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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에서 발견한 어느 건물입니다. 검은 벽돌로 차분히 마감된 7층 높이의 건물인데 유독 5층만 패턴이 다른 게 보입니다. 창문이 유난히 작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폭이 좁고 긴 창을 슬릿 윈도우(slit window) 라고 하는데 왜 5층에만 이런 창이 있는 걸까요?
 
5층에 작은 창이 나 있다
▲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 작은 창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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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 불리던 곳으로, 정식 명칭은 경찰청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습니다. 본래는 치안유지의 일환으로 간첩을 잡는 구실을 하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학생 시위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을 잡아 취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이곳 말고도 대공분실이 여러 곳 있었지만 대개 허름한 건물을 빌려 일반 사무실처럼 위장하였지만 이곳은 전용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7층짜리 건물이다
▲ 경찰청 인권센터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7층짜리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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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이고 있습니다. 앞쪽에 주출입구가 있지만 시위를 하다가 연행되어온 피의자가 사용하는 출입문은 별도로 뒤쪽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동선이 겹치지 않게 별도의 출입구를 마련했다
▲ 뒤쪽에 마련된 후문 동선이 겹치지 않게 별도의 출입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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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서는 이용자에 따라 동선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종합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러 오는 환자의 동선과 입원 중 사망하여 장례식장으로 가는 망자의 동선이 결코 서로 겹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 병원에 오는데, 병원에 오자마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다면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혹은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에서는 배우의 동선과 관객을 동선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대 위의 배우가 아우라와 신비감을 풍길 테니까요. 이곳 역시 일반 동선과 피의자의 동선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후문의 벽돌들이 몇 개 부스러져 있는 것이, 격렬한 저항의 흔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매우 가파르게 마련되어 있다
▲ 5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선형 계단 매우 가파르게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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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선형 계단입니다. 상당히 좁고 가파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습니다만, 계단을 이런 식으로 설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높이와 발판을 충분히 넓게 설계하고 아울러 중간에 한번 쉬어가도록 계단참을 만듭니다. 그래야 혹시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을 때라도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모든 계단은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모든 계단의 개수는 동일하게 설계하기 때문에 한번만 다녀보면 눈을 감고도 올라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계단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1층부터 5층까지 계단참이 전혀 없으니 공간감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몇 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인지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다
▲ 5층에 마련된 취조실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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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에 도착하니 작은 방들이 늘어선 것이 마치 고시원을 연상시킵니다. 바로 취조실입니다. 개실의 내부 모습입니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음벽이 마련되어 있고 개실마다 세면대와 변기가 있습니다. 요즘 원룸들은 개실마다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1970~80년대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럼에도 개실마다 변기와 세면기가 마련되어 있는 방,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모든 것을 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간이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지만 본래는 없었습니다. 24시간 감시되는 카메라를 통해 모든 것이 보였을 것입니다.
 
각 개실에는 변기와 세면대가 마련되어 있다
▲ 개실 내부 각 개실에는 변기와 세면대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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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30cm 의 슬릿 윈도우가 있던 방, 그곳은 취조실이었습니다. 각 방마다 2개의 슬릿 윈도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학교 교실이든 집의 침실이든 모든 방에는 창이 있으며, 그 창은 되도록 크고 넓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아파트의 베란다는 전부 통유리로 시공합니다.

그런데 전혀 창이 없는 방을 "먹방"이라고 합니다. 요즘 먹방이라고 하면 먹는 방송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먹방"은 건축에서 오래 전부터 쓰던 말로, 창이 없어서 빛이 전혀 들지 않아 먹물처럼 까만 방이라는 뜻입니다. 대형건물을 설계하다 보면 가끔 어쩔 수 없이 먹방이 나오곤 하는데 이게 가장 큰 설계상의 실수입니다.

처음 설계사무소에 갔던 때가 학생 때 인턴실습이었습니다. 출근한 첫날에 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건물의 창문을 모두 새까맣게 칠하는 거였습니다. 그것은 어느 경찰청의 설계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한 설계안이었습니다. 모든 방에는 먹방이 없어야 한다는 설계상의 대원칙에 따라 취조실에도 창을 마련했지만, 그러나 "취조실에는 창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습니다. 이미 완성된 도면을 고치기에는 너무 늦었고 궁여지책으로 사인펜으로 창을 지우는 일이 인턴실습생에게 맡겨졌던 것입니다. 그나마 이곳에는 폭 30cm의 슬릿일 망정 창이 나 있습니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바로 그 책상이 보인다
▲ 박종철의 방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바로 그 책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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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박종철의 방"입니다. 방에는 침대 하나, 작은 책상 하나가 있고 변기와 세면대 그리고 작은 욕조가 있습니다. 사람이 실제 목욕을 하기에는 작은 크기입니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알 거 같습니다.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욕조 밖에 없습니다. 욕조에서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침대에서 사망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저 작은 책상이 눈에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침대 발치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보입니다.
 
침대 발치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보인다
▲ 박종철의 방 침대 발치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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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에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체 7층 건물 중 1층, 4층, 5층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이 중 4층에는 박종철 기념관이 있습니다.
  
4층에는 박종철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 박종철 기념관 4층에는 박종철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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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사진과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기타가 보인다
▲ 박종철 기념관 어릴 때 사진과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기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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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서윤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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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건축학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 입사. 2001년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작가 데뷔 2003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12권의 저서 출간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마이뉴스를 시작합니다. 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2015) /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2009) / 꿈의 집 현실의 집(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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