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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심각한 2차 피해를 당한다. <오마이뉴스>는 어렵게 피해자들을 만나 그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수사·재판과정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2차 피해와 이를 막을 대안을 세 편에 걸쳐 다룬다. 이 기사는 마지막회로, 2차 피해를 막을 대안을 모색해봤다.[편집자말]
 
 검찰이 지난 9월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차량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정점' 인물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전직 대법관들의 자택 및 사무실 등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서울 서초구 대법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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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처벌이 피해자 치유의 첫걸음이다."

박은정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김문환 전 주 에티오피아 대사,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목사 등이 저지른 성폭력 사건을 담당했다. 이 전 감독과 김 전 대사는 1심에서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이 목사는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한 가운데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성폭력 2차 피해와 관련해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박 부장검사의 말은 단순히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받고 '왜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현 사법체계. 정의로운 처벌이 가능하려면 그 사법체계를 타파해야 하고, 그래야만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박 부장검사 말의 의미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판단이 사회적 분위기를 다잡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2차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결국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지속돼야 한다"라며 "사법부의 판단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므로 사법부의 인권감수성 증진이 그만큼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은의 변호사도 "사법부를 향한 불신이 높다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수사기관은 물론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며 "최근 2차 피해 상당수가 댓글이나 SNS에서 발생하는데 법원의 전향적 판결은 그곳에서의 자정작용에 도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악플러를 고소하는 것은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지 마음이나 시선을 제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 판단은 마음과 시선에 영향을 주는 이정표와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달 25일 대법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내려졌다.

일부 전향적 판결... 하지만 '최협의설'은 여전히 굳건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중략) 모든 사정을 종합해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후적으로 봐서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친구의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심 재판부는 이른바 '최협의설'에 따라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협의설은 강간죄 등의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형법상 강간죄(형법 297조)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전제돼야 하는데,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해야만이 가해자의 폭행 또는 협박도 인정된다.

하지만 대법원(주심 박정화 대법관)은 최협의설에 기반한 1·2심 판단을 뒤집었다.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강간이 아니라고 판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로 피해자는 치유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을까? 애석하게도 피해자는 1심 판결 후 남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해당 사건은 법원의 판결 자체가 2차 피해가 돼 버린 사례다. 뒤늦게나마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도 이례적인 것일 뿐, 현재도 대부분 재판부는 최협의설에 입각해 성폭력을 판단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성폭력의 70% 이상이 흉악범이 아닌 주변 지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강한 저항'을 성폭력의 판단 근거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이를 문제 삼아 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피해자의 저항이 아닌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강간죄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인데, 이미 미국·영국·독일 등은 이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 미투운동이 활발히 진행된 우리나라에선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란 이름으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이미경 소장은 "일부 인권 감수성이 있는 판사나 검사가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지만 운에 기대는 게 정의는 아니다"라며 "최협의설을 적용하는 사법체계를 빨리 고쳐야 피해자들이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과거 못 묻는 '강간피해자보호법' 필요

최협의설과 함께 2차 피해의 근원으로 작동하는 것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기조다. 특히 수사·재판 과정에서 '과거 성생활이 문란하지 않았냐' 등 사건과 전혀 관계 없는 질문을 받을 경우, 피해자는 심각한 2차 피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래는 피해자들이 경찰, 검찰에서 겪은 일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한 내용 중 일부다.

"경찰이 '27살이나 된, 직장 잘 다니던 여자가 어떻게 강간을 당하냐, 꼬신 거 아니냐'고 조롱했어요. 나도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요."
"검사가 진술서 써오라고 해서 딸이 검찰에 갔더니 '속옷을 입었습니까, 안 입었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 너무 억울해 해요."


최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성폭력전담재판부 판사들의 발언도 이에 못지 않다.

"개인적으로 여성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 2016년 8월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 

이미경 소장은 자신의 논문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2012)를 통해 이를 "'정조에 관한 죄'의 망령"이라고 표현했다. 23년 전까지 대한민국 형법 32장의 명칭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1995년 개정을 통해 명칭이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는데, 이 소장의 표현대로라면 여전히 그 "망령"이 대한민국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의 1심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폭로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가해자 주변인에 의한 2차 피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해자 가족, 지인 등이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할 만한 사람'이란 취지로 무죄를 호소하고, 피해자는 어느새 '꽃뱀'이 돼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특히 '첫 경험이 언제냐', '외국유학을 다녀왔던데 개방적인 편 아니냐', '성관계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하냐' 등 가해자 변호인의 정조를 증명하는 식의 법정 내 질문은 피해자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미국의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은 피해자의 이력 등 사건과 무관한 내용을 수사·재판과정에서 수집·신문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를 강제할 법은 따로 없다. 강제력이 약한 대검예규와 형사소송규칙, 변호사윤리장전 정도에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 그나마 대검예규를 제외하곤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인 신문을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추상적 내용만 적혀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의 성 이력을 증거로 삼지 않고 신문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래 성폭법)' 개정안을 2016년 12월 낸 바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한 번, 그리고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두 번 당한다"며 "과거 성 이력 등을 거론하며 '진짜 피해자인지' 묻는 질문은 피해자들을 성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외국엔 이미 이를 막는 법들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있는 '피해자 국선' 제도, 보수 반토막 낸 법무부

피해자의 정보가 본인도 모르게 가해자 측에 유출되고 이에 따라 가해자 측이 피해자 측을 회유·협박하는 것 또한 심각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현재는 이러한 위험성을 수사기관이 가해자에게 의무로 고지해야 하는 규정이 없는데,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또 현행 성폭법 상 피해자 정보를 누설할 경우 처벌받는 신분은 '공무원'에 한정돼 있다. 일반인은 인쇄물·방송·정보통신망에 공개할 경우에만 처벌받는데, 처벌 범위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신의 주변인에 의한 2차 피해도 피해자를 괴롭히는 현상이다. 최근 서울시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개선하며 직장 내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추가했다. 대표적으로 "2차 피해를 신분상 불이익, 부당한 인사조치, 집단 따돌림, 소문, 폭행 등으로 규정하고, 2차 피해를 가한 이에게 1차 가해자에 준하는 징계 규정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와 그 하급기관에 한정되는 매뉴얼이라 타 공공기관과 사기업에도 이를 준용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호 장치다. 형사 사건의 경우 검사-피고인(가해자)이 다투는 구조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 절차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막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에 한해 국가가 변호사를 제공하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2012년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에 국한됐던 이 제도는 2013년 전체 성폭력 범죄로 확대돼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가 지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열심히 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변호사 별 편차가 심한 편이다"라며 "뿐만 아니라 피해자 변호사가 출석했는지 묻는 재판부도 열에 하나 정도고 발언권도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어 재판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법무부가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의 보수를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는 일까지 발생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이라는 국가 정책에 상응하도록 보수의 실질화를 촉구한다"고 지적했고, 한국여성변호사회도 "피해자 구조라는 사명감으로 일해 온 변호사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일방적인 결정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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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