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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가 생각나는 때이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찻잔을 들고 창밖 세상을 내다보노라면 살아가는 일, 이를테면 사랑과 미움, 희망과 좌절 그리고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삶의 무게까지도 시나브로 차 한 잔에 녹아드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찻잔을 비우고 나면 어느새 영혼의 키가 쬐끔 자란 것같은 느낌이다. 그러기에 차 한 잔은 차 이상이다.
 
차박물관 입구. 시골길가 작고 소박한 나무대문이 정겹다.
 차박물관 입구. 시골길가 작고 소박한 나무대문이 정겹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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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 있는 매암차문화박물관에 갔다. 지난 봄에 들른 뒤로 네 번째이다. 처음 찾아가던 길. 동정호를 지나 작은 시골 마을길로 접어들어 조금 가니 차 박물관을 알리는 정겨운 나무 대문이 보였다.

길 한쪽에 차를 세우고 대문 안에 들어서며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시골길 작은 대문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비밀의 정원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는 넓은 차밭과 그너머로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 그리고 키작은 집들과 푸근한 산이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차밭.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차밭.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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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곳곳에는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차밭 곳곳에는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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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주인이 없어도 익숙하게 한쪽에 있는 매암다방에 가서 무인함에 돈을 넣은 뒤 물을 끓이고 준비해둔 차잎을 다기에 넣는다. 그리고는 끓인 물을 부어들고 차밭 한가운데에 있는 쉼터에 나와 앉는다.

모든 나무들이 잎을 떠나보낸 지금, 차나무의 잎은 여전히 초록초록하다. 적당히 우러난 따뜻한 차맛을 음미하며 차밭을 바라보니 모처럼 여유롭고 편하다. 매암차박물관에서 맛볼 수 있는 차는 잭살차이다. '작설(雀舌)'의 하동방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잭살차는 하동에서 생산되는 전통발효홍차이다. 
 
매암다방. 다기와 차가 준비되어 있다. 방문한 사람이 직접 차를 우려마시고 정리정돈해 놓는다.
 매암다방. 다기와 차가 준비되어 있다. 방문한 사람이 직접 차를 우려마시고 정리정돈해 놓는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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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발효시키면 성질이 따뜻해져서 몸과 마음을 데워준다고 하는데 하동사람들은 예로부터 잭살차를 비상상비약을 대신하여 마시기도 하였다. '작설'은 참새의 혓바닥 크기만할 때 따서 만든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차나무에서 어린 새싹을 따서 만들기에 쓴맛은 약하고 구수하고 은은한 풍미가 일품이다.

녹차가 젊은 날의 싱그러운 맛이라면 잭살차는 고난과 역경을 겪은 뒤 알게 되는 인생의 참맛이라고나 할까. 커피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도 잘 맞는 매력적인 맛이다. 여유 한움큼과 풍미 가득한 차 한 잔을 즐기러 또 오리라.
 
고 정서운 할머니의 살아온 날들을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위태위태하게 또는 고통스럽게 건너는 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애달프다.
 고 정서운 할머니의 살아온 날들을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위태위태하게 또는 고통스럽게 건너는 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애달프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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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해 놓았다. 차를 발효시키는 모습.
 차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해 놓았다. 차를 발효시키는 모습.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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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한 자락 떨구고 돌아나오는 길에 바로 곁에 있는 하덕마을을 찾았다. 악양면에 있는 하덕마을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작고 소박한 마을로, 슬로시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골목갤러리가 마련되어 있다. '차 꽃 피던 날'을 주제로 그린 벽화가 소박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하덕마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정서운 할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골목길 초입에 그려진 이승현 작가의 '만남'은 열네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정서운 할머니께 헌정된 작품으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하덕마을 골목길.  차꽃과 찻잔이 그려져 있다.
 하덕마을 골목길. 차꽃과 찻잔이 그려져 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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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대봉감이 유명하다. 하덕마을에도 감나무가 많다 마을입구에 있는 감나무에 까치밥이 달려있다. 시골 어르신들의 넉넉함에 내마음도 푸근해진다.
 하동은 대봉감이 유명하다. 하덕마을에도 감나무가 많다 마을입구에 있는 감나무에 까치밥이 달려있다. 시골 어르신들의 넉넉함에 내마음도 푸근해진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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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서면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릴까 하는 설렘으로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따뜻해진다. 마을 입구에 있는 음식점 타박네에서 국물이 자작한 맛있는 라면을 사먹어도 된다.

평사리공원을 지나 최참판댁 가는 길로 꺽어들어 동정호를 지나면 하덕마을이 나오고 하덕마을에서 조금만 더 가면 매암차문화박물관이 있다.

매암차문화박물관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293
하덕마을 골목갤러리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태그:#하동잭살차, #매암차박물관, #하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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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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