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저니스 엔드> 포스터

영화 <저니스 엔드>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자신이 죽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6일을 지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부분의 시간을 공포에 떨며 지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은 그럭저럭 무덤덤하게 잘 지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다른 것에 집중하며 공포를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세계 대전이라는 큰 전쟁은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게 했다. 수많은 청년들이 전방에 배치되었고 수백, 수천만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영화 <저니스 엔드>는 적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1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최전선에서 6일 동안 그곳을 지켰던 한 부대 장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부대가 6일 동안 전선을 지키고 다시 다른 부대와 교대하게 된다. 교대 중에 투입되는 부대의 병사들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고 철수하는 부대의 병사들은 홀가분한 얼굴로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간다.

영화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중대장 스탠호프(샘 크래플린)와 부중대장 오스본(폴 베타니)을 중심으로 새롭게 투입된 소대장 롤리(에이사 버터필드)의 표정을 보여주며 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나사가 빠진 듯 비정상으로 보이는 군 간부들

영화 속 간부들은 모두 뭔가 나사가 빠진 듯하고 술이나 음식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다독이고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은 부중대장 오스본인데 그는 부대를 지탱하게 해주는 심리치료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스본은 위스키에 중독되어 늘 술을 달고 생활하며, 또 다른 간부 트로터(스티븐 그레햄)는 음식에 집착해 먹는 것에 욕심을 내고 외부 근무 시 남은 음식을 주머니에 넣어 간다. 영화 속 다른 간부인 히버트(톰 스터리지)는 통증이 심한 듯 앓아누워 힘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이 부대 간부들은 뭔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전장의 한가운데, 게다가 곧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 공포심에 미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영화 속 간부들은 모두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특히 부대를 이끌고 있는 중대장 스탠호프는 공포심 때문에 환상을 보거나 나쁜 꿈을 꾸는데, 그럴 때마다 위스키를 마시며 똑바로 서 있으려 노력한다. 그는 부대원들이 바라보고 있는 중대장으로서 그들을 격려하고 지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정작 막사로 들어오면 평정심을 잃고 화를 내고 다른 간부들에게 큰 소리를 낸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수천의 부대 중 하필 자신의 부대가 죽음의 장소로 왔다는 것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자신의 상관을 거칠게 욕한다. 그런 그 앞에 전쟁 전 만나던 여자 친구의 남동생인 롤리가 나타난 순간,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그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눈빛 속에는 전장에 대한 공포심과 자신의 과거 모습을 아는 그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 간간히 섞여있다.

공포심을 억누르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

중대장 이외의 나머지 간부들은 공포심이 없었을까. 부중대장 오스본은 연신 담배를 피워댄다.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죽음의 작전 직전에 그의 미간은 연신 흔들린다. 간부 트로터는 음식에 집착해 연신 식사 메뉴를 체크하고 먹어대지만 전선 앞에서는 먹는 것도 잊고 심각한 얼굴로 작전 수행을 점검한다.

가장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아 보이는 간부 히버트는 연신 덜덜 떨며 본부로 회송되길 원하지만 중대장의 설득에 그의 옆을 지킨다. 그도 결국 서로를 지키기 위해 전선으로 나간다. 취사 담당으로 나오는 메이슨(토비 존스)은 음식을 통해 간부를 비롯한 병사들을 위로한다. 메이슨은 간부들의 표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에게 상황에 맞는 음식을 준비함으로써 그들이 최소한의 평정심을 찾도록 애쓴다.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죽음이 예고된 기습작전에 투입되는 오스본과 롤리의 발을 카메라로 비추며 그들의 뒤를 쫓아간다.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주변의 병사들이 말하는 소리를 함께 들려준다. '행운을 빕니다', '곧 다시 만나요' 병사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담는 이 장면은 마치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관을 들고 행진하는 것 같이 보인다. 공포심 속에 죽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간부든 병사든 자신의 관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부중대장 오스본은 '삼촌'으로 불린다. 그만큼 그는 부대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가장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용기를 얻고 중대장은 평정심을 찾는다. 오스본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신 괜찮다고 말하고 고민을 들어준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부대 내 의지 할 수 있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가 위기에 빠진 순간 영화는 병사들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공포에 질린 표정 통해 전달하는 전쟁의 참혹함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실감 나는 전투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아주 긴박하게 벌어지는 기습작전에서도 화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 병사들의 외침과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대략적으로 상황이 파악될 뿐이다.

오히려 전달되지 않는 정보로 인해 관객들도 같이 전장의 혼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새롭게 전장에 투입되는 롤리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과 같다. 전장에 투입되어 그들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이해 못하다가 결국 그들과 같이 공포에 짓눌린다. 그런 그를 보며 관객은 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영화 <저니스 엔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전장의 전투라기보다는 전장에 참여한 간부들의 표정인 것 같다. 그들도 전쟁이 나기 전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일반 시민이었다. 그들이 군대에서 한 부대를 이끄는 직책을 맡았을 때, 그 책임감은 어깨를 짓누른다. 거기에 죽음이 가까운 최전선에 가야 할 때, 그들도 공포심을 느끼며 흔들린다.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병사뿐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모든 간부들도 그 상황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섬세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프랑스의 최전선 대피호에서 독일군과 연합군은 수십 년 동안 그 전선을 뺏고 다시 탈환하는 전투를 벌였다. 그 속에서 수백만의 병사가 죽음을 맞았다. 실제로 그 전선에 파견되고 죽음 속에 들어가야 했던 그들의 감정 변화와 심경이 이 영화 내내 고스란히 묘사된다. 그들은 분명히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며 그곳에 들어갔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공포를 통제했다. 그들이 공포의 질린 얼굴이 화면에 등장할 때, 관객들은 전쟁의 공포를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전쟁으로 죽음을 맞았다. 지금도 수많은 병사들이 사지로 파견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현실에서는 다시 보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길 빈다. 영화는 28일 개봉 예정.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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