾸린 무대였다. VMS 시스템이 사회에 적용되기 전부터 해왔던 봉사이기에 따지고 보면 봉사시수는 그의 47세 나이에 폭을 맞추면 그의 인생 절반 이상을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언젠가 어떠한 조건이 됐을 때 막연히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지금 하지 않는 것을 죽을 때 돼서야 100억, 200억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살면서 차곡차곡 동행하는 삶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나마 죽을 때 돼서 기부하는 사람은 봉사에 대한 생각이 있겠지만 평생을 미루다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사람도 흔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 아니겠냐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그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국악 강습을 한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수업, 일 년에 한번 있는 학예회식 공연에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있었다. 고마워해하는 분위기, 일선의 정치적 뜻을 가진 사람들의 사진 한 장에는 더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여럿이서 함께, 그리고 자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이것이 밀알이 돼 다른 무엇으로 퍼져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습비는 받지 않았다. 미안해서 주는 비용이 있다면 장애인들의 공연비로 돌렸다. 장애인들의 이동과 무대 설치, 음향 비용 등에 썼다.

사람사랑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후원은 5만원 이하로만 받았다. 일체의 간섭은 받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이었다. 일정 부분 도움은 받되,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지금껏 '장애인 봉사활동'이 적어도 그의 눈에 보이기에는 일정 부분 정치와 상업에 뺏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도군 장애인 복지관, 광명원, 영암 주간 보호센터, 목포 인성학교 등 그 범위를 넓혀 전국적으로 돌아다녔다. 시각장애, 정신지체, 발달지체, 자폐를 앓는 친구 및 그 주변 사람들과 연이 닿았다. 두 번해서 안 되면 세 번 했고, 세 번해서 안 되면 열 번 연습한다는 각오로 매일 연습했다.

한일월드컵이 한창인 2002년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골대에 축구공이 출렁일 때의 함성을 그는 장애인들이 치는 장구 소리에, 징 소리에서 들었다. 때론 엇박자이긴 하지만 그들의 어깨 띠에 맺힌 땀방울에서 봤다.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는 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압해도에 있는 노인요양원을 방문해 공연을 했다.

"어르신들은 다 좋아해요. 사람들 보고, 사람들과 살 맞대는 일이었죠. 우리는 무대가 필요했고, 어르신들은 사람이 필요했으니 윈윈 된 거죠."

하얗게 이를 드러내 웃으며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말을 이었다. "도움에 익숙하길 바라는 것도 잘못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며, 불편한 것을 방치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팔과 다리가 돼주는 가교가 될 마음의 자세가 장애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사랑 한홍수 대표의 봉사 공로가 인정돼 받은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사람사랑 한홍수 대표의 봉사 공로가 인정돼 받은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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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러한 노력은 인정을 받아 지난 2015년 보건복지부장관 명의 표창장을 받았다. 상을 받으니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주면 받는다"는 말로 가볍게 테니스 공 툭 치듯 넘겼다. 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챙겨야 할 공연에 대해 좀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람의 얼이나 체온을 중요하게 여긴다. 초겨울 볕이 창문 틈으로 비쳤다. 여린 빛이지만 고르게 퍼져 찻집의 테이블을 덮었다. 당신이 사는 삶의 속도는 어디에 맞출 것인가. 한홍수 선생은 답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오는 12월 7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국악공연이 전남목포시 소재 남도소리울림터(도립도서관)에서 10시 30분에 열린다
 오는 12월 7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국악공연이 전남목포시 소재 남도소리울림터(도립도서관)에서 10시 3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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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홍수,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사람사랑, #김성훈,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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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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