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영화 둘'을 통해 한 가지 주제나 사건을 이야기하며 함께 보면 좋을 두 영화를 다루고자 한다. - 기자 말

세계에게 가장 유명한 의적 캐릭터 로빈 후드가 최근 <후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스크린에 걸렸다. 

북미에선 이미 지난 21일에 개봉한 이 작품은 평단의 처참한 혹평 속에 개봉 첫 주 9백만 달러를 조금 넘기는데 그치며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다. 순제작비만 1억 달러를 들인 상황에서 사실상 북미에서의 흥행은 참패인 상황이다.

비록 흥행 성적이 아직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반가운 일이다. 이를 기념해 첫 번째 '이야기 하나, 영화 둘'은 로빈 후드의 이야기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두 편을 다뤄보고자 한다. 
 
 <후드> 스틸샷

<후드> 스틸샷 ⓒ (주)누리픽쳐스

  
로빈 후드는 잉글랜드의 민담으로 전해내려오던 가공의 인물로 12~13세기를 배경으로 활동한 의적이다.

뛰어난 활 솜씨와 기민한 움직임으로 폭정에 대항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로빈 후드는 수백 년간 여러 이야기에서 재가공 되며 명궁이자 매력적인 의적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런 로빈후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세기 후반 윌리엄 랭그랜드의 장편시 '농부 피어스의 환상'(Piers Plowman)속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에는 "나는 성직자처럼 완벽하게 주기도문을 외울 수는 없지만, 로빈 후드의 이야기라면 잘 안다"라는 글귀가 있다. 그 시에 적힌 로빈 후드가 실존 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런데 1440년 월터 바우어가 작성한 글에서 로빈후드에 대한 좀 더 사실적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는 "1266년 로빈 후드라는 살인자가 리틀 존 및 여러 무리들과 함께 활보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시정잡배들의 희극과 비극 같은 연극이나 발라드, 민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로빈후드의 이야기가 언제쯤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기록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자리 잡고 있었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글로 쓰인 것 중 가장 오래된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로빈 후드와 수도승'이란 작품이다. 1450년에 쓰여진 이 짧은 원고는 현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는데, 수많은 로빈 후드 이야기의 원형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로빈 후드와 지방 집정관의 대결을 줄거리로 삼고 있으며, 리틀 존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16세기에 다듬어졌다. 평민이었던 신분이 귀족으로 바뀌고, 사자왕 리처드 1세를 따라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것과 그의 연인이 메리언이란 설정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로빈 후드가 실존 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는 아직까지도 불분명하다. 설사 가공의 인물일지라도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구전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델이 된 인물은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160년에서 1247년경에 활동한 헌팅턴의 체스터 백작이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로빈 후드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민중의 편에 서서 악한 권력자들에게 통쾌한 반란을 선보이는 모습 자체로도 시대를 막론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시원한 대리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최근까지 숱하게 미디어를 통해 재가공 되었는데, 1912년 무성영화 <로빈 후드>를 시작으로 올해 개봉한 <후드>까지 수 차례 영화화 되었다. 그 중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두 작품은 1991년작 <의적 로빈후드(Robin Hood: Prince Of Thieves)>와 2010년작 <로빈 후드(Robin Hood)>이다.

1991년과 2010년, 의적 로빈 후드를 다룬 두 영화
  
 1991년작 <의적 로빈후드>

1991년작 <의적 로빈후드>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1991년에 개봉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의적 로빈후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로빈 후드가 주민들을 탄압하는 못된 영주에 맞서 싸우고 사랑하는 연인 마리안을 얻는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익숙한 이야기가 안길 수 있는 진부함은 액션과 로맨스 그리고 유머들로 상쇄시키고 있다. 물론 액션씬에서는 세월의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영화에 나름의 재치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나름 새로운 재료를 섞어 주제의식의 다면화를 꾀한다. 로빈 후드가 지닌 저항의식과 권선징악이란 오래된 메시지에 '다문화에 대한 존중'이란 또 다른 주제 의식을 더하고 있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아짐'은 로빈 후드의 도움으로 예수살렘 감옥을 함께 탈출한 무어인(이슬람교도)이다. 그는 로빈 후드에게 생명의 은혜를 갚을 때까지 로빈을 따를 것을 맹세하고 잉글랜드까지 함께한다. 도착한 잉글랜드에서 야만인으로 불리며 괄시 받지만 꿋꿋히 로빈 후드 곁에서 저항운동을 지지하는 한편, 유산 위기에 처한 리틀 존 아내를 도와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렇게 감독은 아짐을 로빈의 보조자 역할이 아니라 '다름이 선악의 기준이 아님'을 상징하는 메시지적 인물로 활용한다.  
 
이 영화의 주제곡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브라이언 아담스가 부른 영화의 O.S.T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는 7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제1회 MTV영화제에서 최고 음악상을 수상했었다.

