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흔히 라이더들은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다 생각하지만, 고된 일을 하려면 밥 하나는 제대로 챙겨먹어야 한다. 계란후라이를 좋아했던 남도씨를 위해 1인당 두개씩의 계란후라이가 나왔다.
 흔히 라이더들은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다 생각하지만, 고된 일을 하려면 밥 하나는 제대로 챙겨먹어야 한다. 계란후라이를 좋아했던 남도씨를 위해 1인당 두개씩의 계란후라이가 나왔다.
ⓒ 라이더유니온

관련사진보기

 
오토바이가 늘어서 있는 작은 배달대행 사무실 앞에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가 한 명 서 있다. 오후 3시까지 정신없이 점심 배달하고 이제 막 담배 한 모금, 배고플 시간이다. 익숙한 듯 사무실 바로 옆 식당에 '아지매, 김치찌개 두 개만 끓이 주이소. 돈 좀 더 얹어줄테니 계란 후라이 두 개씩~' 넉살 좋은 주문이었다. 돈이 더 얹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밥이 나오는 동안에도 라이더들은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요즘 '퀵은 어떠냐?' '옆동네 배달대행사는 어떠냐?' '배달 가방은 얼마냐?' 끊임없이 물었다. 짜증이 날법도 한데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친절히 답했다. 함께 일하는 라이더들은 단체카톡방에서 열심히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 배달대행사는 처음이었다.

남도(가명)씨는 대형 배달대행사의 직영점을 운영하는 지사장이다. 직영 편의점의 점장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기본급 150만 원에 콜 1개당 100원을 인센티브로 받아간다. 주 6일 12시간씩 일해서 받아가는 돈은 월 300만 원. 일반 배달노동자보다 적게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 함께 일하는 게 좋아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의 인생을 들어봤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임대료에 울고 웃었던 사장님

"자신감이 넘쳤어요. '성공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열정이 넘치던 때였죠."

약 15년 전, 30대 초반에 장사를 시작했다. 수제비 가게였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됐다. 신혼이었는데 장사도 잘되니 웃을 일이 많았다. 열정은 임대료 앞에서 차갑게 식었다. 월세가 320만 원. 2000년대 초반 지방 중소도시의 임대료였으니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바로 옆 동네에 신시가지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버렸다. 그렇다고 임대료가 내려가지는 않았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결국 큰 돈을 까먹고 가게를 정리했다. 수중에 남은 돈은 6천만 원, 그마저도 대부분 대출금이었다. 먹고는 살아야 했다. 그래서 치킨집을 차렸다. 그런데 여기는 프랜차이즈 유통망이 문제였다.

"닭값만 3500원인데 소비자한테 갈 때는 1만 2천 원이에요. 유통마진이 너무 쎘어요."

프랜차이즈가 얼마나 가져가든 월세가 사정을 봐줄 리 없다. 건물주에 뜯기고, 프랜차이즈 본사에 뜯기는 전형적인 한국 자영업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반전은 있었다. 그게 하필 오토바이였다. 평소 오토바이를 즐겼던 그는 오토바이를 여러 대 가지고 있었다. 사람 좋아하고 오지랖 넓어서 경쟁사 치킨 사장님이 오토바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빌려줘 버렸다. 

오토바이의 기적

남도씨는 직접 배달을 다녔는데, 어느날 오토바이를 빌려준 치킨집 사장님과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났다. 라이더들은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는 순간, 약 30초에서 1분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차량의 정지선은 일종의 휴게소다.

"그때 이 형님(경쟁사 사장)이 갑자기 전업을 하게 됐다고 자기가 하던 자리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물었어요. 월세가 10만 원이었습니다. 기회였죠."

평소 베풀며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긴 고생 끝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임대료가 떨어지니 장사할 맛이 났다. 마침 이맘때쯤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했고, 남도씨는 선이 굵은 투박한 외형과는 달리 얼리어답터였다. 모토로라 스마트폰을 사서 포스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정보를 지메일로 동기화시켰다. 작은 동네 치킨집에서 빅데이터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부터는 카톡이 뜨기 시작하면서 카톡으로 주문을 받았다.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와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과 홍보를 한 덕분에 오프라인 책자광고비도 줄일 수 있었다. 배달의 민족 등 배달앱 시장에도 가장 먼저 뛰어들어 월 2만 5천 원에서 3만 원을 주고 계약을 맺어 이용하기 시작했다. 동네치킨집 사장님은 배달앱 가맹점주로 바뀌어 있었다.

