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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 오전 전남 무안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당사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광주전남연맹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장 앞에 '쌀 목표가격 1㎏ 3천원 쟁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난 11월 14일 오전 전남 무안군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당사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광주전남연맹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는 농성장 앞에 "쌀 목표가격 1㎏ 3천원 쟁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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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폭등과 쌀값 정상화? 이건 보기에 따라 다르다. 2018년 쌀값은 2016년에 비해 30% 올랐다. 2018년 가격은 2017년보다 20% 올랐다. 그리고 평년보다 18% 올랐다. 관점이 다르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상대적이다.

2016년 가격은 최근 30년간 가격 중 최저치고 현재의 가격은 최근 30년간 가격 중 최고치다. 최고 가격과 최저 가격은 농민이 보기에는 이른바 '박스권 안'에 있다. 2016년 가격은 밥 한공기 100g에 161원이었고 2018년 가격은 밥 한공기에 241원이다.

우리 국민은 연간 쌀값으로 14만8900원을 지출한다. 밥 한 공기에 300원이 안 된다. '박스권 안'을 기준으로 보면 결과는 항상 같다. 지난 30년간 밥 한 공기 300원도 안 되는 쌀값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농민은 주장한다. 농민의 절대적 빈곤은 절대적으로 싼 쌀값에 기인한다. 농민의 입으로 말하기에 부끄럽지만 '껌값보다 못한 쌀값'은 진실이며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먹는 쌀밥, 걱정은 농민몫

국민들에게 쌀값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10kg짜리 쌀을 사면 한 달은 족히 먹었다. 마트값 기준 4만5000원은 막내 한 달 휴대전화 요금보다 싸다. 쌀값 걱정은 오로지 농민몫이었다.

그런데 올해 상황이 바뀌었다. 10월 15일 '쌀값이 폭등했다'는 기사가 뜨더니 갑자기 쌀이 물가인상의 주범이 됐고, 몸값이 기름값 반열에 올랐다. 도시가구 대비 농가소득이 97%에서 63%가 될 때가지, 농가인구가 600만 명에서 250만 명이 될 때가지, 연간 농산물 판매액이 1000만 원이 안 되는 농가가 전체 농가의 50%가 넘을 때도 농업과 농민은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밥쌀 수입 반대한다'고 외치다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기억해도, 2016년 300평 쌀농사를 지으면 고작 손에 쥔 소득이 18만 원이었다는 사실을, 3만 평 농사를 짓는 전국의 대농 0.5%가 1800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온 국민의 관심과 언론의 집중보도가 오히려 고맙다.

지난 13년간 쌀 목표가격은 10.6% 올랐다. 소비자 물가는 약 26% 올랐다. 목표가격은 '적어도 이 정도는 쌀값이 형성돼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점'이다. 지난 13년간 변동직불금이 네 번 지급되지 않았다. 고정직불금이 없이 자력으로 목표가격을 달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5년에 한 번 이슈가 되는 '쌀 목표가격'

최저임금 인상폭은 매년 사회적 이슈가 된다. 그러나 쌀 목표가격은 5년에 한 번씩 바뀐다. WTO가 그렇게 정해놨다. 한 번 결정되면 만회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5년 농사, 파종시기 놓치면 죽도 밥도 없다', 이런 구호가 대회 명칭에 나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80kg 기준 19만6000원을 쌀 목표가격으로 제시했다. 정부여당의 방침이 발표되자 농민단체를 비롯해 각 정당은 비판을 쏟아냈다.

농민들은 과거의 물가인상률이 쌀 목표가격의 기준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쌀 목표가격은 향후 5년간 미래의 쌀값이기 때문이다. 농민은 쌀 목표가격 기준이 '과거 물가인상률 대비 상대적으로 몇 % 올라야 한다가 아니라 최소한의 생산비와 다음 해 파종 등 농업경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쌀값이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밥 한 공기 300원 쟁취'는 그렇게 농민대회 구호가 됐다.

'대농이 많이 가져단다, 쌀에만 편중된 지원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것이 현행 직불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7ha 이상 또는 10ha 이상 면적 경작자를 대농으로 보고 0.5ha 이하 경작자를 중소농이라 분류한다.

