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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아침, 맞춰놓은 알람 시각보다 일찍이 눈이 떠졌다. 아마도 많이 기다렸나 보다.

청주소년원(미평여자학교)에서 생활하는 제자를 보기 위해 나는 아침부터 분주해졌다. 집을 나서기 전 주변을 확인하며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옷차림과 건강한 미소를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부산고속버스터미널은 주말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분노 가득한 눈빛 그리고 한 상자 가득 쌓인 편지
 
 유정이(가명)를 알게된 지는 1년 정도 됐다.
 유정이(가명)를 알게된 지는 1년 정도 됐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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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지난 11월 상담실에서 10호 처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 절차를 알려달라는 유정이(가명)의 분노 가득한 눈빛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경미한 처분에도 반복되는 비행, 보호력이 미약한 부모, 항상 주변을 맴도는 불량교우들... 그리고 여전히 본인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기심까지. 교화가 필요했고 그에 대한 법원의 처분은 불가피했다. 1시간가량 이런저런 대화 끝에 유정이의 두 볼엔 뜨거운 눈물을 흘러내렸다.

사무실 내 책상서랍에는 유정이와 주고 받은 편지들이 한 상자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여자소년원 기관이 청주에 있어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방문이 여의치 않다. 대신에 한달에 한두 번씩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매번 양 손에 쥐어지는 편지가 그토록 반갑고 기다려지는지. 오늘의 만남에 의미를 더하는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유정이(가명)를 만나러가는 길은 흡사 이 길과 같은 분위기였다.
 유정이(가명)를 만나러가는 길은 흡사 이 길과 같은 분위기였다.
ⓒ 장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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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을 달려 청주소년원에 도착했다. 기관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 낙엽이 떨어진 가로수길들이 길게 쭉 펼쳐져 있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단풍과 떨어진 노란 낙엽들이 알록달록 어울어져 가을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접수를 하고 곧 면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앉아있는 학생들 틈 사이로 유정이가 보였다. 올해 6월에 방문한 이후로 두 번째다. 조금 두터운 외투를 입은 탓일까? 아님 살이 붙은 통통한 볼살에 놀란 탓일까?

"선생님... 아... 이렇게 또 오실 줄 몰랐어요... 나 어떡해..."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잊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새 커다란 두 눈 가득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다.

"편지 끝에 곧 얼굴 보자고 적었는데. 제대로 안 읽지?"

머쓱한 마음에 난 준비한 음식들을 탁자위로 꺼내 올리며 몸을 바삐 움직였다. 그러고는 바라보는 시선의 민망함을 덜고자 준비해 온 유부초밥을 유정이 입에 넣어주며 그제서야 우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유정인 이곳으로 와 취득한 자격증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최근에 부산 소재 보건대학 면접을 봤으며 현재 예비번호를 받고 학교 측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제일 칭찬해주고 싶은 해가 올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브이를 그려보였다.

또래 아이들과 똑같은 걱정 하는 유정이
 
 미평여자학교(청수소년원).
 미평여자학교(청수소년원).
ⓒ 법무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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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미용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칭찬해줘요. 근데 정상적으로 학교 안 다녀서 무시당하겠죠?... 선생님 나 대학 합격해도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집에 손 벌리기가 싫어요. 근데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1년도 못다니고 나오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꿈 앞에 해맑던 녀석은 대화 끝엔 항상 걱정을 부제로 달아놓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사서 걱정한다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신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유정아, 한 발짝만 앞으로 나가보자. 그런데 그럴수록 네 스스로가 발목을 붙잡고 있구나.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지 말고 지금 주어진 오늘 하루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또 다른 내일이 펼쳐질 거야. 그렇게 연속성을 가지면 삶이 좋은 방향으로 변할 거야? 그렇게 할 수 있지?"

내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을 짓던 유정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말은 어렵지만... 다 맞는 말 같아요."

유정이는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주어진 면회시간 40분은 금방 지나가버렸다. 주변을 정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녀석이 나의 품에 쏙 안겼다.

"선생님.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더 내 생각 많이 해주세요. 내가 잘할게요."

사랑하는 연인에게나 할 수 있는 수줍고 어려운 부탁을 나에게 한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부산행 버스 안에서 버스 기사님 안내에 따라 안전벨트를 맸다. 차창 밖으로 가을이 내려앉았다. 쏟아지는 햇살에 얼굴을 담아봤다. 참으로 따뜻한 가을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수진씨는 현재 법무부 산하 부산소년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그:#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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