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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대학입시와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평가혁명'에 착수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경제회생'과 '교육재생'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강한 일본을 만들기로 선언했다. ①대학입학 공통시험(일본 수능)의 일부 문제를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②공교육에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를 도입했다. ③대입 논술 문제를 좀 더 수준 높게 출제하라고 각 대학에 지침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당국이 미래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객관식, 주입식 교육에 머문다면 급변하는 인공지능시대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공정하면서도 타당한 수업 및 평가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한국이 활쏘기 연습만 하는데 일본은 이미 사격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도 일본의 변화를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교육혁명, 그 현장을 찾아서'를 주제로 기획 취재를 시작한다. 일본의 일선 학교들과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 그 현주소를 살펴본다. 그 첫 단계로 '시립 홋카이도 삿포로(札幌) 가이세이(開成) 중등교육학교'를 현장 탐방했다. 이 학교는 삿포로시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IB 논술형 교육과정을 4년째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에서 IB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 공교육이 본보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기자 말


"(초등학교 시절) 시험은 외워서 그대로 옮겨적는 방식이라 암기력 측정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올라가서도 내내 암기, 고등학교 가서도 내내 암기, 대학교 가서도 내내 암기였다. 심지어 수학 과목도 공식을 외워서 푸는 방식의 공부였다. 가장 궁금했던 건 대체 미적분은 어디다 써먹을 수 있냐는 것. 이 궁금증을 풀어준 선생은 아무도 없었다. 응용되는 분야를 알았다면 더 재미있게 수학 공부를 했을 텐데."

언론인 나성률 씨가 2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초등학교 시절 '고전읽기' 경연대회 대표로 선발돼 시 예선에서 입상했더니, 아예 도서관에 가둬놓고 고전만 외우게 하더란다. 그는 "성인이 돼서도 모든 발표는 암기하고 나서 줄줄이 외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면서 "이를테면 '장'자 붙은 사람들 대부분이 발표를 할 때는 메모장에다 코를 박았다"고 지적했다.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4학년 IB 사회 수업 장면.
▲ IB 사회 수업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4학년 IB 사회 수업 장면.
ⓒ 대구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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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외국기업 임원들이 발표를 할 때 손에 아무 메모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광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긴장도 하지 않고 물 흐르듯 질의응답을 하였다. 이것은 암기보다는 토론이나 창의력에 중점을 두는 교육방식 덕이겠거니 생각했다."

나씨의 글을 읽으면서 지난 9월 18일 대구시교육청(교육감 강은희) 관계자들이 일본 삿포로의 카이세이 중등교육학교를 방문하여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수업을 참관한 후기가 떠올랐다.

당시 대구교육청 소속 장학관과 현장교사, 경북대 사범대 교수 등 15명이 3일간 IB 수업을 참관했다. 'IB 교육과정 도입 방안 모색을 위한 일본 삿포로 카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탐방 결과 보고서'도 발표했다.

"표준편차를 주제로 수학 수업을 하는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사가 매일 변하는 주식 시세 그래프를 보고 주식을 사는 문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모둠 토의를 거쳐 한 회사의 주식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표준편차를 이용하고 모둠별 수익을 비교 발표합니다. 사회시간에 배운 '주식' 내용을 바탕으로 수학 공식을 이용해 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는 활동을 하는 겁니다."
 

대구지역 교사들은 이 수업이 현실과 연계된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었다고 평가했다. 수학 수업을 실생활과 연결하여 학생들의 흥미와 집중도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나 씨가 "대체 미적분은 어디다 써먹을 수 있냐"고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해결의 실마리를 IB에서 잡을 수 있었다. 
  
표준편차로 주식을 어떻게 사지?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IB 수학 수업 장면.
▲ IB 수학 수업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IB 수학 수업 장면.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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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교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IB 수학 수업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지난 9월 18일 오전, 일본 삿포로에 있는 카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4학년 교실(고1 과정, MYP 4년차). 3~4명씩 6~7개 조로 배치된 학생들은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문제를 풀어냈다. 문제지에는 평균과 분산을 구하는 공식과 간단한 예제들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하루하루 변하는 주식 시세의 그래프를 보고 주식을 사는 의사결정을 해 봅시다. 평균과 분산을 구하는 공식은…."

