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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4·3. 추모식 행사 당일에 제주4.3평화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여운이 오래 남아 관련 보고서, 소설, 영화 등을 찾아보았고, 이후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무겁고 어두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4.3평화기행이 그런 내 마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궁금해 하며, 10월 18일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공항을 벗어나 한참 달리다 도착한 곳은 파란 하늘 아래 검정 돌담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해변마을 진아영 할머니 삶터. 할머니는 무장대인지 토벌대인지 모를 사람들에 의한 총격으로 턱 전체를 잃었다. 당시 갓 서른을 넘긴 나이였던 그녀는 이후 평생 무명천으로 당신얼굴의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감싸고 지낸 탓에 '무명천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턱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으니 항상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고, 절대 남들 앞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다 같이 할머니 방안 장롱 위 텔레비전 영상을 보던 중, 그녀가 무명천을 벗어 보이는 순간 방안의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48년 전 할머니의 턱을 관통했던 총알이 아직도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무거운 순간이었다.
 
고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찾아온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들.
 고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찾아온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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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해설을 맡았던 가수 최상돈이 진아영할머니 삶터 마당에서, 진아영할머니를 위해서 만들었던 노래 '노란 선인장'을 불렀다
 첫 날 해설을 맡았던 가수 최상돈이 진아영할머니 삶터 마당에서, 진아영할머니를 위해서 만들었던 노래 "노란 선인장"을 불렀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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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을 굽이굽이 넘어 예비검속 학살터까지 걸은 후, 4·3당시 폐허가 되었던 동광리 마을터를 당시 극적으로 생존하신 홍춘호 할머니와 함께 걸었다. '저기에 두 채, 여기에 세 채' 할머니의 정정한 목소리와 힘찬 손짓만 남아있을 뿐 풀잎만이 무성한 그곳이 한 때 마을이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4·3당시 폐허가 되었던 마을 터에 생존자들 중 누구는 돌아와 다른 이들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끔찍한 기억을 안고 다들 이곳을 떠난 탓이라 했다. 할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곳 앞에서 30분 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동굴에 들어갈 때 푸른 제주도를 보고 들어갔다가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야 나올 수 있었던 것, 동굴에서 살아나왔으나 바로 투옥되어 사람들로부터 폭도새끼라 손가락질 받고, 석방되자 또 석방쟁이라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기구한 인생에, 할머니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을 들으며 함께 걸었던 동광리 4·3길
 홍춘호 할머니의 해설을 들으며 함께 걸었던 동광리 4·3길
ⓒ 김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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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리 임문숙 가족 헛묘 앞에서
 동광리 임문숙 가족 헛묘 앞에서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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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의 해설로 4·3평화공원에서 4·3의 배경 및 경과를 꼼꼼히 공부한 후, 동백동산 속 피난민들이 은신하였던 동굴을 마주하였다. 제주도 토양의 특성상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지면 위로 꼬불꼬불 올라와 있는 숲 속에 자연이 만들어 준 은신처가 있었다. 사실 은신처라는 용어는 당시 많은 제주도민들에게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삶의 터로서의 동굴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 최근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틀 간의 4·3평화기행에서 본 제주는 실로 아름다웠다. 슬프고 무거웠지만, 동시에 정말로 아름다웠다. 백가윤 대표는 그것이 바로 제주의 힘이라고 했다. 4·3이 있었지만 그것을 오롯이 겪고도 지금같이 아름다운 섬, 누구나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제주를 만들어 낸 것도 제주사람들이라고. 그러니 4·3을 알고서 제주를 어려워하기 보다는, 4·3을 바로 알고 동시에 제주의 역동적인 면모를 함께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다.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10월 29일), 제주지법에서는 1948년 군사재판을 받고 유죄가 선고되었던 수형인들의 첫 재심 공판이 진행되었다. 당시 인정신문도 진술거부권도 없이 진행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들은 오늘 70년 만에 처음으로 진술거부권을 고지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4·3 이후에도 광주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광화문에서 끊임없이 무력을 행사해온 국가는 지금도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활동가들을 연행하고 있다.  
   
이렇게 4·3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름다운 제주에 감탄해 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그러면 제주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현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제주4·3 70주년 평화기행
 제주4·3 70주년 평화기행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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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지림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입니다. 위 사업은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평화기행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태그:#제주43, #70주년, #평화기행, #김지림,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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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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