배달앱과 계약을 해서 스마트폰으로 주문은 뜨는데 정작 배달할 기사가 없었다. 배달대행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엉망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동네 배달대행사에 취직해 라이더로 일하기 시작했다. 배달대행산업이 정착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치킨집은 주로 저녁 장사와 새벽 야식 장사였다. 낮에는 여유가 있어 배달기사로 일하는 게 가능했다. 가맹점주이면서 배달대행기사를 동시에 하는 '사장-노동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배달대행사 차리다, 관리자 되다

배달대행사는 음식점과 계약을 맺는 게 핵심적인 일이었다. 새로운 가게와 계약을 하면 배달대행 사장이 영업 해온 직원에게 이익금을 줬다. 그런데 배달대행 사장이 돈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영업을 너무 잘해오니 나가는 인센티브가 아까웠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대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사들 사이에 불만이 쌓였다. 여기에 환멸을 느낀 기사들이 의기투합해 창업을 하기로 했다. 장사경험도 많고 기계를 잘 다뤘던 남도씨가 주동자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기존 배달대행사에 찍혔다. 창업했으면 다 같이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루는 동료들이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자 술판을 걷어차고 나와버렸다. 그렇게 사업을 접었다. 두 번째 좌절이었다.

동네 배달대행사에 찍혔기 때문에 치킨집 사장님은 더 이상 배달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혼자서 모든 배달을 소화할 수도 없어 가게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결국 추가적인 수입을 위해 오전 퀵을 시작했다. 고된 삶이었다. 퀵은 기사들로부터 수수료를 23% 떼가고 있었다. 그 사이 배달대행 시장이 크면서 퀵에서 배달대행으로 완전히 전업을 결심한다. 이게 2016년의 일이었다.

배달대행일을 하면서 소위 '더러운 꼴'을 너무 많이 봤다. 특수고용형태의 라이더들이 산재가입을 하려면 금액의 50%를 사장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산재가입을 시키면서 모든 금액을 라이더에게 전가시키는 사장들을 목격했다. 일정 정도의 일감(콜수)을 보장하려면 라이더들을 적당히 받아야 하는데, 누가 배달을 하든 한 개의 콜당 수수료만 받아가면 된다 생각한 사장들이 너무 많은 라이더를 받아놓고 관리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배달대행사 본사 직영점 관리자로 일하면서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라이더들 콜을 관리해주는 이유다. 조건은 하나였다. 근퇴만 지켜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라이더들의 숫자와 콜 관리, 업무 관리를 해주는 것이다.

사장님은 똥꼴을 직접 뺐다. 라이더들은 자발적으로 화장실 가는 시간, 휴식, 식사시간을 단톡방에 올려서 돌아가면서 쉬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함께하는 라이더가 늘어나서 팀장직급을 만들어 자기 월급 중 50만 원을 떼어서 팀장에게 준다.

보험사 갑질은 막고 배달대행 창업장벽은 높여야

그가 생각하는 배달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오토바이 보험료다.

"자손, 자차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배달대행용 유상운송보험은 300~500만 원이잖아요. 그러니깐 안드는 거고 못드는 거죠."

올해 34세인 나의 오토바이 책임보험료는 1년에 약 16만 원. 1년 무사고라 대인 대물에 자기신체까지 보장된다. 반면 내가 유상운송보험을 들려면 1년에 약 300만 원을 내야한다. 자기신체는 안되고 대인대물만 된다. 나이가 어린 20대의 경우에는 500에서 600만 원까지 올라간다. 유상운송보험을 의무적으로 드는 오토바이 리스비가 월 50만 원 정도 나오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위험해서 구할 보험료를 벌기 위해, 더 위험한 질주를 더 젊은 청년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라이더들 처우에 대한 마인드가 없고 자본력도 없는 준비 안 된 사람들이 배달대행시장을 망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골목식당 백종원씨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운 배달시장의 장벽으로 자본금만을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남도씨가 이야기하는 배달시장의 장벽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라이더들에 대한 안전과 복지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 라이더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배달대행 사장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1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사람을 통해 도움을 얻기도 상처를 입기도 한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평범한 사람. 사장이었다가 노동자였다가 다시 관리자이자 노동자인 사람. 그들이 바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가깝지만 먼 라이더들,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걱정 안 하냐고 물었다.

"부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안전장비에 돈 아끼지 말라고."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개인이 책임질 것이냐, 우리 공동체가 함께 책임질것이냐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라이더 방한용품마련을 위한 프로젝트 모금함 카카오 같이가치 스토리를 수정보완 했습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8059/news


태그:#라이더유니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