교사는 이날 수업 도입부에 평균과 분산을 구하는 공식을 설명한 뒤 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해 보자고 했다. 먼저 간단한 예제를 주어 학생들이 기본적인 공식을 익숙하게 사용하도록 지도했다.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4학년 학생들이 수학 수업 시간에 토론해 가면서 문제를 푸는 장면.
▲ 토론하여 수학 문제 풀기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4학년 학생들이 수학 수업 시간에 토론해 가면서 문제를 푸는 장면.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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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답안지에 손수 문제 풀이를 해나갔다. 풀이가 끝날 즈음, 교사는 칠판 왼쪽의 텔레비전 화면에 유명 회사들의 주식 시세 그래프를 띄웠다. 그 뒤 회사 하나를 골라주고 공학계산기로 분산과 표준편차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음으로 각 모둠끼리 한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토의하게 했다.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의견을 교환했다. 서로 생각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토론을 진행했다.

투자의 근거로 학생들은 각 회사 주식시세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했다. 앞서 배운 공식과 계산기 사용법을 응용해 저마다 열심히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렸다. 스마트탭과 계산기를 사용하는 솜씨가 제법 자연스러웠다.

"자, 이제 각 모둠에서 어떤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는지 발표해 봅시다. 다른 학생들도 발표를 잘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의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IB 교육과정 참관단'.
▲ 대구교육청 IB 교육과정 참관단 대구시교육청의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IB 교육과정 참관단".
ⓒ 대구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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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모둠별 토의를 통해 내린 투자결정을 발표하면서 공유했다. 동료 학생들 간의 질문과 응답과 도움말이 이어졌다.

"우리 조와 달리 이 회사를 선택했는데,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결정한 건가요?"

"단순히 분산과 표준편차 말고도 주식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신규사업이 지지부진할 가능성도 고려했나요?"

각 모둠이 투자자가 되어 한 회사의 주식을 사고, 그 수익을 비교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수업 몰입도는 더욱 커져갔다. 최종적으로 교사는 투자한 회사의 다음날 시세 그래프를 보여주고, 모둠별 수익을 비교해 보면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스스로 찾아냈다면... 오답은 없다

  
대구교육청 소속 교사들과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관계자들이 IB 교육을 주제로 질의 응답하는 장면.
▲ "IB 교육과정 질의 응답" 대구교육청 소속 교사들과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관계자들이 IB 교육을 주제로 질의 응답하는 장면.
ⓒ 대구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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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학생들이 내린 의사결정에 오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투자결정이라는 열린 문제 속에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사고력이 빛을 발휘했다. 특히 "표준편차를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하는 회의감이 생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주식이라는 쉽지 않은 개념을 수학 수업에 접목하며 교과 간 통합학습을 자연스럽게 진행한 것이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토마스 베르쇼 교사의 인터뷰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결'에 가장 중심을 두어 수업을 합니다. 일상생활과 수학을 연결하여 수업해야 재미가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갖게 해 주는 게 IB 수학 교육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기존 입시 수학은 국제화 시대에 알맞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수학을 사회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지 않겠어요?."

토마스 베르쇼 교사는 영국에서 IB의 고등부 과정(IBDP)으로 2년간 공부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수학과 일본어를 전공했으며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3학년 때부터 교환 유학생으로 있었다.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4학년 IB 음악 수업 장면.
▲ IB 음악 수업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4학년 IB 음악 수업 장면.
ⓒ 대구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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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참관한 대구광역시 도원중학교의 김나리 교사는 "이 학교로 탐방을 오기 전에 표준편차를 가르쳤다"면서 "학생들의 창의적인 해결방법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서 한국 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수학이 실생활과 연결되면서 학생들의 흥미와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교과 간 융합수업을 하면서 '주식' 개념을 익히게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정해진 답이 없이 열린 문제인 점도 좋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배지현(고려대 불문과 2학년, 고려대 TV방송국 부원) 씨가 취재를 지원했습니다.


태그:# 바칼로레아, #국제 바칼로레아, #대구교육청, #IB,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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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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