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국가는 무엇일까. 백과사전에는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단체이자 개인의 욕구와 목표를 효율적으로 실현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제도적 사회조직으로서의 포괄적인 강제 단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개인이 모여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이 특정한 공통점의 사회를 구성하여 특정 영토 안에서 생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국가의 사전적 의미일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안녕과 편안한 삶을 위해 시스템화 돼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종 관료, 공무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의 틀을 유지한다. 국민은 그들에게 그 역할을 맡김으로써 안심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는 나라였다. OECD에 가입하고 경제 성장률은 하늘을 찔렀다. 동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그 좋은 시절이 끝나가는 1997년을 배경으로 한다. 외환 보유가 점점 바닥으로 향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많은 중소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았으며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영화는 IMF의 지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90년대 중반 동아시아의 호랑이의 위기

영화는 세 축을 중심으로 그 시기의 일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의 시선으로 국가 시스템과 고위 국가 공무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판단을 하고 결정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작은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의 시선을 통해 그 당시 실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서민들의 고통을 그린다. 동시에 종금사 출신의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을 통해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버는 과정을 보여주게 되는데 사회 시스템의 아이러니를 통해 성공하는 인물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90년대 당시 한국은 군사 독재를 끝내고 처음 맞이한 민주 정부였다. 많은 기대 속에 처음 맞이하는 민주 정부 출범에 국민 대다수는 국가를 믿고 앞으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많은 국내 매체들은 한국의 경제적 상황을 많은 것을 숨기고 강압적으로 했던 군사 독재를 경험한 많은 이들은 문민정부가 국민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보유 외환이 바닥을 향한다는 사실을 미리 공표하지 않는다. 

영화 속 한시현 팀장은 무능한 고위 간부들을 설득하고 긴급회의를 만들어 참석하지만 그의 의견과 대책들은 대부분 무시된다. 그것이 그 당시 국가가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군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오만했고 국민을 무시했다. 그들은 상황이 종반부로 향할 때까지 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한시현 팀장은 끝까지 그의 팀원들과 함께 상황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그 당시에도 국가 시스템 속에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해결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IMF 구제 금융이라는 좋지 않은 해결책을 향해 달려고 결국에는 그 해결책 때문에 한국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정리되고 많은 직장인들이 구조조정 당하는 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계약직이라는 개념의 고용형태가 고용 유연화라는 미명 하에 도입되어 많은 직장인을 혼란에 빠트린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더욱더 몇몇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제 시스템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결과를 예측했던 한시현 팀장은 다른 방안을 통해 국가 부도를 막으려 했던 당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본분 수행자 중 하나였다. 영화는 그의 모습을 꽤 진지하고 설득력 있게 담는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사실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 시스템의 측면에서만 영화를 다루다 보면 너무 난해한 내용 때문에 영화적 재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객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이게 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맨 윤정학이다. 그는 왜 국가가 부도의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결국 왜 IMF의 도움을 받는 쪽으로 결론이 정해져 있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는 국가가 이야기해주지 않는 숨겨둔 정보를 추측해 냄으로써 그것을 통해 자신의 부를 불리게 된다. 그는 그런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존재다. 윤정학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언론도 마찬가지로 믿을게 못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고, 그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억만장자가 된다. 또한 그는 2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도 정부에 대한 그 이야기가 유효하다고 말한다.

강압의 현장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봤던 건 일반 국민들이었다. 기업간 어음을 통한 거래가 많았던 그 시절, 한보그룹의 파산을 시작으로 각종 부채를 돌려막기 하던 금융권과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그 한가운데 있던 부도 직전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영화 속 작은 공장의 사장인 갑수는 국가 시스템의 가장 말단에 있는 국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그와 그 주변에 있었던 거래처들이 어떤 과정으로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그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말미, 결국 공장이 도산 직전으로 몰려 주변 사람이 교도소에 가거나 죽음을 맞는 장면, 그리고 갑수의 아내가 비정규직 전환 동의 서류를 받는 장면은 그때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국가적 강압의 현장을 고스란히 묘사한다.

20년 전에 어떤 상황 때문에 IMF의 금융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세세한 부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가 현재도 계속 체험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노노 갈등이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 정치적 분열 등은 사실 그때 이후에 모두 발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 발단이 일부 묘사된다. 재정국 차관(조우진)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대기업을 살리고 일반 노동자를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래서 그는 대기업 쪽에 접촉하여 미리 정보를 흘려두고 무조건 IMF 구제를 고집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IMF는 실제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한국에 금융 지원을 약속한다.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의 관료들이 한 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은 국민의 어려움이 아니라 대기업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그들 자신의 안위와 성공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국가 시스템의 어려움을 알게 된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20억이 넘는 금액을 모은다. 이 돈은 그대로 대기업 지원에 쓰였다. 그것이 과연 국가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반 서민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도움을 줬던 기업들은 현재도 그 당시처럼 그들을 위하지 않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

여전히 2018년의 한국 정부는 많은 정보를 먼저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음모론을 내놓는다. 그게 실제로 일어나면 음모론이 아니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음모론으로 치부된다. 이는 영화 속 윤정학이 주장하는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그저 음모론자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는 그 음모론적 추론을 통해 국가가 숨기고 있던 치부를 찾아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의심하고 질문해야 하는 비판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국가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또 조용하다. 그리고 그저 국민의 동요를 막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언론에 안심되는 정보를 흘린다. 지금까지 이 경향은 어떤 정치 집단이 정권을 잡아도 바뀐 적이 없다. 그걸로 인해 손해를 입는 건 국민들이다.

영화 말미, 주요 등장인물인 한시현, 갑수, 윤정학은 각자의 공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한시현의 눈물은 국가 시스템으로서 그 일을 막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갑수의 눈물에는 서민으로서 그저 벌어지는 일을 당하고 묵묵히 버틸 수밖에 없는 고통이 담겨있다. 그리고 윤정학의 눈물에는 그 혼돈 속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국가와 국민이 망하는 걸 바랄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담겨있다. 세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울음을 터뜨릴 때 관객들은 어떤 씁쓸함과 절망감을 같이 느낀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국민의 감시

국가 시스템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일반 국민이 그것을 알기는 어렵다. 국가를 운영하는 관료들이 그 상황을 사전에 알려주고 대책을 솔직하게 발표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온전히 그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낼 수밖에 없다. 

IMF 사태 이후,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국내 매체들에서 하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각종 웹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의 매체에 직접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더 현재를 의심하고 질문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우리가 비판적 사고, 사회학적 사고, 집단지성과 같은 의식 전환을 통해 국가를 견제함으로써 지난날의 국가적 실패를 다시 겪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최악을 막아낼 수 있는 건 국가 시스템의 맨바닥인 국민들이다.

이 영화의 무게추를 가진 배우는 김혜수다. 그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최선의 길을 가고자 노력했던 국가 시스템의 한 축을 상징한다. 그의 눈빛에 진정성이 보이고,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영화 내내 잡고있는 그 균형추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견고하게 이어진다. 이 영화는 다른 누구보다 김혜수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가부도의날 김혜수 IMF 경제위기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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