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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던 한 아이가 읍내에 있는 큰 학교로 전학 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이유 없이 엄마를 욕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 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그 친구를 때려 경찰을 출동케 한 적도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조용히 불러 이유를 물었고 당시 아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엄마를 욕했어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인 게 욕먹을 일은 아니잖아요!" 

이 말을 듣던 선생님은 아이에게 '잘했어!'라고 했다. 물론 '폭력은 허용될 수 없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이기도 하다. 김치를 좋아하고 커피믹스를 즐겨 마신다. 생김새와 입맛은 국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편견에서 시작된 잘못된 시선이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귀하게 태어나 동네 어르신들께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꼬마는 올해 열여덟 살이 되었다. 생일도 지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으니 의젓한 성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뚝뚝하지만 예의 바른 학생이다. 엄마 욕을 했던 친구들을 용서할 만큼 마음도 훌쩍 컸다. 

아이의 이름은 박호준. 호준이는 '승무원'이라는 꿈을 꾸며 강원도교육청 학생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승무원이라는 꿈은 머나먼 나라까지 시집와 고생하는 엄마를 고국으로 보내드리고 싶어 갖게 된 꿈이다.
 
라오스에서 만난 나세초등학교 친구들
▲ 호준이와 라오스 친구들 라오스에서 만난 나세초등학교 친구들
ⓒ 강원도교육청학생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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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은 최근 도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세계시민성 함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라오스 봉사를 기획했다. 호준이와 친구들은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7박 9일 동안 라오스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2일 기준 딱 엿새째다.

이번 라오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생기자단, 학교협동조합, 체인지메이커 등 분야에서 활동하며,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봉사활동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만큼 심사를 진행해 16명의 학생을 최종 선발했다. 학생 기자단 활동이 짧았던 호준이가 선발될 수 있었던 건 '다문화 가정'이라는 가정환경과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준이는 선발 당시 "다문화 가정이라는 편견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모두 똑같다'라는 마음을 나눠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라오스의 무앙깨우오돔 지역의 작은 학교인 나세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체육, 과학, 미술, 음악의 교육 봉사와 유치원 교실 바닥 타일 깔기, 페인트칠하기, 놀이터 만들기 등 시설 봉사를 진행했다. 또한 음식 만들어 나눠 먹기, 가족사진 찍어주기, 벼룩시장 등의 다양한 친교 활동을 펼쳤다. 사전에 열린 두 번의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의 개인적 특성을 살려 직접 기획하고 구성한 프로그램들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축구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박호준 학생기자
▲ 호준이의 축구실력 아이들 앞에서 축구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박호준 학생기자
ⓒ 강원도교육청학생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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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이는 특기인 축구와 영어를 담당했다. 지역에서도 알아줄 만큼 축구를 잘하는 호준이는 라오스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운동은 뛰어난 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축구를 잘했지만, 축구선수가 되는 건 포기했다. 후회는 없다. 나는 지금처럼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축구를 이렇게 라오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리더십도 두드러졌다. 학생 대표로 선생님들과 소통, 공감하는 역할을 해냈다. 영어 구사 능력도 탁월해 현지 선생님과 함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생활기록부에 그저 한 줄이라도 채우기 위해 떠난 봉사가 아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서 자원한 봉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자신을 비롯한 한국에 사는 다문화가족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아닌,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걸 알리고 싶어 참여했다. 호준이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해냈다. 

"라오스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비록 제 형편도 나을 건 없지만, 저보다 힘든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봉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실천할 수 있는지 배워 제 마음속에 라오스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담아보고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 박호준 학생기자
▲ 호준이와 라오스 친구들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 박호준 학생기자
ⓒ 강원도교육청학생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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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준이가 써낸 자기소개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수시로 연락하며 라오스의 봉사활동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호준이는 현재 라오스에서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자기소개서에 써낸 그대로, 마음을 다해 라오스 아이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 

한편 호준이는 이번 라오스 봉사활동 참여 학생 대표로 12월 3일 열리는 강원도교육청 직원 월례회에서 도 교육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봉사 소감을 발표할 예정이다.

태그:#강원도교육청, #라오스봉사활동, #학생기자단, #박호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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