1995년 이후 WTO가 출범하고 정부는 농업구조조정을 외쳤다. 핵심은 친환경 농업과 농지규모화였다. 6ha 이상 7만 호 육성은 그렇게 만들어진 농정의 과제였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7ha 이상 10ha 미만 경작 농가의 월 평균 농업 소득은 334만 원이다. 7ha 이상 경작 면적이면 트랙터부터 콤바인까지 기계를 다 갖춰도 두 명 이상이 달라붙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규모다. 1인당 연봉이 2000만 원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남자는 산일을 다니고 여자는 보험일을 한다. 전국의 2% 안에 드는 농지를 경작하고도 대학생 자녀 하나를 농사를 지어 뒷바라지 못한다.

또한 정부는 쌀에만 전체 직불금의 80%가 지원되니 타작물 재배 농가와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고 말한다. 논농사가 무너지니 논에 고추를 심고, 배추를 심고, 양파를 심어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 이것을 농촌 현장에서는 '떼죽음'이라고 말한다.

밭농업 직불금을 논농업 직불금 수준으로 인상해야 된다는 농민들의 요구, 밭작물에도 최소한의 가격보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농민들의 요구를 무시한 역사는 과거로 덮었다. 이제 와서 쌀만을 귀한 자식 취급했다면서 이를 바로잡자는 정부의 말에 '그렇게 애지중지 보호한 쌀농업이, 쌀농가가 그럼 현재 살 수 있다고 보나'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간사인 박완주 의원이 지난 11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기 쌀 목표 가격과 직불제 개편 방향'을 안건으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농식품부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간사인 박완주 의원이 지난 11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기 쌀 목표 가격과 직불제 개편 방향"을 안건으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농식품부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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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 없는 직불제 개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2005년 정부 수매제가 폐지됐다. 수매제는 국가비상식량 확보와 시장격리를 통한 가격안정, 전체 쌀 시장의 기준가격 제시 등의 순기능을 담당했다. '전량수매, 쌀값 보장'은 그래서 가을이 되면 농민대회에 나오는 단골 구호였다. 

수매제를 폐지하고 정부가 도입한 제도는 공공비축미 매입제와 쌀 변동직불제였다. 정부는 공공비축미를 산지가격으로 샀다. 수매제의 기준가격 기능은 사라졌다. 시장격리는 가뭄에 콩 나듯이 실시했고 이것도 산지가격이었다. 쌀값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변동 직불금은 소득 하락분의 일부만, 그것도 논 고정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차감하고 지급됐다. 

올해 그나마 쌀값이 유지되는 것은 변동직불금이 지급되지 않은 선에서 쌀값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농민은 정부의 올바른 양곡정책으로 변동직불금이 지급되지 않는 선에서 쌀값이 유지되길 간절히 원한다.

변동직불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쌀값이 안정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쌀값 대책 없는 변동직불제 폐지는 농정 후퇴다. 불행하지만 농민은 이렇게 주장한다. 왜냐면 쌀값에서 손을 떼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너무나 뻔하며, 현재까지 쌀값 안정대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쌀값에 농민들이 신음해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

농민에게는 적정가격을 보장하고 국민에게는 안정된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하는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을 농민들은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2019년 예산에 정부수매비축 예산과 채소가격안정제 예산을 삭감했다.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 없는 직불제 개편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농산물값 안정 대책과 직불제 개편 논의는 적어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들의 참여를 보장한 직불제 개편 TF를 만든다더니 정부안이 거의 가닥을 잡아가는 현 시점까지 만나 논의해보자는 말이 없다. 소통이 없으니 어디가 가려운지, 농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농민들이 다시 아스팔트 위에 선다는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선 다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다음에도 농민은 새벽이슬을 털고 서울행 차에 몸을 싣는다. 바로잡자고 말하기 위해서.

농산물 수입개방 정책, 저농산물 가격 정책, 농지투기와 낮은 식량자급률, 기형적인 분단 농업구조는 이미 구조화돼 흔들림이 없다.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공약도, 그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쌀값도 30년째 변함없다.

'세상이 변했다'는 말, 농민은 그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지난 10월 17일 오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한 논에서 가을 추수가 한창인 모습.
 지난 10월 17일 오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의 한 논에서 가을 추수가 한창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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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광석씨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쌀값, #쌀목표가격, #쌀직불금, #전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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