<의적 로빈후드>는 개봉 당시 북미 1억 6549만 달러를 포함, 전 세계 3억 9천만 달러에 달하는 극장 수익을 기록하며 1991년 <터미네이터2>에 이어 흥행 2위에 랭크 되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개봉한 로빈후드 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이며,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서도 최고 흥행작에 올라있다. 

하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거슬릴 정도로 미국식 발음으로 일관한 케빈 코스트너는 그해 '골든라즈베리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러셀 크로우의 만남, 자꾸 <글래디에이터>가 떠오르는데...
 
 리들리스콧 감독의 <로빈후드>

리들리스콧 감독의 <로빈후드>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고 그의 페르소나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은 2010년 개봉작 <로빈 후드>는 이전 작품들과 매우 상이한 작품이다. 액션영화라기보단 역사전쟁물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리퀄의 성격을 지닌 이 작품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로빈 후드를 의적이 아닌 프랑스로부터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놨다. 역사전쟁물이 되어버린 이 영화는 로빈 후드를 1199년 제3차 십자군 원정의 끝무렵으로 몰아 넣고 시작한다. 십자군 원정에 궁수로 참전했던 평민 로빈 롱스트라이드는 죽은 귀족 로버트 록슬리 행세를 하며 어렵사리 잉글랜드에 복귀한다.

로빈은 로버트의 검을 그의 아버지 월터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팅엄으로 향하는데, 월터의 제안으로 그곳에 머물며 로버트 행세를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자유를 위한 대헌장을 만들었다가 왕에게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리차드 1세가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던 중 프랑스 살루성 전투에서 사망하고 동생 존왕이 즉위한다. 잉글랜드 역사상 최악의 왕으로 손꼽히는 존왕은 즉위 초부터 가혹한 세금 착취로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마저 그에게 돌아서게 만든다. 급기야 참다 못한 귀족들이 군대를 모아 존왕의 목을 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여기에 잉글랜드 정벌을 노리던 프랑스의 왕 필립 2세의 공세까지 이어지면서 존왕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이에 로빈은 존 왕에게 모든 백성이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는 대헌장에 서명할 것을 제안한다. 존 왕의 약속을 얻어낸 로빈은 프랑스 군대에 맞서 대활약을 펼치며 잉글랜드의 영웅이 된다. 영화는 로빈 후드를 전쟁 영웅을 넘어 존 왕으로 하여금 근대 민주주의의에 단초가 되었다고 평가 받는 '대헌장'까지 발표하게 만든 역사적인 인물로 승격시켰다. 그렇게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기어이 로빈 후드 이야기에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거대한 전쟁영화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로빈 후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는 신선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진부함과 지루함을 동반하고 있다. 묘하게 자꾸 오버랩되는 <글래디에이터> 이미지들과 여기에 느슨하고 장황한 줄거리는 그 방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리들리 스콧 사단의 경험이 묻어나 있는 공성전과 영국 해안에서의 전투신은 블록버스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영화에는 리차드 1세를 비롯해 그의 동생 존왕, 프랑스의 왕 필립 2세, 엘레오노르왕비, 이사벨라 그리고 기사 윌리엄 마샬까지 역사적인 인물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다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작품이 아니다.

우선 존이 왕이 되기 전부터 이사벨라와 연인 관계인 것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만난 것은 존이 왕위에 오른 뒤였다. 이사벨라는 사실을 프랑스 한 귀족의 약혼녀였으나 존 왕이 납치하여 1200년에 왕비로 삼은 것이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왕 필립 2세로 하여금 잉글랜드를 상대로 무력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영화에선 이사벨라 역에 20대 중반의 레아 세이두 연기했지만 당시 역사 속 이사벨라는 12~14세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프랑스의 왕 필립2세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전투를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영국 본토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내에 영국령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헌장도 실제로는 한참 뒤인 1215년에 등장하여 선포된 것이다. 윌리엄 마샬 또한 영화 속에선 대헌장에 동조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그것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민중의 자유 의지'와 '부조리 향한 저항'

순제작비만 2억 달러가 투입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 후드>는 개봉 당시 흥행에서 참패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으며, 전 세계 3억2천만 달러의 극장 수익을 거두면서 손익분기점에 한참 모자란 성적을 남기고 말았다. 

로빈 후드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지만 둘 사이에도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두 영화 모두 민중의 자유의지와 부조리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식을 영화의 주된 메시지도 삼고 있다. <의적 로빈후드>에서 로빈과 아짐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주에게 대항하게 만드는 단어가 바로 '자유인'이다. <로빈 후드>가 다루는 대헌장도 자유의지와 저항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번째는 둘 다 십자군 원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의적 로빈후드>에선 로빈의 아버지가 로빈이 십자군 원정을 떠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공허한 자만심이며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십자군 원정을 비판한다. 

<로빈후드>의 도입부에서도 사자왕 리차드가 로빈에게 십자군 원정이 어땠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로빈은 2700명의 포로를 참수했던 아크레 학살을 거론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지적하고 십자군 원정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두 작품 모두 140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개봉했었는데, 극장판보다 10분 이상 늘어난 확장판이 따로 출시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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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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