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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복도에 나와 자습을 하고 있다. 2018.11.13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복도에 나와 자습을 하고 있다.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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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생활 23년 만에 사실상 처음으로, 올해는 수능 감독을 안 하게 되었다.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는 조금 독특(?)한 곳이어서 수능 감독에 차출되지 않았지만, 그 2년 외에는 단 한 번도 수능 감독에서 빠져본 적이 없다. 마치 매년 한 살씩 당연하게 나이를 먹듯이, 수능 감독은 11월에 당연하게 해야 하는 연례행사였다.

얼마 전 3년차 교사가 한 번도 수능 감독을 빼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는 내용과 함께,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기피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가우면서도 몇 가지 보충을 하고 싶어서 기사를 쓰기로 했다.

수능 감독은 사실상 강제이고 의무이다. 자유의사로 신청하게 한다면 하겠다는 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 감독에서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진단서를 제출할 만큼 아픈 교사와 수능 시험을 보는 자녀가 있는 교사이다. 예전에는 1년간 고생했다며 고3 담임교사를 학생 응원 명목으로 제외해 주었지만, 이제는 감독 인원 부족으로 그마저도 없어졌다.

암 의심된다는데...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

올해는 가슴 아픈 사연도 들었다. 어떤 선생님이 암이 의심되어 검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수능 감독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검진 결과가 나오면 그때 빠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수능 전날에는 반드시 감독관 교육이 있고, 어떤 책임도 감수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서명 거부하면 안 해도 되냐고 농담으로 말하면, 교무부장 선생님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신다. 수능 감독은 중고교 교사에게 사실상 강제 사항이다.

모든 교사가 시험실 안에서 감독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복도 감독, 본부 요원, 서무 요원도 있다. 복도 감독은 학생이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오면, 휴대용 금속 탐지기로 학생의 몸을 스캔한 후, 화장실로 데려가서 사용할 칸을 지정해 준다. 그래서 반드시 동성(同性) 교사를 배치한다. 시험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시험 본부에 전달하는 일도 한다. 복도에 있으니 춥기는 하지만 가장 마음이 편한 감독이다.

서무 요원은 수거한 학생들의 휴대폰을 보관하고,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지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다음 교시 시험지를 준비하는 등의 업무를 한다. 서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서 몸은 가장 편하므로, 학교 내에서 경력이 많은 분들이 주로 배치된다. 경력이 늘어나면 조금 편한 임무를 맡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수능 감독 교사는 시험장 안에서 학생들의 시험을 감독한다.

[수능 감독이 싫어요 ①] '앉을 권리'에 공감하는 날
 
13일 오후 항공편을 통해 제주도교육청에 도착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지를 교육청 직원들이 보관장소로 옮기고 있다. 2018.11.13
 13일 오후 항공편을 통해 제주도교육청에 도착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지를 교육청 직원들이 보관장소로 옮기고 있다.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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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왜 수능 감독을 싫어할까? 첫째는 힘들어서다. 필자는 꽤 건강한 편이라 수능 감독을 하고 병이 난 적은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국어 교사를 하는 이종사촌 언니는 수능 감독을 하고 아파서, 받은 돈에 더 보태 병원비를 썼다고 했다. 같이 운동을 하던 어떤 선생님은 젊었을 때 교통사고가 났었는데도 빼지 못하고 수능 감독을 해서 허리가 나빠졌다고 했다.

감독 교사가 하루 종일 서 있는 것은 아니다. 80분, 100분, 70분, 102분을 서 있고, 10분 정도는 걷은 답안지를 제출하고 다음 시험지를 받으러 걸어 다닌다. 한 교시는 꼭 비워주기 때문에 70분이나 102분을 앉아서 쉬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수능 날은 서서 근무하는 날이다.

내가 어릴 때 고종사촌 언니 하나가 백화점에서 일했다. 앉을 수가 없어서 힘들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서서 하는 근무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겨우 하루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든데 그때 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서서 일하는 노동자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교사들도 뼈저리게 느껴보라는 국가의 큰 그림(?)이 아닐까 싶다.

[수능 감독이 싫어요②] 법정엔 나 혼자 간다

수능 감독을 하기 싫은 두 번째 이유는 소송을 당하면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지 나누어 주고, 가만히 서 있다가, 종치면 걷어오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할지 모르겠다.

선생들이 편하려고 소송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난을 할 이들은 대다수의 평범한 수험생 출신이다. 심혈을 기울여 문제를 푸느라 교사가 뭘 하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다. 99.99%의 수험생은 감독관의 지시에 잘 따르고, 오로지 시험에만 집중한다. 0.01%가 교사들이 수능 감독을 기피하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를 만든다.

전에는 고등학교 교실에 원래 걸려 있던 시계를 수능 시험장으로 만든다고 제거하지 않았다. 학생 하나가 시계 좀 걸어달라고 부탁해서, 시험본부에 말해 시계를 가져다 걸어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제거한다. 교실에 걸린 시계가 정확하지 않아 시험을 망쳤다며 민원을 제기한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책상이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든가, 교사의 신발 소리가 시험에 방해된다든가 하는 민원은 인정할 수 있다. 시험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 감독 교육을 받다보면 이런 것까지 들어줘야 하나 싶은 것까지 모두 들어주라고 교육을 한다. 그래도 12년간 열심히 준비하여, 생애 처음 가장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요구 사항이니,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부정행위는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감독 교사가 적발하더라도 학생이 인정하지 않으면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빌미로 학생이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소송을 당하게 되면 책임은 오롯이 감독 교사 개인이 져야 한다.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면 수능 감독이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은 이야기도 있다. 소송을 당해도 교육부가 보호해 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감독하는 내내 노심초사하며, 하루 종일 힘들게 서서 하는 일이기에, 빠질 수만 있다면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수능 감독이다.

그 돈 안 받고, 그냥 수업하고 싶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학교를 나서고 있다. 2018.11.13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학교를 나서고 있다.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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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가 수능 감독을 하면 돈을 받지 않느냐고 말하면 화가 난다. 그 돈 안 받고, 안 하고, 그냥 학교에서 수업하고 싶다.

혹시라도 어떤 교사가, 감당하기 힘든 소송을 당해서, 모든 중등교사가 수능 감독 거부 투쟁이라도 시작하지 않는 한, 수능 감독 강제 차출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달라지거나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교사들의 불만을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 같다. 개선 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수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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