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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겐 고개 숙여 사과하고,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겐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이중적 태도에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86)는 울분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2015년 7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닦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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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 있는 양금덕(90) 할머니는 오는 29일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몸이 성치 않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광주에서 300km나 떨어진 서울을 찾아 꼭 대법원 판결을 듣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아래 근로정신대)' 피해자다. 1944년 5월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근로정신대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점에서 성노예로 끌려 간 일본군 위안부와 다르다.)

1994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이른바 '관부재판(일본정부를 상대로 1992년 최초 시작)'에 참여한 양 할머니는 1999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시작했다.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지만, 양 할머니는 2012년 국내 법원에 또 소를 제기했다. 1, 2심에서 승소한 양 할머니는 오는 29일 있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994년 최초 법정 투쟁을 벌인 지 24년 만이다.

이 재판의 원고는 양 할머니를 비롯해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90)·이동련(89)·박해옥(89) 할머니와 유족인 김중곤 할아버지(95, 고 김순례 할머니 오빠) 등 총 5명이다. 이 중 그나마 가장 건강했던 양 할머니마저 최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상임대표는 2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전에 어렵게 양 할머니를 면회했다"며 "할머니는 '이 순간을 보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면서 병상을 박차고 나오시려는 의지를 보이셨다"라고 전했다.

다만 이 대표는 "병원에서 결핵 여부를 검사 중인데 결핵이 아니란 결과가 나와야 대법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언론, 일본 정부 입장 기계적으로 반영해선 안 돼"
 
한 마음으로 가리키는 추도비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10일 오전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김성주, 이동연, 양금덕 할머니가 추도비에 적힌 도난카이 지진 조선인 피해자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 한 마음으로 가리키는 추도비 2015년 10월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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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29일 내려질 판결은 근로정신대 관련 최초의 대법 판결"이라며 "근로정신대의 아픔은 물론 여성인권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에서 진행 중인 강제징용 관련 재판 15건 중 미쓰비시가 피고인 재판이 절반에 달한다"라며 "이번 판결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첫 판결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재판 결과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앞서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재판의 대법원 승소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승소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13년 소송' 이겼지만... '슬픔의 눈물'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강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원고들의 건강 상태가 하루하루 나빠져가는 상황에서, 해당 재판이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 간 이른바 '재판거래'의 희생양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의지할 데 없는 억울한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리는 곳이 법원 아닌가"라며 "법원이 피해자들의 아픔과 눈물을 제물 삼아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상황을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연로한 할머님들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대부분 병원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야말로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야말로 지연된 정의다"라며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갠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환호하는 이금주 광주유족회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 모습.
 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환호하는 이금주 광주유족회 회장과 양금덕 할머니 모습.
ⓒ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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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같은 날 대법원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할아버지들의 재상고심 판결도 내린다.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끌려간 고 박창환 할아버지 등은 1995년 일본 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이와 별개로 할아버지들은 2000년 한국 법원에서도 소송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바 있다. 할아버지들은 1, 2심 재판부의 기각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후 다시 진행된 재판에서 승소했다. 그리고 오는 29일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최초 소송을 시작한 할아버지 5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 대표는 "특히 (박근혜 정부-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와중에 마지막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며 "사죄나 명예회복도 살아계실 때 이뤄져야 빛을 발하는 건데 너무도 비극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언론에 당부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될 것이란 기사는 일본 정부나 기업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대사 소환, 한일 경제 관계 악화 등은 일본 정부의 엄포일 뿐"이라며 "(일본 정부나 기업이)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으려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법원 판결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악화된다는 식으로 보도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투자가 얼마나 위축되는지 모르겠지만, 행여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인권과 권리보다 앞설 수 없다"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한일 간의 우호를 이야기하는 건 모순이다, 언론도 조심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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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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