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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구 수용하기로 사실상 결정한 정부

지난 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체결을 위한 한미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번 협상은 9번째이며 16일까지 예정되어 있다. 한미는 이번 회의에서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9차 협상에서 한미가 합의를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정부가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과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부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올해 3월 1차 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이번 9차 회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요구를 굽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달(10월) 31일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 국방장관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적기 타결이 중요하다"는데 합의하였다. 미국이 자신의 요구를 전혀 철회하거나 수정할 의사가 없는 상태임을 감안하면 한미 국방장관의 이런 합의는 이번 협상(9차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미국에게 해준 것이나 진배없다.

1조 원을 훨씬 넘게 될 방위비분담금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이 끝난 것이 아닌데도 국방부와 외교부는 방위비분담금의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정부안) 속에 방위비분담금으로 9784억 원을 편성해 놓고 있다. 이는 올해보다 1.9%(2017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인상된 것이다.

아직 10차 SMA가 체결되지 않아 예산을 편성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국방부는 방위비분담 예산을 그것도 1.9% 인상된 금액으로 편성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론에 따르면 외교부 당국자는 8차 협상이 끝난 직후 "지난해(2018년) 기준으로 국방부 예산에 반영해 새로운 (SMA)협정 발효까지 그것으로 사용하고 추가되는 비용은 예비비 형식으로 추가해 총액을 맞추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10월 23일).

이 발언대로라면 일단 2018년 방위비분담금 9602억 원에 물가상승분만큼 더한 금액(9784억 원)을 2019년 예산으로 편성해 10차 SMA가 타결·발효될 때까지 이 돈을 사용하고 발효된 뒤에는 편성된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예비비를 가동함으로써 2019년도 방위비분담금의 지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10차 SMA가 적용되는 2019년의 방위비분담 총액은 1조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구체적인 자금 확보 방안을 미국에게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8차 한미 협상이 끝나자마자 또 9차 한미 협상 일정이 잡히기도 전에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기정사실화하고 자금 확보 방식까지 제시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강압에 백기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명분 없는 방위비분담금 증액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는 미국 자신의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행태로써 우리 국민의 부담이나 우리의 주권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횡포 그 자체다. 2017년 12월 말 현재 남아도는 미집행금액만 1조 원 가까이에 이른다. 또 우리 국민이 매해 부담하는 직접 및 간접 주한미군 지원금이 무려 6조3천억 원에 이른다. 이는 미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경비의 6배에 가까운 액수로 그만큼 우리 국민의 부담이 무겁다는 의미다.

더욱이 평택미군기지이전사업이 올해로 마무리단계에 들어가 군사건설비 수요가 내년부터 대폭 준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는 터무니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9차 회의에서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보장해주려는 꼼수

우리 정부가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부담 요구도 사실상 내용적으로 수용하기로 입장을 정하고 이번 회의에 참석한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겉으로는 전략자산 전개비용 부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으나 "세부 내용 중 주한미군 관련 비용이 있다면 기존 군수지원비 항목 내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하여 내용적으로는 수용할 수 있음을 밝혀왔다. 그런데 한미가 지난달 SCM 공동성명에서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주한미군 사령관의 융통성 존중"에 합의했다.

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융통성 존중'이 이른바 방위비분담의 '집행제도 개선'의 명분으로 SMA 부속문서에 포함되면 미국은 이를 근거로 전략자산 전개비용이나 사드 운영유지비,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등이 구체적인 방위비분담 구성항목으로 명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한미군 사령관의 재량(융통성) 차원에서 방위비분담금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된다.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방위비분담) 협정은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대응하고 '사드 부지 개선' 같은 새로운 요구에 자금을 전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제공한다"(2017.4.26)고 미 하원 세출위원회에서 증언한 바가 있는데 이제 '유연성' 곧 융통성이 한미 당국의 합의로써 보장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설사 '주한미군 사령관의 융통성 존중'이 제도개선 명목으로 우리 정부에 의해 수용된다고 하더라도 전략자산 전개비용이든 사드 운영유지비든 주한미군 사령관이 임의로 집행할 수 없다. 미 전략자산전개 비용에 방위비분담금을 쓴다면 이는 주한미군의 운영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는 한미소파 제5조, 지원대상이 주한미군 장비에 한정되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방어의 지리적 범위가 한국영역에 한정되어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게 된다.

또 그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며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한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도 위배된다. 주한미군 사령관의 융통성 존중은 미 전략자산전개 비용 부담의 위법성 및 우리 국민의 반대를  회피해 보려는 꼼수로 한미 당국은 이를 철회해야 한다.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발효하려면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우리 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의 예산을 편성할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정부가 편성한 2019년도 방위비분담 예산 9784억 원(인건비 3780억 원, 군사건설비 4527억 원, 군수지원비 1477억 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정부는 방위비분담금 총액이 9784억 원을 훨씬 넘는 금액으로 타결될 것을 미리 예상하면서 부족한 예산을 예비비로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미국의 일방적 요구가 그대로 수용되어 타결되더라도 국회가 이를 당연히 비준동의할 것으로 여기는 사고다. 한마디로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조약의 비준동의권과 예산심의확정권을 가진 국회로서는 방위비분담 예산 편성에 대해 지금 정부가 보이는 오만한 행태에 대해서 치욕감을 느껴야 정상이다. 국회는 이런 치욕을 씻기 위해서도 내년도 방위비분담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체결되어 국회에 제출되면 먼저 그 통과 여부부터 결정해야 한다.

만약 방위비분담금이 대폭 증액되고 미 전략자산전개 비용도 주한미군 사령관이 임의로 집행할 수 있게 되어있다면 이를 부결시키는 것이 국회의 도리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진행 중인 9차 협상에서 우리 주권과 국익 수호, 국민 부담의 경감, 평등한 한미관계의 정립이라는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런 원칙을 포기하고 미국의 강압에 눌려 미국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방위비분담 대폭 증액과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 부담 요구를 수용한다면 두고두고 국민적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태그:#방위비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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