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라는 종목 안에는 선수, 코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축구가 제공할 수 있는 꿈이 정말 다양하다는 의미인데, 오늘 전할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선수 시절의 경험을 통해 선수들에게 보다 나은 축구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개척자' 박민호씨에 대한 것이다.

올해로 아르헨티나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그는 유소년 선수 시절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통해, 축구계의 잘못된 점들을 개선하여 선수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목표로 유학을 결심했다. 그 결과 현지 구단의 유소년 코치로 시작해 현재는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달 19일, 안산시 내 한 카페에서 데프로티보 에스파뇰 운영이사 박민호씨와 만나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지난 19일, 안산시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호 이사

지난 19일, 안산시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호 이사 ⓒ 박민호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3부리그에 소속되어있는 데포르티보 에스파뇰의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민호라고 합니다. 특별하게는 유소년부터 성인 2군까지, 모든 연령대의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떤 활동을 하기 위함이었나요?
"2년 만에 한국에 왔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구단을 운영하다보니까 한국에 있는 선수들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주로 경기보다는 훈련장을 위주로 돌아다녔습니다.
 
앞으로 좋은 선수들을 만들려면 지도자들과 잘 소통하면서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을 소개하고자하는 마음에 오게 되었습니다."
  
- 현재 운영하고 계신 구단에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듣고싶습니다.
"데포르티보 에스파뇰은 현재 아르헨티나 3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단입니다. 성인 팀은 물론 성적이 중요하지만, 저는 지난 2017년에 운영이사로 부임해, 성적보다는 우선 선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단 내에 잘못된 점들은 개혁하고자 노력했고, 지금도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그 재능을 잘 살리게끔 해주는 구단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감사하게도 17세부터 성인 2군 팀까지 관리를 했었는데 올해에는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유소년까지도 광범위하게 관리하게 되었습니다(웃음)."
  
- 아르헨티나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아르헨티나에서는 취미반과 전문적인 반의 구분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한 5부리그 구단까지 유소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죠. 그리고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같은 연령대에서도 다양한 리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또, 아르헨티나 유소년 구단들은 늘 연말에 선수들의 잔류 여부를 알려주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긴장을 멈출 수 없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데, 반대로 말해서는 아래에 위치한 선수들에게는 항상 기회가 열려있다는 이야기죠."
 
 데포르티보 에스파뇰 선수단

데포르티보 에스파뇰 선수단 ⓒ 박민호 제공


- 현지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인들에게 인정받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아르헨티나로 갈 때만 하더라도 집안의 반대가 정말 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지도자라는 꿈을 갈망하고 있었고, 부모님께 온전히 제 힘으로 노력해서 아르헨티나에 갈 것이라는 허락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라는 나라가 정말 궁금했고, 가장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확신이 제가 지금까지도 현지에서 잘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는 정말 많은 구단들을 돌아다녔었는데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절망스러웠지만, 다행히도 좋은 코치님을 만나게 되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보조 코치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에 갔을 당시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몸소 보여주는 코칭을 주로 했는데, 현지에서는 그 점을 높게 평가해주면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현지 코치들과의 축구 모임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생소한 한국인인 제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습니다. 축구만 잘하면 어디서든 통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 아르헨티나에서는 유독 풋살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대부분 풋살로 축구를 시작합니다. 그만큼 풋살을 통한 기본기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는 풋살팀이 축구팀보다 많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있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종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유소년 축구가 지향해야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기본기와 경기를 읽을 수 있는 상황 판단력, 이렇게 두 가지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정말 많은 시간적 투자와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유소년 선수시기부터 성적지향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장기적으로 바라봐야할 것을 순간적인 역할에만 집중하다보니 많은 선수들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수 개인이 축구를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훈련보다는 여유를 가지며 말이죠. 또한,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수 뿐 아니라 지도자의 역할 역시 정말 중요합니다."
 
 박민호 이사와 아시아 유소년 선수들

박민호 이사와 아시아 유소년 선수들 ⓒ 박민호

 
- 현지 선수들 뿐 아니라 한국인 선수까지 양성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유소년 코치로 활동하면서, 그곳의 환경이 정말 좋아서 한국 학생들을 데리고와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유학 전문 업체를 통해 해외에 진출했는데. 저는 직접 선수들을 뽑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10년, 좋은 선수들을 찿기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웃음). 하지만 축구유학 분야에서 이미 잘못된 사례도 많았고 너무나도 쉽지 않은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의심과 반대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분들께 제 진심을 입증시킬 수 있게 저를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제 진심을 잘 알아주셨는지 지난 2011년, 한국에서 4명의 선수들을 현지로 데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친구들은 현지 1,2부에서 잘 활동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제가 직접 양성한 선수들이 잘 성장해서 정말 뿌듯하네요(웃음)."
 
-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돈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한국에서 가져간 돈이 제한적이다보니 처음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에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녔고, 그런 상황들을 남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만 극복해야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죠.
 
부모님께서도 걱정하시다보니 처음에는 무조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음식도 생활도 정말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한다는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 아이들에게 재능기부 형식으로 축구 코칭도 해주는 등의 활동을 했었죠(웃음)."
 
- 그 반면 좋았던 기억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가 지도했던 아이들이 잘 성장하게 된 것이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현지에서도 코치라는 직함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가르친 한국 학생이 18세 이하 대표팀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지난 10월, 한국에서 3주간의 일정을 보낸 박민호 이사

지난 10월, 한국에서 3주간의 일정을 보낸 박민호 이사 ⓒ 박민호


- 3주간의 한국 일정을 끝마치고, 특별히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정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말 다양한 구단들과 재능있는 선수들, 그리고 지도자 분들을 만났습니다. 3주 동안 제가 느낀 것이 있다면 세상은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축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팀과 좋은 선수들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듯, 시기와 질투보다는 믿음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더 값지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며 돌아갈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향후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각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축구에 잘 접목해서,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고, 특별하게는 구단주로서도 활동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이미 유럽 몇몇 국가들에 한국인 구단주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지금 하고 있는 활동처럼, 선수 육성에 목표를 두고 구단을 운영하는 최초의 한국인 구단주가 되고싶습니다.
 
저는 유소년 코치부터 차근차근 올라왔기 때문에 만약 구단주가 된다면 선수와 지도자 뿐 아니라 부모님들의 마음까지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간의 믿음만 있다면 반드시 좋은 구단주가 될 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합니다(웃음). 제2의 손흥민 같은 선수들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축구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장에 나왔을 때 정말 행복해야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손흥민 같은 선수를 꿈꾸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운동장에서 뛰는지에 따라 선수의 미래가 갈리게 되죠. 또한 자신이 어떤 선수가 될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역시 정말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부모님들과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도자들은 운동장에서 늘 책임감 있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며, 부모님들 역시 아이들이 당장은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수 자신이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유소년 축구부터 성인 프로팀까지, 한국축구가 더더욱 발전해서 아르헨티나처럼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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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르티보 에스파뇰 아르헨티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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