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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가면 '커피 드세요? 이런 거 안 먹죠?' 하는 말을 듣는다. 채식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당연히 채식주의자일 것이며 음식을 가려 먹고 오직 건강만 생각하며 식당도 카페도 거의 안 가는 선입견이 있다.

8년째 채식 요리 수업을 하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질문은 "선생님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생채식만 먹나요?"이다. 나는 열을 가하지 않고 채소, 과일을 생으로 먹는다. 그렇지만 피자, 햄버거, 김밥, 케이크 등의 일반 음식과 비슷한 모양과 식감을 자랑하는 레시피를 알려주기 때문에 내가 먹는 끼니가 모두 이런 식일 거라 생각한다.
 
남들보다 항상 건강한 음식만 먹고 이렇게 관리를 하는데 왜 또 아픈 걸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항상 건강한 음식만 먹고 이렇게 관리를 하는데 왜 또 아픈 걸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 손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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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남모르게 동공이 흔들렸다. 잠시 양심을 외출시키고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쓴다. "YES"라고 말해주길 기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본인도 채식주의자이며 이 세상에 믿고 먹을 거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NO"라고 외쳐주길 바라는 부류도 꽤 많다. 내가 먹는 것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하면 그들은 평생 이렇게 먹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굉장한 안도를 느낀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해 '0, X'를 해주는 것이 굉장한 강의 스킬이라도 되는양 나는 채식주의자들에게는 환심을, 비채식인들에게는 안도를 주었다.

사실 나는 2살 때부터 통닭 한 마리를 먹는 괴력의 영유아로 성장해 20대 중반까지 고기가 없는 밥상은 상상할 수 없는 육식주의자였다. 채소는 육식을 이쁘게 보이게 하는 장식 정도로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습관의 누적 때문인지 20대 중반부터 특수 치료가 필요한 원인불명 아토피성 피부병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얼굴 전체에 피가 흘러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어 우울증을 겪으면서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고 했던가? 우울증 치료를 위해 잠시 미국에 머물던 중 로푸드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로푸드라는 요리는 지독한 무기력증과 대인기피증을 앓던 나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거의 1년 동안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않고 채식을 그것도 로푸드만 생각하고 연구하고 먹으면서 은둔 생활을 했다. 피부병이 나았고 살이 빠졌다. 불면증과 우울증도 많이 사라졌는지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생채식만 먹으니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일반식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늘 '어떻게 저렇게 불에 가한 요리만! 먹지? 그러면 영양소도 다 손실되는데... 요리가 죄다 양념 맛이군... 재료 그대로의 맛을 즐기지 못하고 쓰레기 같은 음식들을 맛있다고 줄을 써서 먹을까?.. 참 미개하군.' 이런 생각으로 혀를 찼다. 나는 그 당시 나처럼 먹지 않는 사람과는 그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었고 관계 맺는 사람들을 그 사람이 먹는 것과 연결 지어 평가했다.

그런데 채식으로 인해 회복된 건강은 채식 때문에 다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찬 음식만 먹어서 항상 몸이 냉했고 으슬으슬했다. 성호르몬이 생기기 않아 1년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고 늘 약간 몽롱하고 붕 뜬 기분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무슨 일 있냐? 왜 이렇게 힘이 없냐? 기운이 없어 보인다. 잘 먹고 다니고 있냐'라는 말을 수시로 들었고, 어느 날엔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다 쓰러져 크게 다칠 뻔한 일도 있었다.

남들보다 항상 건강한 음식만 먹고 이렇게 관리를 하는데 왜 또 아픈 걸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육식만 먹던 시절과 채식을 하는 동안 언제나 머릿속에는 먹을 것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점은 똑같다.

욕망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같은 마음 작용이다. 음식에 대한 강박적인 마음, 집착, 예찬, 거부, 무시, 편견 등은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선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은 음식의 종류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과 방법을 바꾸었다.

우선 내 몸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내가 뭐가 먹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언가를 먹고 나서 내 몸 상태가 어떤지를 세심하게 체크했다. 마음을 이렇게 바꿔 먹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뭐가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냥 일단 주어진 대로 먹었다. 고기도 먹었고 과자도 다시 먹고 또 그만큼 과일 채소도 많이 먹었다.

한 번씩 고기를 먹으니 든든해져서 자꾸 간식 거리를 찾아다니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그 좋아했던 새우깡을 먹어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했다. 과일, 채소 역시 끼니로 먹기보단 부식으로 먹으니 오히려 몸이 따뜻해지고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다양한 음식들을 접하고 폭넓은 조리법을 배우고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가능한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 일단 남이 해준 음식은 무조건 감사하게 먹는다.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노동인가 하는 것을 8년간 부엌에서 밥벌이로 돈벌이 하며 살아본 사람으로서 잘 아니까. 

최대한 피하는 음식은 유제품과 튀긴 음식이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음식은 우유가 들어간 음식과 야채든 고기든 기름에 고열을 가해 튀긴 음식이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바로 올라온다. 그렇다고 유제품과 튀긴 음식이 건강의 공공의 적이란 것이 아니다.

건강한 유제품과 가열 요리도 얼마든지 많고 이를 먹어도 전혀 탈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만, 채소도 먹으면 위하수 증상으로 배가 아픈 사람이 있듯이 각자의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숙적 음식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본인에게 가장 건강한 식단의 포인트를 정성들여 찾아보라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위하수 : 위가 무력해서 근육이 아래로 쳐지는 증상, 음식의 소화흡수가 어려움.


태그:#채식, #채식주의자의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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