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영화 공식 스틸컷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건 내 휴대폰이 내 손에 있을 때의 일이고 만약 이게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문자, 메신저, 메일, 사진, 쇼핑 내역 등 나의 모든 걸 알고 있는 휴대폰.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휴대폰을 '인생의 블랙박스'라고 말한다.
 
40년 지기 친구 혹은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본 친구들은 대개 더 끈끈하고 막역하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석호(조진웅), 태수(유해진), 준모(이서진), 영배(윤경호) 남자 4명은 무려 40년 지기 친구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도 비밀이 있을까? 초등학생 때 만난 친구들은 40대가 되어 석호의 집들이 겸 월식 구경을 위해 부부동반 모임을 가졌다. 식사 후 석호-예진(김지수), 태수-수현(염정아), 준모-세경(송하윤) 부부와 혼자 온 영배는 게임을 시작한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중에 '친구들끼리 서로 비밀이 없다'는 말이 나오자 예진이 제안을 한 것이다. "나는 비밀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은 이내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하지만 게임은 이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7명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휴대폰을 식탁에 올려놨다. 저녁 식사 시간동안 오는 모든 문자, 전화, 이메일 등을 공유하기로 했고, 전화는 스피커폰으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통화했다.
 
첫 번째 전화기가 울리고 다음 전화가기 울리고 상황은 점점 재미있어졌다. 아니 살벌해진 건가.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밀 중에는 나의 아내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약한 비밀'도 있었고 알려지면 인간관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는 '센 비밀'도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와 배우자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들이어서 밝히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게임을 하는 7명 중 단 한 명도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비밀이 밝혀졌을 때의 타격만 조금 차이가 날 뿐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뒷담화 했다는 사실을 들키거나 아내와 이혼 위기까지 가거나. 이렇듯 영화는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걸 강조한다. 영화 엔딩 부분에서는 사람을 '공적인 나 ' '사적인 나' '비밀의 나'로 나타내기도 했다.
 
영화는 이를 통해서 '내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을 넌지시 던진다. 나의 아내가 시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친구가 새로 산 내 집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남편과 연락하는 다른 여자는 있는지 등 엄청난 사실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비밀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
 
극 중 인물들이 숨기려는 비밀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알려지면 관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석호는 서먹해진 부부 사이를 풀기 위해 6개월 째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정신과 의사인 아내만 모르고 있었다. 어느 누가 부부 문제 관련된 상담을 자신의 아내에게 받고 싶을까.
 
영배의 비밀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밀이 밝혀지자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이서진은 "지금까지 알고 지냈고 군대 내무반에서 바로 옆에 자기까지 했는데 말했어야 했지 않았냐"고 소리쳤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사람에게 비밀이 필요하다는 걸 납득했다.
 
후반부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영배는 "오늘 이 자리에 내 애인을 데려오지 않은 이유가 그거였다"면서 "너희들은 분명히 잘 해준다고 했겠지만 그 눈빛으로 상처 줬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통해 영화 내용이 정리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윤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꽁꽁 숨기는 거라면 숨길 이유는 분명하다고. 타인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거나 스스로 상처 받고 싶지 않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거나.
 
이렇듯 영화 초반에는 성적 농담이나 배우자의 바람 등 마치 사랑과 전쟁처럼 내용이 흘러갔지만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달수록 오래 곱씹어볼 내용들이 나온다.
 
영화를 끌고 가는 일등공신
 
 태수(유해진)가 아내인 수현(염정아)의 통화를 듣고 있다

태수(유해진)가 아내인 수현(염정아)의 통화를 듣고 있다 ⓒ 영화 공식 스틸컷

 
이런 영화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배우들의 역할이 상당했다. 러닝타임 동안 배경은 오로지 식탁이다. 그나마 인물들이 멀리 이동하면 화장실, 베란다, 부엌 정도? 7명의 배우들은 모두 주연으로, '비밀'을 감추고 있는 하나의 사연들을 맡고 있다. 하나의 역할이지만 '공적인 나 ' '사적인 나' '비밀의 나' 등 마치 3개의 사람을 연기하는 듯 한 눈빛도 압권이다. 특히 인물들의 미묘한 시선을 카메라 위치와 초점을 이용해 은근하게 관객들로 하여금 더 비밀스러운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또한 단조로울 수 있는 집 안이지만 베란다, 화장실, 안방 등을 이용해 인물들의 솔직한 감정을 더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작품의 영상은 상당히 세련됐는데, 7명이 둘러앉아 대화하는 장면에서 단순히 화면만 말하는 사람에 맞춰 바꾸는 게 아니라 카메라 워크를 통해 각 인물들의 심리를 나타냈다. 비밀이 들킬까 노심초사 하는 인물을 비출 때는 카메라를 자주 움직였으며 불안해서 자꾸만 움직이는 손가락을 확대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집 밖에 있는 요소도 하나 있다. 바로 '월식'이다. 4명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강원도 속초에서 월식을 봤다. 이를 어른이 돼서 석호의 집으로 다시 보러 왔고, 월식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식사와 더불어 비밀스러운 이 게임을 진행했다. 태양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면서 이들의 본심도 같이 드러났다.
 
먹먹했던 장면 하나
 
영화는 '비밀'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하지만 때때로 감동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딸에 대한 아빠의 본심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석호와 예진의 딸은 입대를 앞둔 남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엄마 몰래 아빠에게 이야기 한다. 물론 7명의 어른들은 이때도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었다. 사실 이 딸은 석호와 예진이 20살 때 속도위반으로 얻은 딸이었다. 그래서 더욱 엄마는 딸이 남자친구 만나는 걸 탐탁지 않아 했었다.
 
그런데 "꼭 남자친구랑 있고 싶다"고 말하는 딸을 향해 석호는 "내가 아빠로서 답을 한다면 당장 집으로 들어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내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된다면 그냥 가"라고 조언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영화 공식 스틸컷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비밀이 난무하고 은밀한 눈빛이 오고 가던 와중에 찾아온 따뜻한 말. 영화 내내 '나는 어떤 비밀이 있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런 대사를 들으니 이유 없이 울컥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건대 이 대사는 비밀을 가진 채 식탁에 앉아있던 7명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지금 휴대폰이 울릴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사소한 비밀 혹은 큰 비밀을 멀리 보고 대처하는 말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완벽한 타인도 온전한 내 사람도 없다. 웃으며 시작했으나 집에 돌아와서 진지해지기 시작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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