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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곡창 지대를 살펴보면, 제천, 충주, 청주, 대전, 논산 그리고 호남평야까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참 어이없고 한가한 질문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원래 호기심의 생물 아닌가. 최재희의 <이야기 한국 지리>가 그 질문에 대답한다.
 
<이야기 한국 지리> 표지
 <이야기 한국 지리> 표지
ⓒ 살림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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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70%라서 경제 여건이 기본적으로 열악하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어 왔다. 부존자원이 없으니 모두 열심히 일해서 애국해야 한다는 전체주의 논리에 한국 지리가 동원된 것이다. 

어쨌든, 사실이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평야 지대는 대부분 분지 형태다. 평탄한 지형을 산이 둘러싼 모양이란 말이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식 분지'다. 즉, 우리나라의 평야는 지질이 물에 의해 침식되어 평탄하게 깎인 결과다.

침식 분지는 두 가지의 다른 지질이 존재할 때 나타난다. 물에 의해 깎이는 정도가 다르니 많이 깎여나간 부분은 분지가 되고, 덜 침식된 부분은 산 모양으로 분지를 둘러싼다. 우리나라의 지질은 대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화강암은 단단하지만, 물에 의한 침식에는 취약한 편이다. 

편마암은 변성암의 일종인데, 다시 말하면 퇴적암이 열에 의해 구워진 것이다. 편마암은 퇴적암의 특징인 층적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가, 변성 과정에서 입자가 촘촘히 배열되어 물이 침투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편마암과 화강암이 함께 존재하는 지형에서는 차별적 침식이 일어나서 침식 분지가 형성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질은 편마암 기반 지형에 화강암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침입한 구조다. 마그마가 그 방향으로 들어왔다는 말인데, 우리나라 지반의 지질 구조선이 그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연 지리와 인문 지리의 두 파트로 나뉜다. 자연 지리의 첫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을 도운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이다. 이것은 복잡한 산지 지형이 후빙기에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면서 발생한 것이다. 복잡한 산지가 물에 잠기면서 복잡한 해안가로 변신했다. 미지의 적을 맞서 싸우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익숙한 지형을 아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아래에서는 이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한국 지리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봄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도안'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장소와 관련한 풍수지리 이야기다.

황사는 언제나 이웃이었다

매년 봄마다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황사.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언제나 이웃처럼 존재했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토우, 즉 흙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현대과학은 황사가 언제쯤 한반도에 도착하는지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하지만, 옛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흙비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기괴한 자연현상을 임금의 덕 없음에 대해 하늘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그래서 조선 왕은 흙비가 내리면 예정되어 있던 행사를 취소하거나, 임금의 수라상에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자 했다.

황사는 고비 사막을 비롯한 대륙의 건조 지대에서 일어나 동으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다. 일본은 물론, 때로는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가는 위력을 보이는 황사는 편서풍과 제트기류를 타고 먼 거리를 여행한다. 봄에 유난히 황사가 발생하기 쉬운 이유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기 때문이라고 한다. 땅속에 얼음 형태로 존재하던 물이 증발하면, 건조해진 토양 입자들 사이에 공백이 생기면서 바람에 날리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황사에는 순기능도 있다고 한다. 연세대 이동수 교수에 따르면, 황사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석회 성분이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주고, 황사에 포함된 마그네슘과 칼륨이 해양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황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과거부터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황사의 발생 기제를 보면, 앞으로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황사의 순기능에 대해서도 연구해 보고, 어떻게 관리하며 지낼 것인지 모두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신도안을 아십니까

<정감록>은 고려 왕조의 몰락부터 조선의 흥망, 그리고 정씨가 왕위에 오르는 미래를 예언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이나 환란이 생길 경우에 안전하게 피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열 곳을 가르쳐 주는데, 이른바 '십승지지'다. 이 열 곳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땅의 기운이 사람을 보호하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계룡산이다.

계룡산은 신라 시대부터 오악의 하나로 꼽히는 명산이기도 했지만, 한국 지리에 지리멸렬한 나도 알다시피 수많은 무속인들이 모여들어 터를 잡고 있는 곳이다. 신기가 남다르다는 이유다.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 사찰만도 2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단한 계룡산의 중심에 바로 신도안(新都案)이 있다.

신도안은 계룡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다. 위성사진으로 계룡산을 보면 산 사이에 움푹 파인 분지가 보이는데, 이것이 신도안이라 한다. 풍수의 기본 원리는 장풍득수, 즉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명당이라는 것인데, 서울이 바로 그런 형국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은 득수에 있어 가장 빼어난데, 신도안은 장풍에 있어 으뜸이라고 한다. 과연, 전란을 피해 숨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신도안은 원래 이성계가 새 왕조의 수도로 삼기로 한 곳이었다. 그러나 계획 단계에서 무산되었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째, 금강으로부터 너무 멀어 조운에 적합하지 않았다. 물자 수송을 물길에 주로 맡겨야 하는 옛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둘째, 개국 공신 중 하나였던 하륜이 풍수지리적 이유를 들어 신도안으로의 천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는 중국 송나라 풍수학자의 이론을 거론하면서 신도안이 새 도읍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어쨌든, 신도안은 새 도읍지 후보에서 낙마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계룡산이 내뿜는 신기가 사라지지는 않을 터. 이성계는 <정감록>에 따라 조선을 멸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울 정 씨가 신도안을 배경으로 나타날까 두려워하여, 신도안에 사람이 사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태조 이후 구한말까지 신도안은 풍수명당의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버려지게 된다.

그런 땅에, 1915년 정토사를 시작으로 각종 신흥 종교가 이 땅으로 유입된다. 한국 전쟁과 같은 전란을 틈타 생긴 신흥 종교는 1975년, 100여 개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유신 정권을 확립한 박정희는 종교의 자유도 억압하기 시작했고, 1975년 '종교 정화 사업'을 실시하여 계룡산에 정착한 수많은 종교인들을 몰아냈다. 최후의 일격은 전두환이 날렸다. 12.12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그는 비밀리에 '6.20 계획'이라는 것을 실시, 민간인들마저 그곳에서 쫓아냈다.

종교와 사람이 떠난 신도안에는 계룡대가 들어섰다. 원래는 행정수도 이전까지 생각했던 신군부지만, 여론의 반대를 감안하여 그냥 삼군 본부 이전에서 그친 것이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이곳은 아직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신비한 땅으로 남아 있다.

이야기 한국지리 - 지루한 지리가 재밌어지는 사탐 필독서

최재희 지음, 살림Friends(2016)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이야기 한국 지리>, #침식분지, #황사, #신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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